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땅이 온다 / 홍윤선 - 제15회 천강문학상 우수상

 

 

저 청색은 빨강에서 시작되었다. 황토에 녹아든 홍색이 소나무 줄기를 적시고 가지 끝에 이르러 온통 푸르게 타오른다. 청청한 불꽃에 결이 있다면 노송의 바늘잎처럼 연약하나 심지는 강렬할 것이다. 적토와 적송이 하나로 몸을 태워 훨훨 뻗쳐오르더니 하늘 가에 파랗게 닿는다. 벌건 태양은 멀리서 조용히 거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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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뒷산으로 들어가는 첫머리에 ‘의령 성황리 소나무’가 서 있다. 동네 어귀에서 안길을 따라 네댓 집 지나면 이내 마주하는 천연기념물이다. 땅심을 뚫고 나온 뿌리가 살길을 찾아 가파른 지면을 더듬는다. 얼기설기 엮고 부챗살마냥 펼쳐 날뛰는 비탈을 버텨낸다. 온전히 혼자 힘으로만 할 수 있는 게 몇이나 되던가. 서로 기대어 의지처를 마련한다. 다시 흙살을 파고든 노근이 어디까지 내디뎠을지, 얼마나 멀고 깊숙이 가야 큰 키와 너른 품을 지탱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늠할 수 없어 둥치를 따라 시선을 위쪽으로 돌린다. 늘어진 줄기마다 휘고 굽은 가지가 유유히 하늘길을 연다. 수피가 터진 적송의 붉은 색 살빛이 수혈의 흔적인 양 비장하다. 나는 꼿꼿이 서서 나무를 우러러 비로소 삼백여 년 세월을 알현한다. 이 땅을 살아낸 핏줄기 같은 곡선이 빽빽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언젠가 절절한 저 빨강을 본 적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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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 나절, 기강나루터였다.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기강 기슭에 댑싸리가 부숭부숭 바람에 일렁였다. 선홍색으로 물든 풀은 마치 출군을 기다리는 병사처럼 잔뜩 달아 있었다. 그곳이 임진왜란 때 의병군의 첫 전승지라는 걸 몰랐다면 환호의 빛깔에 사진만 찍다 왔을 게다. 넘실대는 붉은 풀의 파문 앞에서 핏빛 결기를 느끼지 못했을 터이다. 곽재우 장군의 펄럭이는 홍의 자락이 강변에 겹쳐 보이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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댑싸리 하나하나마다 따로 이름을 부여하지 않듯 면면을 들춰낼 수 없는 나의 선조들, 지키고자 하는 열의로 의병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무명씨들이 줄지어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여느 날같이 논밭을 갈다 때가 되면 분연히 일어서고 처연하게 고꾸라질 아무개들. 뜨거운 숨이 느슨해진 햇빛 사이로 발갛게 맴돌았다. 산은 겹겹이 솟아 앉았고 강물은 나직이 누워 여여하니 풀 끝을 손끝으로 쓸며 오래된 시간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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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뒤쪽으로 무덤이 몇 기 보인다. 산 자에게 그늘을 쥐여 주던 노거수는 망자의 벗이기도 하다. 움츠린 인생살이를 잊으라며 도래솔은 가지를 내어 봉분의 어깨를 쓰다듬는다. 나무 옆에 고요히 앉아 마을을 내려다본다. 행방을 감춘 지표근이 어디에 다다랐을지 알 듯도 하다. 동리 밖 송치천을 지나 너른 들녘을 건너 혹은 뒤편 봉우리를 가로질러 청솔은 흩뿌려진 핏기를 살피어 곁뿌리를 끈질기게 내밀었다. 마침내 기강나루에 이르러 민초들을 감싼다. 식지 않은 열기를 끌어안고 나무는 스스로 붉어졌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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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시원은 빛이다. 태양광이 닿으면 모두 흡수되고 사물이 반사한 빛을 우리는 색깔로 해석하지 않던가. 생명이 차마 삼키지 못하고 토해낸 빨강이어서일까. 삭이지 못한 서러운 빛줄기는 긴 파장을 남기며 시공의 경계를 넘어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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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사진 속에서 낯선 군병들이 무표정하니 이쪽을 바라본다. 흙길은 군용 트럭에 으깨져 질펀하다. 마음도 진창이었을 테지. ‘버팔로 솔져’라고 하였을 때 밥 말리의 노래가 떠올랐다. 미국이 서부 지역을 개척할 즈음, 인디언들이 흑인 병사의 피부와 곱슬머리가 들소와 닮았다 하여 부르기 시작했다. 쓸쓸한 이야기를 자메이카 가수는 경쾌하게 읊조린다. 흑인으로만 이뤄진 부대를 따로 운용하며 통칭했던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고 사상자가 많은 전투마다 선봉에 섰다는 사실에 흥얼거리던 음악을 멈추었다. 먼 나라에 와서 누군가를 살리려고 아니면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싸우다 잊혀버린 앳된 이방인들. 무채색 시간 틈새로 냉기가 감돈다. 인간의 외피가 어떠하든 나와 똑같은 선혈이 살을 헤집고 흘러나와 진흙을 뒤덮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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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던 존재들이 스러졌다 하여도 첩첩의 산은 능선에 새겼고 유장한 강은 또렷이 지켜보았다. 적송은 이 또한 친밀한 색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겠는가. 시리도록 붉은 핏자국을 좇아 낙동강 물줄기도 강바닥을 헤맸으리라. 유난히 구불구불한 나무줄기는 애달픈 뿌리의 심정을 닮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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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리 소나무의 빨강이 혼돈한 시대에만 있었을까. 나루터를 나와 읍내 식당에서였다. 외지에서 온 남자와 여덟아홉 살쯤 돼 보이는 아이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지역 주민이면 할인해 주는 어느 장소를 다녀온 모양이다. 꼬마는 자기들이 사는 데를 엉터리로 말해도 모른다고 눈을 번뜩였다. 신분증으로 확인한다던 아빠는 서둘러 덧붙이며 거짓말하면 경찰이 잡아간다고 단단히 일렀다. 아들의 입에 콩나물과 칼국수를 넣어 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개구진 눈빛이 신분증에서 흔들렸는지 경찰이라는 말에 주눅 들었는지 알 수 없다. 아들은 아기 새마냥 먹이를 쏙쏙 받아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붙여 놓은 탁자에 흡사 일행처럼 앉은 나는 안 보는 척 훔쳐 듣다 빙긋이 웃었다. 그저 그런 한낮의 풍경이 발그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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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질 사이로 자식이 반듯하기를 바라는 아비의 마음을 읽는다. 그때 까마득히 잊고 있던 생각 하나가 차올랐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작거나 순하고 아주 사소한 일들임을.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에 녹아든 무수한 의미를 우리는 이런 식으로 배웠는지 모른다. 귀에 박히게 들었던 시절이 가고 아버지는 늙고 꼬맹이는 어른이 되어 다시 자녀에게로 전해진다. 삶의 모서리에 속절없이 부딪힐 때마다 부모의 말소리를 잠잠히 되뇔 테다. 그렇게 시간도 헐어내지 못한 붉은 땅의 선한 자취가 지금, 여기에 흐르고 있다. 풀꽃을 키워 내내 의병 숲을 가꾸고 문장을 벼리어 먼먼 기억을 깨우지 않는가. 무르고 순정한 사람들의 치열했던 난장은 축제의 북을 울려 이어간다. 어둑한 저녁, 후손들이 밝힌 횃불 아래서 옛 얼굴들은 서로를 확인하며 마침내 안도할 것이다. 가고 없는 이가 쌓아 올린 지난날의 유산이며 간직한 자가 누릴 수 있는 오늘날의 향연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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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지 않은 빨간 온기가 외등을 밝히고 생의 밤길을 가지런히 한다. 산에서 내려온 잔뿌리는 처처에서 의로운 행적을 찾아낸다. 젊은 소나무와 파릇파릇한 어린 솔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한다. 사그락사그락 나무가 자라는 숨소리 들린다. 말간 훈기가 여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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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다 하여 모두 없던 일은 아니다. 낮은 데서 일생을 충실히 떠받치다 지금은 소나무 그늘 아래 잠든 임진년 의병과 버팔로 솔져는 뜨겁거나 차갑게, 때로는 서늘하거나 따뜻하게 세상과 연결된다. 지상만이 천상을 소망하는 것은 아닐 터. 하늘도 붉디붉은 대지를 동경하여 나무를 키운다. 의령의 성황리 소나무가 곳곳의 수목들과 맞잡고 평안을 기원한다. 핏발 선 상흔 위로 붉은 땅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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