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경찰이 따라왔다
십여 년 전 브레아와 코로나에 산불이 났을 때 가까이 살던 나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산불로 고생한 친구와 둘이서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작정하고 기도원을 찾아갔다. 거의 기도원 가까이 갔을 때 도로 공사 중이라 입구를 막아놓았었다. 우회해 가는 사인 판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옆으로 길 하나가 보였다. 급한 마음에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무작정 들어갔더니 차도가 아니고 산책길이었다. 외길이라 계속 산 속을 들어가다가 개울물에 차가 처박히고 말았다.
추운 겨울밤 천신만고 끝에 걸어서 기도원을 찾아갔다. 얼마나 무섭고 추워 떨며 길을 못찾아 산속을 헤맸는지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하나님 은혜로 얘배를 저녁에 새벽에 끝내고 나의 부탁을 받고 기도원 청년들이 그다음 날 아침 픽업트럭을 몰고 내 차를 견인하러 산속으로 들어갔다. 설상가상으로 트럭마저 좁을 길에 처박혀 진퇴양난의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차 두 대가 산 중턱에 정차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고속도로 순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뒤따라왔다. 공중에서는 헬리콥터가 윙윙거리며 머리 위에서 돌고 있었다. 경찰관이 가까이 다가와서 총을 겨누며 차에서 내리라고 소리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혼비백산했다. 입산 금지 구역에 왜 차를 몰고 산 중턱까지 올라갔느냐며 이유를 캐물었다. 밤에 길을 잘못 들어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설명하자 알 카에다 테로리스트들이 산불 놓으려고 가는 줄 알았다며 경찰의 도움으로 차 두 대를 무사히 견인해 올 수가 있었다. 결국, 반전으로 끝나는 단막극이었다. 그 때 옛날에 읽었던 소설이 생각났다.
20세기 미국의 단편 소설가 Jane Ritchie 가 쓴 ‘A Helping Hand’는 surprise ending으로 끝나 독자들을 놀라게 한다. 조그마한 시골에 사는 한 의사가 어느 날 인적이 드문 시골길을 운전하고 가는데 앞에 차 한 대가 멈추고 있었다. 차가 고장 나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가 싶어 차를 정차했다. 상대방 운전자가 가까이 다가와서 차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쳤다. 한 손은 코트 주머니에 넣고 있어서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의사는 의심했다.
진찰 가방을 들고 의사가 차 밖으로 나오자 그는 피 묻은 손수건으로 감 싼 왼쪽 팔을 끄집어내었다. ‘엉뚱한 짓 하면 알지, 내 오른손에 권총을 갖고 있거든’ 하면서 협박을 했다. 의사는 상처를 들여다 본 후 총알을 당장 끄집어 내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며 경고했다. 권총을 의사 옆구리에 갔다 대고 의사 사무실로 가자고 했다. 얼마 안 가서 순찰차 한 대가 도로 를 가로 막고 있었다.
차 문을 열고 순찰 경찰관에게 인사를 나누는데 최근에 은행 강도사건이 일어났는데 알고 있느냐며 경찰관이 물었다. 의사는 그 낯선 사람을 친구라고 경찰관에게 소개 했댜. 손을 내 밀고 악수를 안 하자 “나무를 베다가 깊은 상처를 받아 몇 바늘 꿰매어 주었어요. 그래서 악수를 못 하는 것입니다.” 많이 바쁘냐고 묻는 경찰관 질문에 아이들이 감기로 많이 찾아와 바쁘다고 답변했다. 의사는 천천히 운전하면서 사무실을 향해 가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차를 차도에 세우고 두 사람은 차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꼼짝 말고 총을 내려놓아.” 순찰 경찰관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범인에게 수갑을 채우자 도둑은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쫓아 왔느냐며 경찰관에게 화를 버럭 내었다. 경찰관은 말했다. 의사가 상처를 꿰맸다고 생각지 않았고 감기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돌보았다고 생각지 않았다며 의사 사무실 사인 판을 손으로 가리켰다. “수의과 의사, Dr. Robinson, 동물병원”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수의사는 참 현명한 의사여서 죽음의 문턱에서도 침착하게 위기를 극복하고 범인을 체포하는데 공을 세웠다. 부끄럽게도 나는 미련하여 고생을 사서 하게 되었다. 어떠한 위기에서도 침착하게 매사를 처리해 나가는 지혜가 우리는 필요한 것이다. /중앙일보 '이 아침에'2018년 4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