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유숙자

9월 중순인데 벌써 백화점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현란하다. 성급한 사람들 탓에 언제나 분위기는 몇 달 앞서간다. 지나친 상업주의의 선전으로 백화점이나 쇼핑센터는 일 년 중 최대 대목을 맞는 계절로 흥청거린다. 성탄의 의미가 점점 더 퇴색해 가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 집은 해마다 12월 초순에 성탄 트리를 만든다. 생나무가 나무 냄새도 좋고 볼품이 있으나 화재의 위험도 있고 버릴 때 짐이 되어 언제부터인가 플라스틱 트리를 사용한다. 플라스틱 트리는 세월이 가면서 듬성듬성 빠지기도 하고 가지가 헐거워지고 늘어지는 흠이 있으나 간편해서 좋다. 해마다 내년엔 꼭 숱 많고 좋은 것으로 하나 장만해야지 벼르면서도 생각일 뿐, 빈약한 가지가 늘어가는 장식을 힘겹게 달고 있다.

 

내가 어렸을 적 성탄절 즈음에는 눈이 내렸다. 성탄 전야에 내리지 않더라도 그때쯤이면 눈이 쌓여 있었다. 교회에서 성탄 축하 음악 예배와 연극이 끝나면 맛있게 떡국을 끓여 주었다. 이윽고 성탄절 새벽을 맞으며 교인들의 가정을, 대학병원을 찾아가 새벽 송을 불렀다. 그 아름다운 풍습이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서 사라져 조용히 맞던 성탄절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도 아기 예수 오시는 성탄절에는 밤새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릴 것 같고 어디선가 새벽 송 소리가 들릴 것 같다.

 

가장 아름답게 기억되는 성탄절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성탄 전야에 스승님과 교회 순례를 했다. 몇몇 교회의 성탄 예배에 잠시 머물며 참석하고 자정이 된 시각에 명동 성당을 찾았다. 순백의 눈길은 온 누리가 백야였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 한옆에 온몸에 빛을 받고 서 있는 마리아상이 있었다. 촛불 때문만은 아닌 어떤 성스러움이 그 주위에 감돌았다. 처음으로 천주교식 촛불 미사를 구경했다. 그날 새벽, 대학병원을 찾아가 새벽 송을 부르고-. 미끄러운 눈길을 걸어서 찾아 나섰던 교회 순례와 경이로운 성탄을 체험케 해 주신 스승님이 그립다.

 

우리 가족이 한때 살았던 영국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나라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영국은 동화의 나라로 변한다. 집집이 거실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놓고 갖가지 아름다운 장식품으로 집안을 꿈의 궁전처럼 꾸며 놓는다.

우리가 살던 집은 컬 디 색(cul-de-sac)에 있었는데 집의 거실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다. 크리스마스 때면 어느 집이나 거실의 커튼을 활짝 젖혀 놓아 정성스럽게 만든 트리를 볼 수 있었다. 저녁 무렵 산책하게 될 때면 창문을 통해 보이는 트리의 불빛이 마치 멀리서 울리는 새벽 종소리처럼 은은하게 와 닿던 것을 기억한다.

 

크리스마스 때 가장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크랙카 봉봉이다. 기다란 원통 모양의 크랙카 봉봉 안에는 작고 정교한 장난감 등 여러 가지 선물이 들어 있다. 양 끝을 잡고 서로 당기면 “펑”하는 소리와 함께 꽃불이 터지면서 빨강, 노랑 파랑의 별들이 흩어진다. 장난감, 캔디, 쵸콜릿, 구슬이 쏟아지는 크랙카 봉봉은 크리스마스 때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호 품이다.

 

런던 교외 한적한 곳에 살았던 우리는 색다른 체험을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클로스가 찾아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캐럴과 종소리가 멀리서부터 은은히 들리던 것이 차츰 가까워지자 동네 사람들이 모두 산타클로스를 맞는다며 집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다. 그때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캐럴과 종을 울리며 동네 어귀에 나타났다. 신드렐라가 탔던 것 같은 마차. 여섯 명의 산타클로스가 수많은 전구로 장식한 황금빛 마차를 타고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산타클로스는 캔디와 초콜릿을 뿌리며 메리 크리스마스 호~ 호~호~ 하고 외친다. 이때에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뿌려준 선물을 줍기 바쁘다. 우리도 미리 준비한 바구니에 여러 가지 선물을 담아서 산타클로스에게 건넨다. 그 바구니에는 구제의 보탬이 될 수 있도록 구제 금 넣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이들이 마차에 올라앉아 캐럴을 부르고 동네 한 바퀴를 돌 때면 성탄 전야 분위기가 고조를 이룬다. 예전에 우리가 보았던 50년대 영화나, 동화책에서 읽었던 환상적인 크리스마스 풍경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누구나 기다리는 즐거운 명절이나 진정한 의미가 퇴색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성탄절을 맞는 우리는 선물과 파티의 즐거움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임하신 아기 예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함께하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때쯤이면 한 번씩 생각하게 되는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자선도 좋으나 일반적으로 한 해가 저문다는 것은 가진 자나 못 가진 자 모두에게 쓸쓸함을 준다. 평소에 바빠서 지나치고 있었다 하더라도 한 해가 저무는 이맘때만큼은 나눔의 아름다움으로 베풂의 넉넉함으로 훈훈한 인정의 꽃을 피웠으면 한다.

 

주위를 살피고 어려움에 부닥친 분들에게 넉넉한 마음이 되어 성탄의 참 의미가 가려지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 트리 위에서 반짝이는 갖가지 불빛처럼 나의 마음속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 하나 갖고 싶다. 그 빛이 힘들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사랑의 빛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어 진정한 “메리 크리스마스”를 전하고 싶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