콩나물 씨야?
어려서는 키가 아주 작았다. 지금도 큰 편은 아니지만, 늘 굽 높은 구두를 신는 까닭에 처음 보는 사람은 내가 작은 줄을 모른다. 오히려 키가 큰 여자로 기억하는 이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엔 항상 맨 앞줄에 서곤 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첫 학급에서 키대로 번호를 정하시는 담임선생님의 지시에 얼른 뒤쪽으로 가 섰다. 나도 뒷자리에 한 번 앉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선생님은 앞으로, 앞으로 나를 이끌어 26번이 되었다. 그래도 이처럼 큰 번호는 난생처음이었다. 60명 중에서 중간은 되었으니까. 그 후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더 큰 번호를 가져본 일이 없다.
나처럼 콩나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밥과 콩나물 반찬 하나면 몇 끼를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고 지낼 수 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콩나물 공장 집에 시집을 보내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만약 콩나물 공장의 사장을 남편으로 만났더라면 난 지금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옛날 콩나물은 서민들의 영양을 맡아주던 가장 흔한 반찬이었지만 요즈음은 그리 값싼 식품이 아니다. 올개닉으로 재배한 것은 제법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내가 아는 분도 엘에이에서 콩나물 공장을 경영하며 아주 부자로 살고 있다. 엄마의 말씀대로 콩나물 집에 시집은 못 갔지만 꾸준히 콩나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평생 변함이 없다. 내가 왠지 키가 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사실은 그와 반대인 셈이다.
큰 딸아이가 어렸을 때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 이게 콩나물 씨야?' 소위 콩나물 대가리라고 부르는 머리 부분을 가리키며 '씨'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대가리라는 대답보다는 씨라는 아이의 생각이 좋게 느껴졌다. 그렇지, 콩나물을 닮은 모양의 음표를 보고도 우리는 콩나물 대가리라고 말하지 않는가. 썩 좋은 발음은 아니라도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말이 되어버렸다. '머리'라는 뜻도 옳지만, 엄밀히 따지면 '씨'라는 생각이 더 정확했다. 콩이 씨앗이 되어 자라서 콩나물인 것을.
콩나물을 두 봉지나 샀다. 육개장에 넣으려고 넉넉히 마련했다. 다듬어야 할 양이 꽤 많아서 바닥에 큰 종이를 깔고 앉았다. 꼬리 부분도 끊어내고 대가리도 잘랐다. 나물로 무치는 것과 달리 국에 넣을 땐 대가리도, 꼬리도 함께 있으면 깔끔하지 않아 보인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찬찬히 하나씩을 손질한다. 한쪽 바구니에는 말끔한 하양 콩나물대가 차곡차곡 쌓이고 다른 하나의 통 안에는 잘려난 콩과 꼬리부분의 수염들이 소복하다. 국물 속에서 아삭하게 씹혀질 콩나물의 맛을 상상하니 벌써 군침이 돈다.
나는 무언가의 씨가 되어본 일이 있는가. 콩은 자신이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우고 길게 키워 나물을 만든다. 결코 고통없이 되는 것이 아니리라. 단단한 콩에서 시작된 씨앗은 물기를 빨아들여 자신을 부드럽게 만든 다음에 쪼개지며 자라서 새 생명을 키워낸다. 마치 어미가 자식을 잉태하고 품었다가 이 세상에 내어놓고 양육하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누가 억지로 떠맡긴 적 없어도 기꺼이 아픔을 견딘다. 숭고한 희생이다. 내 부모가 그러했고 나 또한 자식을 그렇게 길러내지 않았는가.
버려질 콩들이 아무 저항 없이 쌓여있다. 씨가 되었든 대가리였든 처연해 보이기마저 하다. 세상에서의 소명이 모두 끝나는 날, 떠날 때를 기다리는 내 모습도 저러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