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그네
유숙자
추수감사절을 며칠 앞두고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했다. 땅거미가 내릴 무렵, 매그놀리아 열매를 밟아 발바닥이 골절되었다.
깁스를 해주며, 8주 동안 다리에 힘주지 말 것, 아픈 발로 딛지 말 것, 나이가 있어 오래 걸릴지도 모르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의사의 지시를 계명처럼 받아 왔다. 뼈가 잘 붙지 않는 나이라, 그 말이 새삼 중요하게 들렸다.
“발레리나에게 발의 골절은 치명상이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발레와 인연을 끊었음에도 발의 골절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얼마나 정교하게 움직이던 발인가. 발끝으로 갖은 어려운 동작을 다 해내지 않았나. 나는 당장에라도 무대에 서야 할 사람처럼 초조하고 불쾌했다.
기다리며 사는 삶이었다. 제한된 공간에서는 시간도 공기도 흐름이 없이 늪처럼 고였다. 내 영혼이 수액 속에서 자맥질한다. 삶의 빈틈에 상심의 바람이 분다. 가장 바쁜 시기에 움직임이 멈추어진 상태라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덜 마른 나무가 타는 듯 매캐한 연기가 쉼 없이 몸에서 피어오른다. 한 치 앞을 모르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이 두렵기도 하고 기대도 되었으나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니 온몸에 전율이 인다.
사람들은 어떤 좋지 않은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내가 왜 이 일을 당하게 되었을까 생각한다. 사람이기에 병도 나고 사고도 당하건만 어떤 결함의 결과인 양 주눅 든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우리가 인간이기에 살아가며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으나 막상 내가 사고를 당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일 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굴비 엮듯 꿰어 살피고 있었다.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생각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맑은 정신이 든다는 말을 좋아했다. 조용한 시간 속에 있으니 마음이 맑아져 끊임없이 들려오는 생각이, 잊힌 언어들이 시공을 가르며 달려온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창조적인 새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고 있다.
깊은 샘물에서 길어 올린 고요함 속에 내 삶과 영혼이 투영되어 거울처럼 비치고 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로 꽉 차 있었는가 외경스럽기까지 하다. 깨닫는 시간이 늦어 막대한 시간을 대가로 지불하기 전에 자신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했다.
생애 가장 한가한 시간의 그네에 앉아 돌아보는 삶이 새삼스럽다. 한순간 육신의 실수로도 이같이 오랫동안 지치는데 영의 눈이 어두워 볼 것을 보지 못하여 저지른 실수는 얼마나 잖을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또렷이 다가드는 갖가지 형상에 눈을 감아야 했다. 육신이 고통 속에 있으니 비로소 안 보이던 것들이 차츰 보이기 시작한다. 부질없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걸었던 어제의 내 모습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어쨌든 시간이 가면 나을 수 있지 않은가. 달리지만 말고 쉬어가라는 삶의 경계경보로 생각하니 오히려 이만한 것이 다행스러웠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 연말에는 어느 해보다 할 일이 많았다. 글 모음집 준비도 진행 중이었고 치러야 할 많은 행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가지로 세웠던 일들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지금의 가장 큰 소망은 오직 깁스를 벗고 걷고 싶다는 것뿐이다. 새해에는 큰 계획을 세우지 않으리라. 주어진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살리라.
삶은 내가 원치 않더라도 선택할 것을 강요하고 때로 유한한 생명체에 불과한 인생이라는 것까지도 의식하지 않으며 살아가게 한다. 의지와 감정은 별개의 것이어서 언제나 미완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끝 간 데 없이 달려가려 한다. 결국, 종착역 이외에는 닿을 곳 없는 항해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서둘러 가던 길을 멈추고 삶의 본질을 파악하게 된다. 조금은 관대해지고 현명해져서 여과 없이 삶을 바로 보게 될 때 깨끗한 영혼을 소유하려고 노력하고 있던 나 자신의 모습과 만나게 되리라.
삶의 궁극적 목표란 자아의 완성에 도달하는 것, 연륜과 경험이 가르쳐준 귀한 교훈과 체험은 나의 삶에 자양분이 되었다. 완벽하게 계획을 세웠다 해도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는 우리 인생. 시간의 그네에 앉아 영혼을 맑히는 한 곡의 음악과 함께하는 여유를 갖고 보니 이제야 넉넉한 삶 속에 안주해 있는 나를 보게 된다.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