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저편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온 지 꼭 일 년이 되었다. 지난번 산불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당 안팎을 살폈다. 아마도 먼저 살던 사람들은 마당 가꾸기에 그리 마음을 쓰지 않았었던 것 같다. 흙이 너무 황폐하기도 하지만 지난 일 년간 정성을 쏟은 것에 비하면 경관이 좋질 않아 섭섭한 마음 마저 든다.

담장을 따라 심었던 분꽃이 유일하게 큰 위안을 준다. 매일 아침 분홍빛 꽃으로 반갑게 맞아주곤 한다. 인사를 나누려 들여다보니 어느새 꽃망울이 진 자리에 까만 씨앗이 솜처럼 부풀어있다. 조심스럽게 한 손에 모아 봉투에 담았다. 다음 해 새봄이 오면 또 이 자리에 뿌려주리라.

  

내가 자라난 돈암동의 한옥이 그립다. 전쟁이 휩쓸고 간 다음 피난살이의 설움을 뒤로 하고 숨을 고르며 새 삶을 가꾸던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옹기종기 담장을 맞대고 줄지어 있던 한옥들, 이미 옛 모습은 사라졌겠지. 동네에 하나 뿐인 펌프 옆 길게 줄지어 있던 물통들이 아련하게 그려지고, 골목 어귀에 있었던 대장간의 망치 소리도 귀에 어린다. 또다른 좁은 골목 끝엔 빵 공장이 자리 잡고 있어 늘 그 앞을 지날 때면 고소한 빵 굽는 냄새에 이끌려 꼴깍 침을 삼키곤 했다. 모두가 어려운 살림이었어도 이웃과 나누며 사랑했던 따뜻함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엔 매일같이 마중나와 기다리시던 엄마의 자그만 몸집이 아스라이 서린다. 입시공부로 처진 내 어깨에 매달린 가방을 빼앗듯 넘겨 들어주시곤 했다. 

 

할머니와 부모님, 우리 네 자매의 보금자리였던 아늑한 우리 집은 전통적인 한옥 구조였다. 넓은 마당엔 아버지께서 매끈한 솜씨로 세워놓으신 찔레꽃 아치에 여름이 타오르고 과꽃, 맨드라미, 칸나, 봉숭아와 함께 가을을 반기곤 했다. 꽃 가꾸기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아버지 덕에 딸들의 가슴엔 늘 꽃 바람이 살랑이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언니들은 쪽마루에 나란히 앉아 봉숭아꽃을 백반과 함께 찧어 손톱마다 동여 매는데 나는 내 차례까지 돌아오지 않을까 봐 조바심하며 기다려야 했다. 또한, 십여 년을 한 식구로 살았던 진돗개 '쫑'을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다. 귀가 쫑긋하여 '쫑'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단다. 네 번의 출산을 통해 스무 마리나 되는 새끼를 낳았고 그 때 마다 동네사람들이 순서대로 입양해 가곤 했다. 후엔 거의 온 동네가 '쫑'의 아들, 딸 집이 되었었다.

우리 집 대문 밖 골목길은 아이들의 고무줄 터로 정해진 곳이라서 맨흙 바닥이 곱게 다져져 마치 포장을 한 듯 반들반들 윤기마저 돌았다. 하교 후 숙제를 마치면 동무들은 고무줄놀이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저녁 먹으라고 소리치는 엄마들의 목소리에도 흩어지지 않았다.

 

그때 그 동무들은 지금 다 어디 있을까. 모두가 인생의 후반부를 나름대로 조율하며 아름다운 삶을 다듬으며 살아갈까. 유난히 개구졌던 남자아이도 궁금하다. 여자아이들 놀이 방해가 최대의 목표라도 되는 듯 늘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 아이로 인해 고무줄은 온통 매듭 투성이었다. 어쩌면 지금은 중후하고 점잖은 성공한 사회인일 수도, 아니면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일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일찍 이 세상을 떠난 건 아닐까. 뿌연 안갯속같은 기억의 저편을 가느다란 눈으로 살피노라니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구나. 한 번 지나간 것들은 모두가 아쉬운 것이로구나. 그리움의 손짓이 다가와도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그 모습.

 

하루하루를 진실로 소중하게 다룰 일이다. 사랑할 수 있을 때, 행복이라 말하고 싶을 때, 그리워 목청 높여 이름부를 때, 혹은 미안하다 말해야 할 때를 놓치지 않으리라. 

내 삶의 뒤를 돌아본다. 어느 새 반세기가 훨씬 넘는 시간을 흩으면서 어떤 자국들을 남기었나. 그 안에서 힘겨워 허우적거리며 발버둥 친 날들은 또 얼마인가. 때론 지친 어깨에 올려졌던 짐을 풀어 내려놓고 먼 산 고개 푸른 하늘 높이 날아가는 새에게 나의 영혼을 맡기고 싶어도 했다. 그래도 간간이 가족들로 인해 받았던 기쁨이 지금껏 내 삶을 이어준 자양분이었다.

일흔여덟에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께 나는 늘 궁금한 것이 있었다. 칠십여 년의 삶이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 하는 내 물음에 항상 할머니는 '산 뒤가 없다'는 말씀으로 답을 대신하셨다. 이제 그 말씀의 뜻을 알 것 같다. 백 년을 살다 떠난대도 결코 지루하거나 긴 시간이 아닐 것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순간의 삶을 살고 있을 뿐, 영원히 머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씀이 가슴에 꽂힌다. 내가 맞는 오늘의 이 순간들을 온 마음 다해 살아 여문 씨앗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차례다. 보라색 씨앗으론 보라색 꽃만을 피울 수 있듯 부모 된 우리의 삶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드러날 것을 생각하니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건강한

꽃이 탐스러운 열매를 일구는 만큼 남은 삶을 더욱 성실히 가꾸어야겠다.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