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수채화
유숙자
비가 내린다. 내리는 것이 아니라 퍼붓는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 남가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세찬 모습이다. 나뭇가지들이 찢겨 나가고 이파리들이 울부짖는다. 그 빗속을 뚫고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봉투가 반이나 젖어 있었으나 여왕의 얼굴이 닮긴 녹색 우표가 선명했다. 근래에 소식이 끊겨 궁금했던 로즈메리로부터 온 편지 같은데 봉투의 글씨체가 낯설다. 속지도 젖어서 Dear Sook이라고 쓴 글자가 울고 있다.
“아내가 내 곁을 떠난 지 1년이 가까워져 옵니다. 폐암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임종을 맞은 셈이지요. 아내는 증상이 뚜렷지 않은 기침을 자주 했고 체중이 급속도로 줄었습니다. 가을 전시회 준비로 바빠 좀 늦은 감 있게 진찰을 받았습니다. 폐암 말기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얼마 후, 의사는 그녀의 임종이 가까웠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따금 멍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잠들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엄마 곁에서 나지막이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예전에 아내가 아이들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나는 아내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고 “로즈메리, 로즈메리” 하고 불렀습니다. 그 순간 아내의 손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으나 어쩌면 그것은 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겠습니다. 여러 날 동안 혼곤한 상태에 있던 아내는 이미 내 곁에서 조금씩 멀어지며 영원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먼 나라의 친구여, 나는 이제야 비로소 로즈메리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 보여준 따뜻한 마음과 사랑에 감사합니다.” 안녕. 토마스.
둔기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하다. 심장이 마구 뛰는데 머릿속은 하얗다. 창문을 열었다. 비가 세차게 얼굴을 때린다. 한동안 맞고 있으니 정신이 좀 드는 것 같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구별되지 않는 물이 한없이 흐른다. 거의 2년여 동안 소식이 없었다. 몇 번 카드를 보내도 반응이 없었다. 궁금했으나 전시회로, 바자로, 항상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그런 줄 알았다.
내 생일이 되어도, 크리스마스 때조차 소식이 없자 전화라도 해보고 싶었으나 번호를 알 수 없어 안타까웠다. 오래전에 적어 두었으나 주로 서신 왕래만 있었기에 찾을 수 없었다. 애당초 전화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로즈메리를 위해서다. 내가 전화를 하면 그녀도 전화로 답을 하려 할 텐데 로즈메리는 집수리부터 페인트까지 집안일을 부부가 함께하는 절약형이다. 또 있다. 강한 노던 아일랜드의 악센트가 마주 앉아 이야기할 때와 달리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던 탓이다. 내 불찰이다. 전화는 하지 않더라도 번호만큼은 가까이 두었어야 했는데. 끝없는 후회가 꼬리를 잇는다. 이미 다른 세상으로 떠난 친구에게 정말 미안하고 죄스러워 가슴을 에는듯하다.
‘페르 귄트 조곡’을 걸었다. 그녀가 영국에 있을 때 보내준 음악이다. 받은 지 오래되어 테이프가 늘어졌는지 음악이 힘겹게 협곡을 넘듯 긴 여운을 남긴다. 그녀는 그리그의 ‘페르 귄트 조곡’을 좋아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우울하고 쓸쓸한 멜로디가 삭막한 노던 아일랜드 같아 애착이 간단다. 무겁게 흐르는 음악이 레퀴엠처럼 들린다. 지난 십수 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1980년 우리 가족이 영국에 도착했다. 그때 우리가 살던 곳은 런던 교외였다. 템즈 강을 끼고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주택가여서 주거 환경으로는 최고였으나 이따금 번화가를 구경하고 싶었다. 주말이면 식료품 등을 사러 나가지만 온 가족이 함께 움직이기에 항상 쫓기듯 분주했다.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날, 답답함을 참을 길 없어 한 시간마다 내왕한다는 그린 라인 버스를 탔다. 잉글랜드는 산이 없고 광활하게 펼쳐진 들과 언덕뿐이어서 교외의 A 도로는 안정감 있고 정겨운 시골 경치다. 초가을로 접어든 나무들이 다양한 색깔로 옷을 입고, 저만치 보이는 언덕에는 양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진작에 나다닐 걸 괜히 집에만 있었잖아.’ 기분이 한껏 들떠 다음 행선지까지 생각하고 있을 즈음 갑자기 버스가 덜컹거리다 이내 멈춰 섰다. 고장이 났다고, 다음 버스가 오려면 1시간가량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승객들은 거의 다른 차편을 이용하려 내렸으나 나는 초행길이기에 다른 노선을 알지 못해 그대로 앉아 있었다. 버스에는 내 좌석 서너 줄 앞의 여자 승객과 나뿐이었다. 답답하여 버스에서 나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벤치도 있었다. 주변 경치가 무척 아름답다. 공기도 쾌적하다. 차들의 왕래가 뜸한 한적한 곳. 이 벤치에 앉아 한 시간을 즐길 것이다. 길 건너 경마장에서는 말들이 힘차게 트랙을 돌고 있다. 아이처럼 왜소한 어른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말 위에 앉아 있다. 잘 달리는데도 채찍을 내리친다. 말은 놀람과 아픔을 견디지 못해 더 빨리 트랙을 돌고 또 돈다.
버스를 탈 때만 해도 한달음에 런던에 도착할 줄 알았다. 시내를 구경하고 쇼핑도 할 예정이었다. 타국에 와서 처음 탄 버스가 고장이나 길가 벤치에서 쉬고 있으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이 작은 돌발사건에서 우리 삶이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라는 말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우리의 삶도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도전의 기쁨을 누리기도, 실패의 쓴잔을 마시기도 하지 않는가. 나도 오래전 큰 뜻을 품고 발돋움하려는 찰나 갑자기 집안에 변고가 생겨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내가 품었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평범하게 사는 아내, 엄마의 길을 따라 묵묵히 여기에 이르렀다. 저 말 같이 앞에 길이 있으니 한 곳을 향해 달렸다. 그래, 인생은 사는 것, 살아가는 것이기에 살아 있는 한 사는 것이 생의 의지일 게다. 갑자기 철학자가 된 듯 인생까지 논하고 있다.
앞자리에 앉았던 부인도 답답했나 보다. 밖으로 나왔다. 내게로 다가온다. 미소가 곱다. 그레이스 켈리가 연상되는 듯한 미모. 마치 중세기 귀족의 부인처럼 우아하고 아름답다. 자신은 노던 아일랜드에서 온 로즈메리라 했다. 친구의 병 문안을 왔던 참에 대영 박물관을 구경하러 가던 길이라고. 부인도 나와 같이 초행이어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은 낯선 동양인에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자상하게 대했다. 거의 한 시간가량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생각나지 않으나 언어가 엮어내는 단순한 정담의 차원을 넘어선 대화였을 것 같다. 헤어질 때 주소를 물었다. 외국인에 대한 의례적 호기심이려니 했으나 2주 후에 로즈메리로부터 편지가 왔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다. 인연은 영국에서 시작했으나 미국까지 이어졌다. 요즈음 같이 E-mail이 있던 시절이 아니어서 편지를 주고받았다. 부인의 필체는 고어체의 달필로 아름다웠다. 독서량이 많아 어휘가 뛰어나고 문체나 사연이 간결한데도 내용이 함축성 있어 편지라기보다 한 편의 서정시 같았다. 편지는 앞뒤로 빼곡하게 보통이 서너 장, 많게는 대여섯 장으로 이어졌다.
영국에 도착 후 이틀 만에 찾아갔던 곳이 ‘워털루 브리지’라고 나의 영국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무도 강하게 비극으로 남아있는 추억의 명화 “애수”. 제1차 세계대전의 회오리에 사랑을 잃고 영락의 길을 걸었던 비운의 발레리나 ‘마이라’의 비애를 공감하며 그 다리를 서성였다 했다. 촛불이 하나하나 꺼지며, 이별의 왈츠 올드 랭 자인에 감기듯 춤추던 아름다운 발레리나는 아직도 내 환영 속에서 춤추고 있다고.
영국에 살 때 여행을 많이 했다. 국내는 로만 바스를 시작으로 스톤헤인지, 에딘버라, 웨일즈, 스코틀랜드까지, 바다만 건너면 무한히 펼쳐져 있는 유럽도 자주 왕래하며 꿈꿔왔던 유적지 찾기에 바빴다.
요크셔 지방 하워즈 무어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에밀리 브론테)은 16살 소녀 시절부터 가슴에 품고 있던 소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죽음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었던 그들의 처절했던 사랑의 장소를 상상 속에서 꿈꿔왔기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5월에 ‘폭풍의 언덕’을 찾았다. 보랏빛 헤더(Heather)꽃으로 온 들판이 덮여 있었다. ‘폭풍의 언덕’을 다녀온 후 히스클리프의 망령에 시달리며 앓은 열병은 나를 한동안 캐서린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로즈메리는 테니슨의 ‘이녹 아든’(Enock Arden)을 소개했다. 폭풍의 언덕과는 전혀 다른 연민과 감동이 있었다. 그들의 사랑을 감히 완전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녹, 애니, 필립은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었고 가장 맑고 깨끗한 사랑, 가장 슬픈 헤어짐이다. 화제는 한동안 히스클리프였다가 이녹이었다가 필립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주로 책, 음악,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취미가 비슷하고 코드가 맞아 편지 쓰고 답장을 기다리는 재미로 살았다.
건축학을 전공했으나 예술가 기질을 타고난 그녀의 그림 솜씨는 아마추어 경지를 넘어섰다. 크리스마스카드, 생일 카드는 직접 그려서 보내 주었다. 섬세하고 정교한 터치가 뛰어났다. 틈틈이 그린 그림으로 이미 몇 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의 수익금과 뜨개질을 해서 모은 돈으로 탄광촌 사람들을 도와준다. 남편은 프로골퍼였으나 몇 년 전 사고를 당해 지금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고. 몸은 불편해도 프로 때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으로 골프에 관한 책을 저술하고 경기 해설을 맡는 등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단다.
이따금 호숫가를 산책할 때면 남편의 눈빛이 필드에 있을 때처럼 생기가 돈단다.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휠체어를 고정해 놓고 로즈메리는 그림을 그린다. 남편은 책을 읽기도 하고 화폭에 옮겨지는 아내의 그림을 감상하기도 하는 이때가 이들 부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란다. 이윽고 석양이 호수에 그림자를 드리우면 노을빛에 빛나는 아내의 모습을 스케치한다고. 그 이야기가 마치 서정 소야곡처럼 들렸다. 조용하고 우아한 여인이 남편 곁에서 화폭에 꿈을 담고 있는 모습이 호숫가의 정경과 잘 어울려 그들이 오히려 한 폭의 그림 같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떠올려 보곤 했다.
우리 아이들이 일가를 이루면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살 계획이라고. 그때 노던 아일랜드를 방문하겠다고 말했던 나의 약속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켜지지 못한 채 친구는 이승을 하직했다. 그의 병상에 위로의 카드 한 번 보내 주지 못한 것이 마음 아프다. 생과 사는 엄숙한 자연의 계율이라고. 인생은 유한성 생체에 불과한 것이라 언젠가는 떠나는 것이라고.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고 언어를 다 동원해도 그가 부재함으로 존재의 의미를 더 깊게 깨닫게 되는 모순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가을이어서 쓸쓸한데 그녀가 떠난 가을이기에 더 쓸쓸하다. 내 마음은 이미 아득히 먼 노던 아일랜드 황량한 그곳 산야를 헤매고 있다. 보고 싶다, 참으로 보고 싶다. 우아한 미소로 반겨줄 것 같은 그녀가 보고 싶다.
나는 서둘러 노던 아일랜드로 화환을 보냈다. 낯선 거리에서 헤어진 후,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함께 나눈 내밀한 정이 이제는 추억이 될 수밖에 없는 그리움과 애도의 마음을 담아서. 꿈처럼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이야기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담아서.
그 후 토마스가 보내온 편지에는 놀랍게도 내가 보낸 화환이 로즈메리 1주기에 도착했고 그녀의 미완성 유작인 <가을 수채화>와 너무도 흡사하다 했다. 긴 세월 서로 그리워하며 쌓아간 우정은 친구가 남기고 간 ‘가을 수채화’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영혼의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이파리가 다 떨어진 나무에 덩그렇게 매달린 까치집처럼 나는 지금 안타깝게 흔들리고 있다. 텅 빈 마음에 찬 그늘이 내린다.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