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유숙자
갈맷빛 녹음이 드리워진 거실 창가에는 푸르게 고여있는 여름이 남아있는데 풀 섶에 우는 벌레와 지나가는 바람은 가을을 느끼게 한다. 정원 한 편에 서 있는 “천사의 나팔”이 여름내 시들 거리더니 서늘한 바람이 슬쩍 스치자 생기를 찾은 듯 치자 빛 꽃물결이 한창이다. 종 모양의 커다란 꽃들이 바람결에 흔들릴 때마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르는 것 같고 비밀스러운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아늑하고 한가로운 아침, 정원을 바라보며 커피의 향에 취할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나 어제 왔어, 지금 곧 너의 집에 가고 싶은데 괜찮겠니?”
서울 친구의 반가운 음성이다. 몇 달 전부터 벼르기만 하다가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보고 싶고 여행도 하자며 겸사겸사해서 왔단다.
친구가 좋아하는 작설차를 준비하고 우리가 만날 때마다 들었던 쇼팽의 발레 음악 ‘공기의 정”(Les Sylphides)을 걸어 놓았다.
달빛이 교교한 숲 속에서 4인이 펼치는 꿈 같은 장면의 1막 발레, 미카엘 포킨이 안무이다. 차갑게 얼어붙은 달의 세계를 감미로운 향기가 감도는 신비의 세계로 표현한 환상적인 음악. 오래전에 친구와 함께 춤추었던 음악이기에 추억하며 공유할 수 있는 대화가 많다. 마주르카의 경쾌한 춤곡이 연주될 즈음 친구가 왔다.
“얘, 이걸 네게 전해주고 싶어서 피곤했으나 빨리 왔어.”
친구의 손에는 조그만 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종이로 싸고 또 싸고 몇 겹이나 쌌는지 한없이 종이를 벗겨 내고 나니 비닐봉지 속에 담긴 붉은 덩어리가 보였다.
“이게 뭐니.”
“봉숭아 찧은 거야. 내가 직접 네 손가락에 물들여 주고 싶어서 가져왔어.”
생각지도 못했던 귀한 선물을 받아든 나는 할 말을 잊은 체 그렇게 들고 있었다.
몇 년 전에도 친구는 뜻밖의 선물을 보내 주었다. 유년의 풍성한 꿈을 심어주던 꽈리. 잘 익은 꽈리를 요리조리 비틀 어서 속을 뽑은 다음 입속에 넣고 뽀드득뽀드득 불던 생각이 났다. 올망졸망 달린 꽈리를 줄기째로 한 다발 묶어서 벽에 걸어두고 장식하던 꽈리의 향수에 젖어 고향의 가을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었다. 그해 겨울, 친구는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 속에 빨갛게 익은 꽈리를 넣어 보냈다. 이번에는 손에 직접 쥐여준 봉숭아 찧은 것. 친구의 손을 잡으며 봉숭아를 내려다보는 내 눈 속에 시간 저 너머의 환영이 다가든다.
내가 어렸을 적에 온 가족이 정성스럽게 가꾸던 꽃밭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봉숭아, 채송화, 활련, 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봉숭아는 빨강, 분홍, 흰색이 있는데 손톱에 꽃 물을 들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쉬운 것은 한꺼번에 피었다 지기에 겨울이 될 때쯤에는 손톱에 꽃물이 초승달만큼밖에 남아 있지 않다. 어머니는 손톱을 깍지 않고 안타까워하는 딸들을 보시고 어느 해부터인가 여름에 꽃씨를 한 번 더 뿌리셨다. 우리 집 화단에는 늦가을까지 봉숭아꽃이 피고 또 피었다. 한겨울을 지내면서 내 손톱에는 빨간 꽃 물이 그대로 남아있어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어머니는 초저녁에 탐스러운 봉숭아꽃을 따서 백반과 함께 찧어 두셨다가 밤이 이슥해지면 우리를 부르셨다. 언니, 동생, 내 손톱 위에 붉은 물이 뚝뚝 흐르는 봉숭아를 놓고 나팔꽃 잎으로 싸고 그 위에 헝겊으로 다시 한 번 잘 여민 다음 실로 동여매 주셨다. 행여 헝겊이 빠질세라 밤잠을 설치던 그 시절. 그때 어머니의 고운 모습이 꽃잎 물결을 타고 그리움 되어 밀려온다. 나 또한 내 딸에게 봉숭아 꽃잎을 물들여 주며 내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아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봉숭아 꽃 물을 들여 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외지에 와서 살며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떠오르는 꽃이지만 그저 가락 고운 노래로 대신하여 세월의 자락 속에 삭여야 했다.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겨 있는 봉숭아꽃에는 슬픈 전설이 담겨 있다.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에 갔을 때 열 손가락 모두 헝겊을 동여맨 눈먼 궁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 궁녀는 어떤 사정이 있었던지 연유는 모르겠으나 고려에서 원나라로 온 여인인데 고향이 그리워 울고 울다가 눈이 멀었다고 한다. 그 궁녀는 고향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봉숭아꽃 물들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감동한 충선왕이 봉숭아를 가져와 궁궐 뜰에 심고 그 궁녀를 생각했다고 한다. 조선 말엽에도 한 정승의 부인이 봉선화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여인들의 한과 절개를 노래로 지어 불렀다는 봉선화 노래. 갸름한 잎을 가지런히 느리고 수줍음에 고개 숙인 꽃잎의 모습에서 참고 견디며 기다리는 여인의 슬기가 보인다.
어느 날 샤핑센터에서 우연한 반가움을 만났다. 봉숭아꽃 물들인 손톱. 옷매무세가 한국에서 온 여행객 같았다. 우리 고유의 정서를 간직하고 있는 그 여인이 멋져 보여 관심이 갔다. 물건을 고르는 손끝 따라 내 눈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나는 여인에게 옥색 저고리 치마를 입힌다. 웨이브 진 머리에 쪽을 지우고 옥비녀를 꽂는다. 하얀 버선에 코가 오뚝한 흰 고무신을 신긴다. 그 여인은 아름다운 조선의 여인이 되어 사뿐히 걸어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친구의 정성 어린 선물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든 유년시절의 아름다웠든 기억을 다시 새롭게 떠올리게 하여 가슴 설레는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친구의 섬세한 배려로 그리운 추억 속의 가물거리던 지난 시절과 만날 수 있었고 봉숭아가 꽃 피고 꽈리가 꿈처럼 영글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었다.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오던 날 아침, 꽃을 따서 꽃잎이 마르지 않도록 찧어가져온 배려가 고맙다. 시차로 피곤할 터인데 쉴 틈 없이 달려온 친구의 순수한 우정이 그대로 사랑이기에 이 계절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 (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