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누명 


   반세기 훨씬 전에 TV 연속극으로 ‘도망자(The Fugitive)’가 대 인기를 끌면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시청률이 매우 높았었다. 나도 그 시청자중에 한 사람으로 가슴을 조이며 시청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외과 의사였던 남편이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도착해 보니 외팔이 살인범이 사랑하는 아내를 살해하고 쏜살같이 도망을 쳤다. 쓰러진 아내를 부여잡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오히려 남편이 살인범으로 몰려 형을 살다가 죄수들이 열차를 타고 후송 중 열차가 전복하자 그 틈을 타 도망치게 된다. 형사에게 계속 추격을 당하면서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는데 자기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끈질기게 외팔이 살인범을 찾게 되는 내용이다. . 

   까마득한 삼 십여 년 전 일이다. 조그마한 아리랑 마켓이 샌타애나에 있을 때였다. 아리랑 마켓이 멀어서 가든 그로브에 있는 동양 마켓에 장 보러 늘 다녔다. 동양 마켓의 주인은 화교였다. 얼마 있다가 마켓의 문을 닫고 근처에 ‘동보성’이란 식당을 열었다. 그 식당은 아직도 성업 중이다. 하루는 저녁에 일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동양 마켓에 장 보러 갔다. 식료품을 잔뜩 사 들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장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다 풀고 보니 낯선 보따리가 한 개가 나와서 얼른 열어보니 현금 몇천 달라와 책크가 들어있었다. 직감적으로 동양마켓의 하루 매상 전부가 들어있는 보따리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갖다 주려고 전화를 했더니 벌써 마켓의 문을 닫은 뒤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랴부랴 서둘러 마켓에 들러 돈 보따리를 갖다 주었더니 깜짝 놀라면서도 너무나 기뻐하면서 반색을 했다. 돈 보따리를 훔쳐 갈사람이 정육점에서 일하는 한국 아저씨라고 주인은 단정하고 경찰에 보고하고 그 아저씨에게 사실을 실토하라면서 호되게 혼내 주고 있었다고 한다. 

   그 아저씨는 가족을 한국에다 두고 미국에 건너와 혼자 외롭게 마켓에서 일하고 있었다. 소고기를 살 때 상냥하게 늘 웃으면서 반갑게 대해 주어서 호감이 가는 아저씨였다. 우리를 보고서 하는 말이 도둑누명을 쓰고 감방살이를 할 뻔했는데 누명을 벗게 해 주어서 너무 고마워서 은혜를 잊을 길 없다고 눈물을 글썽이었다. 

   그 후 그 아저씨는 자주 만나서 식사도 같이 하고 늘 고맙다며 은혜를 잊을 길 없다고 했다. 이민생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이런 변을 당하고 나니 미국이 싫다며 한국으로 나가셨다. 미국에 다니러 오시면 꼭 전화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나 이 한국 아저씨나 누명을 썼을 때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을까. 다행하게도 두 주인공이 모두 누명을 벗 게되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누명을 벗을 때까지 마음고생이 오즉 했을까. 

   작년 섣달그믐에 설 준비로 아리랑 마켓에서 장을 봐 가지고 왔다. 내가 사지 아니한 떡국 떡 한 개가 들어있어서 나도 도둑누명을 뒤집어쓰는가 싶어 되돌려 주려고 마켓에 전화를 걸었다. 마켓 책임자가 전화를 받으면서 ‘손님 괜한 걱정을 하셨군요. 아리랑 마켓에서 고객에게 드리는 새해 선물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떡국 떡이 유별나게 맛이 좋아 온 식구가 맛있게 잘 먹고 새해를 기분 좋게 맞이했다 . 떡국 떡을 플라스틱 백에 집어 넣을 때 새해 선물이라고 한 마디만 해 주었어도 마음 고생은 안 했을 텐데...종업원이 외국인이라 한국말을 못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