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월의 단상 斷想

                                                                    양상훈

 

 

 

  11월은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시기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계절이 다를 것이다. 수확의 계절이니 독서의 계절, 사랑의 계절, 또 비애의 계절 등 수사修辭가 다양한 11월이다. 서릿가을 11월처럼 생명의 생체가 소멸, 가고 옴, 세월의 무상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때가 아닌가싶다. 11월은 또한 그 어느 달보다도 감사와 어울리는 달이다. 오곡백과 거두어 드러내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감사이다. 꼴치에서 두 번째 있는 11월은 눈에 잘 뜨이지 않지만 그러나 나름 특별한 의미와 교훈을 지닌 달이다. 11월은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그것이 쓸모 있는 것이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의 쓸모를 지닌 달이다.

11월이면 늦가을이 되고 초겨울이 되기도 한다. 가을과 겨울이 서 있는 샘인데 서늘하거나 다소 춥게 느껴질 것이다.

정신과 육체가 가장 확실히 활동할 때가 아닌가싶다. 10월의 절정에서 화려한 가을이라면 11월은 저물어가는 담백한 가을이리라.

곱디곱던 형형색색 단풍잎들이 빛바랜 몸으로 땅바닥에 내려 앉는다. 잎 무성하던 나무들이 서서히 앙상한 가지들을 드러내며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11월을 보면 볼수록 의미 깊은 달이며 인생을 생각하는 달이다

11월에 담긴 정신적 풍성함 역시 다른 달에 비해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다.

역사적 의미로 11월이 다른 달에 비하여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미국은 11월을 일종의 헌충일(Veteran Day)로 기념한다. 또한 미국은 감사절을 두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국민이 감사의 축제를 갖는다.

유럽의 여러 나라 역시 191811.11일은 곧 제1차 대전이 끝난 이날을 종전일이라 헌충일로 기념한다.

조국 역시 11월에 의미 있는 날들이 적지 않다. 일제 강점기 학생운동이 일어난 날이 11.3이고 순국선열의 날이 11.17일에 차지한다.

 

 112개월 가운데 정체가 불투명한 11, 그래서 가련하고 애착이 간다.

11월은 무엇을 해도 넉넉하다. 글쓰기, 운동 독서. 배우기 등에서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자연에 몸을 맡기면 된다. 주변에 산이든 바다이든 허허벌판이든 유유자작하면 그만이다. 자연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자연이 된다. 사람과 자연이 혼연 일체가 된다. 또한 11월의 날씨와 풍경은 감상에 젖게 만든다.

여기에 비라도 소리 없이 내리면 감상은 더욱 진해지고 한 폭의 수묵화가 그려진다.

 

 또 11월이면 우리가족에게는 운명처럼 지난 사연이 떠오르게 한다. 나와 아내의 생일이 똑같이 1128일이다. 오랫동안 연애시절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인정, 사정 애정이 쏟아진 가운데도 골인정점에 왔을 때에는 한 번 더 숙고하는 법인데.

그 당시에 선친께서 무엇이 마음에 들었는지 당사자 앞서 선언적 결정을 내리시지 않는가.“ 너이들 이것저것 볼 것 없다. 흔하지 않다 천생연분이다.Go Ahead!" 엄천시하에 연애하는 주제에 얼떨떨하면서 천생연분이든 탄생연분이든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11월이 의미 있는 달로 생일이 같다보니 장단점이 있었다. 아들 딸 손주들에게는 편리하고 최소 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얻지만 가장으로서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생일 때에나 새해 명절 때에 커다란 카드에 촌지를 넣고 큰절을 받기는 하지만 나눠가지라는 암묵적인 행위인데도 결국 마마께서는 독식하는 처사가 일수였다. 그래서 비상조치 원칙? 을 발동하였다.

다음부터는 카드 따로 촌지 따로 실행하여 독립자존의 원칙을 수행토록 요구하여 시정해나갔다. 난 미국에 오래 살아오면서도 우리 전통문화 중에 미풍양속美風良俗은 고수해왔다. 처음에 고루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아들 며느리 딸 손주들 모두 한자리에서 정식으로 큰절을 하는 등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으로 예절문화를 생활화 하여왔다.

또한 성장하는 손주들의 가정예절 숙지에 교육현장이 되어 이제 모두 호평을 하고 있다. 꼰대 어른 소리 안 듣기위해 아들 며느리들 함께 자주 국밥도 먹고 골프도하며 노래방에도 들린다.

 

 조선후기 조상들이 11월을 노래한 농가월령가에서 서민들의 생활상을 음미해 본다.

*-11월은 한겨울이라 대설 동기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중략... 여자들아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찍어 띄워서 재워두소( 실학자 정약용의 둘째아들 정학유가 서민을 위한 농업기술을 처음 권장 시도 한 작품)

 

 11월은 설레고 텅 비면서도 풍성한 열매의 달이다. 생명의 진리를 미련 없이 털고 땅으로 내려놓는 무수한 낙엽처럼 내려놓음과 비움의 진리를 배울 수 있다. 11월은 온 우주에 통하여 막힘없는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는 깊은 산수 은둔현자와도 같은 달이다.

11월은 특별하고 애매모호한 달이다. 1월이나 12월처럼 한해의 시작이나 끝도 아니다. 11월을 보면 볼수록 의미 깊은 달이요 인생을 생각하는 달이며 사뭇 많은 교훈을 담고 있다. 11월은 자연과 사람이 가장 근본에서 가장 멋들어지게 뒤 섞일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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