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미의 노래 /김영화
“어! 매미 소리다.”마치 전깃줄이 울리는 듯한 “지이잉~”강하고 지속적인 노래 소리다. 어렸을 적 우리 동네 뒷산에서 들었던 “매~앰 맴맴”리듬 있는 노래 소리와는 다르게 이 사막 매미 소리는 귀가 아플 정도로 강하고 날카롭다. 숫컷의 이런 음치 노래 실력으로 어떻게 암컷을 유혹할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암컷 역시 음치일 게 뻔하다. 9월 초, 팜스프링의 햇볕이 불같이 뜨거운 한낮이다. 사막 매미는 햇볕이 강한 한낮에 가장 활발히 울며 더위가 심한 시간대에 울음소리가 커진다. 처음 들어보는 하늘을 진동하는 소리에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니 수없이 많은 매미가 팰로 베르데 나무에 붙어있다.
녹색 나뭇가지에 가는 아카시아나무잎 모양의 펠로 베르데(palo verde)나무에 이제 막 땅 위로 올라와 망토 같은 하얀 날개를 펴고 성충이 된 지 하루, 이틀 남짓 되었을 매미가 붙어있다. 어른 손가락 한마디만 한 크기의 성충매미의 모습은 노래 잘하는 참매미와 비슷하다. 몸통에 비해 제법 크고 검게 반짝이는 눈에 카메라를 가까이 대니 슬슬 움직인다. 우리 걸음을 멈추게 한 그들의 울음은 주차장에 가득 메아리쳐 울려 마치 그 소리가“지금”을 향한 절규 같다.
매미는 암컷이 수십, 수백 개의 알을 나무줄기나 가지에 산란한 수주 후에 알이 부화하여, 땅속으로 들어간 유충은 나무뿌리의 즙을 빨며 성장한다. 이들 삶의 대부분이 땅속에서의 기다림이다. 몇 년, 길게는 십수 년을 어둠 속에서 자라다가 세상 위로 나온 성충의 시간은 고작 몇 주다. 그 짧은 성충기의 전부를 노래로 채운다. 수컷은 날개 근처의 발성기관을 사용하여 특유의 소리로 암컷을 유인한다. 매미의 종류에 따라 그 노래 소리도 제각각 다르지만, 사랑을 부르고, 존재를 알리며, 남김없이 소리로써 자기 삶을 불태운다. 그렇게 생존 번식의 사명을 다한다.
단 몇 주를 치열하게 울면서 사는 사막 매미의 지속적인 절규를 들으며, 나는 인간의 삶을 떠올렸다. 인간에게 주어진 백 년의 세월은 매미의 수명에 비하면 무한히 길어 보이지만, 실은 덧없음 앞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살이의 하루의 삶이나, 매미의 몇 주의 삶이나, 수백 년의 거북이 삶이나, 백 년 남짓 인간의 삶 모두 나름대로 한 평생이다. 한평생 사는 우리 또한 긴 기다림과 짧은 빛남 사이를 오가며, 각자의 소리를 내며 산다. 매미가 온몸으로 내지르는 노래가 삶의 절정이듯, 인간의 노래나 울음 또한 각기 다른 소리로 사명 같은 삶을 살아낸다.
매미의 울음은 찰나의 계절을 불태우는 불꽃이고, 인간의 울음은 세월의 강을 건너는 노래다. 길고 짧음의 차이는 있지만, 그 본질은 같다. 33년을 살았느냐, 백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순간이다. 그 순간을 어떻게 울고, 어떻게 웃으며 삶의 의미를 이루며 살았는가 생각해 본다. 기쁨의 웃음 속에도, 슬픔의 눈물 속에도, 매미처럼 함께 웃고 울며 주위 사람들과 진정으로 공감하며 포용하고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펠로 베르데나무 그늘에서 들려오던 매미들의 노래가 이제 내 가슴속에 메아리 되어 남는다. 인간의 백 년 또한 결국은 한여름 매미 울음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소리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생을 흔들고 위로한다면, 이 세상 소풍을 마치는 날 그 삶은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