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위 스무 촉 달 / 이용주- 제14회 정읍사문학상 최우수상
정읍에 도착한 날은 비가 갠 뒤였다.
젖은 도로가 오래 닦아 둔 놋그릇처럼 번들거렸다. 정읍사공원 쪽으로 걷다가 나는 오래전 외웠던 한 구절을 다시 만났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시험지의 빈칸을 채우려고 외웠던 문장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 노래를 기다림에 관한 옛이야기로만 알았다. 장에 간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빈 여인의 노래.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외웠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 여인이 가만히 서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오는 집을 돌보고, 식지 않게 불씨를 덮고, 문밖의 발소리를 골라 들으며 밤을 건너던 사람으로 보였다.
공원 한쪽으로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지나갔다. 아이는 돌계단을 오르내렸다. 노부부는 같은 벤치에 앉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한 여인이 남편의 모자를 벗겨 이마의 땀을 닦아 주었다. 작은 손길인데 오래 눈에 남았다.
어머니도 밤이면 대문 밖을 자주 내다보았다. 아버지는 작은 화물차로 읍내와 산촌을 오갔다. 비료 자루와 쌀가마니를 실었다. 장날에는 병아리 상자도 실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늦는다는 말 한마디도 쉽게 건너오지 못했다.
저녁밥이 식으면 어머니는 그릇을 아랫목에 묻어 두었다. 국은 몇 번이고 다시 끓였다. 그러면서도 기다린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저 양반은 길이 집인 줄 아나.”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대문 위 전구를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우리 집의 달은 하늘에만 뜨지 않았다. 골목 끝에서도 보이도록 켜 둔 스무 촉 전구가 있었다. 부엌 창문에 번지는 형광등이 있었다. 식지 않게 솥뚜껑 위에 덮어 둔 수건도 있었다. 그것들이 모두 우리 집 달이었다.
아버지가 돌아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말없이 밥상을 내놓았다. 늦은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젖은 소매를 만져 보았다. 차바퀴가 진창에 빠졌는지, 짐을 싣고 언덕을 넘느라 늦었는지, 어머니는 손등의 흙과 어깨의 기울기로 하루를 읽었다.
한 번은 큰비가 내린 뒤였다. 아버지는 자정이 넘어 돌아왔다. 개울물이 불어나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젖은 신발 속에 신문지를 구겨 넣었다. 그러고는 부엌으로 갔다. 국솥 뚜껑을 여는 순간 김이 천장까지 올랐다.
그때 나는 조금 알았다. 기다림은 문 앞에 서서 애태우는 일만이 아니었다. 밥 한 그릇을 남겨 두는 일, 불을 끄지 않는 일, 돌아올 사람의 자리를 비워 두는 일이었다. 한 사람이 없는 동안에도 집이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 두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은 날에는 시계 소리가 유난히 컸다. 초침이 벽을 긁을 때마다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뒤집었다. 장독대 뚜껑도 다시 확인했다. 몸을 계속 움직이는 것은 걱정을 들키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세월이 지나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한동안 대문 전구를 켰다. 해가 지면 습관처럼 스위치를 올렸다.
“이제 누가 온다고 불을 켜요?”
내가 묻자 어머니는 마당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이 안 와도 집은 어두우면 안 된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돌아오는 사람을 위한 불인 줄 알았다. 남아 있는 사람이 견디기 위한 불이기도 했다.
몇 해 뒤 어머니가 무릎 수술을 받았다. 이번에는 내가 병원 복도에서 밤을 보냈다. 수술실 문 위 붉은 등이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했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놓고도 마시지 못했다.
그제야 어머니가 대문 밖을 내다보던 마음을 조금 알았다. 기다리는 동안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가장 나쁜 길을 막고 있었다. 무사히 돌아올 길 하나를 끝까지 열어 두고 있었다.
정읍사의 여인도 그랬을 것이다. 달에게 길을 밝혀 달라고 빈 것은 남편의 발걸음만을 위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혼자 견뎌야 할 밤의 윤곽을 잃지 않으려고, 마음이 어둠 속으로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달을 높이 불러 세웠을 것이다.
공원에서 나오는 길, 달은 아직 완전히 차오르지 않았다.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반달이 오래된 전구처럼 희미하게 빛났다. 나는 어머니가 켜 두던 대문 불을 떠올렸다. 아버지보다 먼저 골목에 와 있던 빛. 아무도 오지 않는 밤에도 꺼지지 않던 빛.
정읍의 달 아래서 나는 그 노래를 다시 읽었다. 돌아오기를 비는 마음보다 먼저, 남아 있는 사람이 어둠을 견디는 방식이 거기 있었다.
달은 누군가를 데려오는 힘이 없을지 모른다. 다만 기다리는 사람의 어깨 위에 조용히 얹힌다. 밤이 지나갈 때까지 자리를 밝혀 준다. 그 빛 덕분에 사람은 문을 닫지 않는다. 식은 국을 한 번 더 데운다. 내일 아침의 쌀을 씻는다.
달빛은 늘 돌아오는 사람보다 먼저 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