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돌아가는 시간 / 박시원 - 제11회 금샘 문학상 수상작

비 그친 온천천을 걷는다. 풀꽃의 달뜬 표정 위로 한 무리의 새가 줄지어 난다. 바람을 따라 사라지는 모습이 내가 보내버린 시간의 속도 같다. 이파리 하나가 새의 길을 따라가다 빙글 돈다. 지천이 초록인데 무슨 연유로 노랗게 물들었을 까. 철을 앞선 나뭇잎이 저물녘 둑길에 선 나에게 세월의 파편들을 줍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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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풍화되는 것들도 추려 본다. 마음의 기울기며 잣대가 제 역할을 반납 하려 든다. 소원이며 꿈으로 기울던 열정의 축은 수평을 이루고, 시시비비를 헤 아리던 눈금자도 색깔을 잃어 희미해졌다. 여기까지가 최선이지 이 정도면 되었지, 어울렁더울렁 타협과 타성을 버무리며 살아보니 풀밭에 앉아 뭉게구름을 보듯 마음이 평화롭다. 갈무리에 드는 것일까, 아이로 돌아가는 것일까, 경계를 지을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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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마음으로 노포동 오시게 시장을 구경 한다. 주말과 겹친 오일장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다들 무엇을 찾느라 저토록 눈이 반짝이는 것일까. 그것이 시간이든 돈이든 인생은 우주 속 한 작품이라는 걸 뜨겁게 보여준다. 어디서 저리도 많은 것을 가져오는지, 장이 서는 날은 물건이 거리를 점령해도 점령 당해도 따지는 사람이 없나보다. 서로 내어주는 공유의 바탕인 곳, 묻어가고 묻 어오는 삶이 너무나 익숙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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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면목은 다채롭고 존재의 창은 무한하다는 걸 이곳에서 다시 배운다. 눈 길 닿는 곳이면 어디든 보따리를 풀어 전을 꾸리고 해지면 다시 싸는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기껏해야 나는 웅덩이 속 물방개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자신이 만든 물결만이 길이라며 빙빙 도는 녀석을 닮은 나는 얼 마나 편협한 인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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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방법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무궁무진하다. 그걸 더 일찍 알았더라면 마주하는 삶이 그토록 두렵지 않았을 텐데. 틀에 갇혀 한 길만 달리느라 길 밖의 풍경을 보지 못하였다. 위대함은 항상 마음 밖에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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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삶을 펼쳐 놓은 좁은 길을 따라가다 반눈이 같은 내 시선을 사로잡는 풍경과 마주친다. 붉은 수수부꾸미, 반죽이 철판에 닿을 때 퍼지는 풍미가 나에 게 해묵은 열쇠 하나를 쥐여 준다. 무거운 자물통을 채우고 가슴에 묻어버린 오래된 아픔을 끄집어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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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움은 지금도 의식을 과장시킨다. 오래전, 나는 그런 이유의 비밀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 수수부꾸미 속 팥소처럼 담백하게 은폐된 그 일은 순전히 내 열등감이 빚은 부끄러운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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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깊은 마을에서 한 해 세 명의 여고생이 나온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온 동네 관심을 받던 우리는 세쌍둥이처럼 붙어 다녔다. 모두 맏딸에 그만그만한 키, 몸피까지 엇비슷 했다. 다른 게 있다면 내 처지가 그네들 만큼 여유롭지 않 다는 것이다. Y의 아버지는 교사, M은 마을 이장 딸, 나의 아버지는 농부였으 나 농사에 관심이 없는 이상주의자였다. 무엇을 추구하여 헤매는지 잦은 외출로 엄마를 힘들게 했고, 그 여파는 나에게 왔다. 다림질이 잘 된 옷차림의 Y, 아버지 등에 엎드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M은 확실히 나와 달랐다. 질투도 부러움도 한꺼번에 밀려올 때가 있었으나, 나는 그네를 넘을 결심으로 두 감정 을 다 지우고 의연한 척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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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람은 때로 비굴함을 부르고 배고플 때 그 기분은 더 뚜렷해진다. 이십 리 하굣길은 늘 허기가 졌다. 철을 따라 길섶에 난 찔레순, 삘기, 산딸기로 배를 달래곤 하였다. 겨울날이었을까. Y가 보자기에 든 걸 간식이라며 꺼내었다. 한지에 싼 수수부꾸미였다. 종종 쉬어가던 너럭바위에 앉아 그걸 펼쳤을 때의 고소한 기름 냄새는 염치를 잊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순간의 자의식이 제동을 걸었다. 먹지 않았다. 어떤 이유를 들어 거절했는지 기억은 없지만, 생각하면 얼마나 하찮은 자존심인지... 그러다가 내 안에 굴을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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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가두었으니 몰입할 대상이 필요했을까. 가까이 있는 외가를 집처럼 드나들었다. 외숙의 서재에 들어 책의 숲에 빠지면 빛으로 난 길이 보였다. 문학 서적이 아닌 어려운 책이라도 갈피를 넘길 때 전해오는 온기가 위안이 되었다. 어른들은 그저 책 좋아하는 여학생이라 칭찬했지만 다른 의도를 지우지 못해 가책을 느껴야 했다. 그렇게 열등감이란 동굴에서 반평생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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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꽃 활짝 핀 외곽 순환 도로를 지난다. 나들목 초입은 하얀 꽃 천국이다. 순수를 펼쳐 놓은 세상이다. 어깨에 실려 피고 등에 기대어 피는 모양이 50여 년 전 우리의 모습 같다. 두런두런 피는 꽃들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 스스로 가둬버린 타인의 굴에서 벗어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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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일장을 다녀온 지 두 달여 되는 날이다. 신도시 외곽에서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받고 가는 길이다. 하늘이 맑다. 몇 조각 구름이 스르르 뭉쳐 한 덩어리를 이룬다. 손에 든 꽃다발도 나처럼 설레는지 하늘하늘 숨을 고른다. 주차장으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똑똑' 노크 소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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