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홈스테이 경험 


   산타아나 강풍 때문에 페스트 컨터롤 퓨미게이숀이 일주일 연기 되어 지난 월요일 실시했다. 모든 음식을 회사에서 주는 비닐봉지에 넣어 두 겹으로 봉해야만 했다. 모든 식기와 약 등 가스가 닿지 않도록 포장을 두 겹으로 했다. 이삿짐 싸 듯 몇 날며칠을 고생 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으나 잠 잘 곳을 찾아야만 했다. 2박 3일 동안 집을 비워야 했기 때문에 잠잘 곳이 걱정이 되었다. 제일 마음이 가는 교회 권사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정을 얘기했더니 자기 집에 와서 체류해도 좋다고 했다. 

   권사님은 수년 전 치과의사인 남편을 여의었다. 슬픔을 극복하려고 시작한 홈스테이가 학생들의 입소문을 타고 소문이 한국으로 나 끊임없이 학생이 한국에서 들어온다. 자기 자식처럼 학생들을 지극정성 돌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장학생들을 모집하여 장학금도 수여하며 훌륭하게 살아가는 귀감이 되는 권사님이시다. 맛 있는 음식을 만들면 초대해서 음식 대접도 기꺼이 베푸는 권사님이시다. 

   2박 3일을 머물러도 부담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감사히 생각하며 이삿짐 보따리를 싸 들고 권사님 댁으로 왔다. 비록 2박 3일을 체류해도 이부자리는 챙겨서 모두 가지고 와야만 했다. 이미 6명의 학생이 와 있었다. 권사님과 나까지 합하면 모두 8명이 한 집에서 북적대며 살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10세부터 16세 사이의 학생이고 가정교사 한 명은 의대생인데 27세이다. 학교 등하교 시간도 두 팀으로 나누어서 하고 식사시간도 번갈아 한다. 아주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익히도록 훈련하고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가정교사를 고용해 철저히 교육을 한다. 권사님이 하루를 더 있으라고 해서 결국 3박 4일을 있게 되었다. 

   옆에서 지켜본 권사님은 참 부지런하고 예의 바르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사시는 분이시다. 첫날 저녁이 되었을 때 이날 저녁에 방들이 파티한다고 했다. 새로 이사간 집에서 손님들을 초청해서 집들이 파티는 참석해 보았지만 ‘방들이 파티’란 말이 생소해서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한국에서 처음 온 학생10세인 제이든이 방을 처음 쓰기 때문에 방 주인이 돼어서 다른 학생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서로 친해지기 위해 한국에서 갖고 온 ‘마이쥬’란 아주 맛있는 과일 캔디를 몇 퍀기지를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나는 캐이크를 대접했다. 그래서 ‘방들이 파티’란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나는 제일 나이가 많은 할머니지만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니 3박 4일 동안 홈 스테이 하면서 방을 쓰게 되었으니 방들이에 나도 함께 참석 해야 된다고 했다. 가장 나이 많은 학생으로서 80 평생 인생을 살아온 경험과 지금도 공부하고 있는 열정에 대해 어린 학생들에게 격려와 도전의 말씀을 전해 달라고 했다. 손자뻘 되는 어린 학생들에게 늙은 학생이 되어 나를 소개하고 학생들의 자기소개도 듣고 참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나도 저들과 같은 나이 어린 시절을 보낸 적이 어저께 같은데….그 때는 6.25 전쟁을 겪은 직후라 참 어려운 시기에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이 부모님의 덕택이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한마디 했다. ‘여러분들은 좋은 시대에 태어나 대한민국의 모든 번영을 누리고 살 수 있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하고 조상에게도 감사해야 된다.’고 했다. 영국의 계관시인 William Wordsworth의 시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my heart Leaps up’란 시에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이란 시 구절이 생각났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나도 모처럼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권사님에게 귀한 시간 마련해 주어서 감사드리고 더욱 홈스테이를 통해 주님의 사랑 사역이 확장되기를 기도드린다./중앙일보 오피니언 ‘이 아침에’ 2017년 1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