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말 ―마종기(1939∼ )

우리가 모두 떠난 뒤/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바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그 나무 자라서 꽃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말’은 우리를 살리고 죽인다. 사람은 말을 통해 법과 사회를 배운다. 거대한 문명을 기억하고 전수하는 것도 말을 통한다. 백 년도 못 가는 우리 인생보다 말의 일생이 훨씬 더 길다. 사람이 만들었으나 사람보다 더 위대하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말’의 실체다.

그런데 가끔은 이 ‘말’을 잃고 싶을 때가 있다. 혹은 ‘말’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할 때를 경험한다. 분명, 말 없는 말의 세계에 빠질 때가 우리에게는 있다. 대개 그것은 느낌으로 찾아온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사라짐이 아쉬워서 시인은 시인이 되고 시는 시가 된다.

말이 아닌 말이 영혼을 파고드는 장면을 마종기 시인만큼 잘 표현하는 이는 없다. 이 시에 따르면 그것은 꽃잎의 말이고 영혼의 말이며 바람의 말이다. 적어도 이 시에서 그것은 사랑과 축원의 말이기도 하다. 시인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은 후 남겨질 사람을 위해 꽃나무를 심는다. 꽃나무를 스치는 바람인 듯 내 영혼은 돌아와 사랑하는 당신을 감싸 줄 것이다.


사실 마종기 시인이 남긴 꽃나무도 바람의 말도 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시를 읽으면 어찌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착한 당신’, ‘피곤한 당신’에 대한 염려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봄이 다 가기 전에 이 시를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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