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쉬는 의자

유숙자

“아빠는 내가 힘들 때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

 

‘남편의 생일에 아들이 그림 한 장을 그려 아빠에게 주었습니다. 하얀 종이에 의자 한 개가 동그마니 그려져 있는 그림. 그 그림에 아빠를 향한 사랑과 신뢰를 담았습니다. 백 마디의 말이나 어떤 표현보다도 짧고 굵직한 한마디에 남편은 세상을 얻은 것 같이 가슴 벅찼을 겁니다.’

한 지인으로부터 받은 메일의 첫머리다. 온갖 지상적 고된 삶을 잊게 해주는 글. 10대 초반 소년의 글이라 하기에는 심오하다. 아버지를 정신적 지주, 스승,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넓은 품으로 생각하는 아들의 삶이 얼마나 행복할까 싶다. 현대를 사는 많은 아버지가 자녀로부터 이런 마음 한 자락 받는다면 하늘에 오르는 기분이리라.

 

급속도로 발전하는 첨단 시설물들. 손가락에 의해 세상이 움직인다. 컴퓨터가 만물박사고 스마트 폰이 요술 방망이처럼 척척 알아서 해결해 준다. 아이들이 부모와 대화 시간을 갖고 뭔가를 진지한 마음으로 의논하기보다는 언제나 손안에 있는 기계에서 먼저 해답을 찾으려 든다. 대가족이 함께 살던 시절의 며느리들은 단출한 핵가족을 얼마나 꿈꿨던가. 요즘은 서너 명 가족끼리도 서로 얼굴 보며 식사하는 것을 별러야 하는 시대다.

 

현대는 첨단 제품 덕택으로 인력을 최소화하면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급속도의 성장이 좋지만은 않은 것은 세상 이치가 그렇듯이 어느 것에나 장단점이 분명하게 따르게 마련이다. 한 직장에 평생을 몸담던 우리네 아버지와 달리 요즘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도 명퇴, 조퇴라는 명목으로 타의에 의해 퇴직하게 되는 것이 이에 따른 부산물이다. 아버지의 권위도 전 같지 않다. 흔들리는 것이 가장의 권위다. 거기에는 여성도 얼마든지 어깨를 겨누며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기에 수요 공급에 균형이 깨진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하는 노래를 이따금 TV에서 듣는다. 어린아이의 재롱으로 보기에는 현실적인 서글픔이 짙다. 누구나 잘사는 삶을 바라고 원할 것이다.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을 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그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주변에 의해서, 타의에 의해서 내 뜻대로 살 수 없는 경우도, 노력해도 별 성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자녀만 해도 그렇다. 편히 쉬게 의자가 되어 주어도 자녀가 쉬려 들지 않을 수 있겠고 지친 다리를 끌고 와서 쉬려 해도 품을 열지 않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농사 중에 으뜸이 흔히 자식 농사라 한다. 사회적으로 명성이 높은 사람이라 해도 자녀가 제대로 몫을 다하지 못한다면 부모의 어깨는 처지고 자녀 이야기가 화두에 오를 때면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자녀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는 부모, 잘 자라 주어 번듯한 일가를 이룬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가 인생 성공자가 아닐까.

우리 아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였을까.

나이 들어가는 아들을 보면서 이따금 드는 생각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편안한 엄마가 아니었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감상적이어서 감정의 기복이 심했다. 더구나 아이들 초등학교 시절, 남편과 오래 떨어져 살았기에 아빠의 빈자리를 메꾸어 주려고 예 체능에 이르기까지 전인교육을 염두에 두었다. 내가 처한 상황보다 좀 더 나은 교육 방법을 택하려 애썼고 정성을 쏟는 만큼 아이들이 잘 따라주기 바라는 보상 심리도 있었다. 당시에는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마음이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피곤했을 것 같다.

 

오늘 지인의 메일을 받고 나니 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남편과 나는 과연 어떤 의자였을까. 부모를 필요로 하는 초등학교 시절, 외국에서 근무하는 아빠를 그리워하며 살게 한 것이 미안했다. 어린 나이에 엄마의 보호자라며 든든하게 지켜주고, 착하고 바르게 잘 자라준 두 아들. 긴 세월이 지났건만 이따금 가족 모임이 있을 때면 곧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즐겨 꺼낸다.

‘난 엄마가 계모인 줄 알았어, 어찌나 무섭게 굴었던지’하고 말하는 작은아들. ‘엄마의 꾸중이 아빠 몫까지라고 생각했다’는 큰아들.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늦게나마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겨울이면 연탄난로 가에 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던 일, 따끈한 차를 마시며 아빠가 보내 준 그림엽서 속으로 들어가 함께 여행하는 듯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그 시절이 그립단다.

이미 불혹을 넘긴 아들이지만 언제나 와서 편하게 쉴 수 있는 의자가 되고 싶다. 세월이 눈처럼 쌓인다 해도 어린아이처럼 달려와 쉴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