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동경 ―오상순(1894∼1963)
태양계에 축이 있어
한 번 붙들고 흔들면
폭풍에 사쿠라 꽃같이
별들이 우슈슈
떨어질 듯한 힘을
이 몸에 흠뻑
느껴보고 싶은
청신한 가을 아침―


이 시는 공초 오상순의 것이다. 공초 선생은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고, 집도 없었다. 하물며 시인이라면 한두 권 있을 법한 시집도 없어 영면 이후에 친구들과 후배들이 시집을 마련했다. 유고 시집이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었다. 공초(空超)라는 호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세속에 초탈해 있는 시인의 삶을 상징한다. 불교계의 무소유가 법정 스님이라면, 문단계의 무소유는 공초 선생인 셈이다.

시가 수록된 지면은 1921년도에 간행된 문예지 ‘폐허’다. 태어난 지 무려 99년이 지난 작품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벚꽃 대신 ‘사쿠라’라는 단어를 썼다고 너무 나무라지는 말자. 시인을 탓하기에는 1921년이라는 시절이 너무 아프다. 중요한 건 이때가 어려운 시기였고 이건 한글로 창작된 우리 문학이라는 사실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에 ‘청신한 가을 아침’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1921년이 빼앗긴 시절이었다면, 2020년은 앓는 시절이다. 지구가 앓고, 기후도 앓고, 사람도 앓는 ‘삼중의 앓음’ 중에 유일한 위안이라고는 가을뿐이다. 세상이 참 이상해졌구나, 낙심되는 중에도 계절은 부지런히 바뀌어 우리를 달래준다.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시에 의하면 99년 전에도 가을 아침은 청신하였다는데, 이 진실만은 지금도 유효하다. 99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가을의 아침은 차고 맑다. 조석으로 가을바람이 부는 것이,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이토록 귀하고 감사할 수가 없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