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 이제니(1972∼)
매일매일 슬픈 것을 본다. 매일매일 얼굴을 씻는다. 모르는 사이 피어나는 꽃. 나는 꽃을 모르고 꽃도 나를 모르겠지. 우리는 우리만의 입술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만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중략) 잃는다는 것은 원래 자리로 되돌려준다는 것인가. 흙으로 돌아가듯 잿빛에 기대어 섰을 때 사물은 제 목소리를 내듯 흑백을 뒤집어썼다. 내가 죽으면 사물도 죽는다. 내가 끝나면 사물도 끝난다. 다시 멀어지는 것은 꽃인가 나인가. 다시 다가오는 것은 나인가 바람인가.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꽃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영영 아프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영영 슬프게 되었다.
요즘은 발병의 소문이 무성하고 마음이 소란스럽다. 매일이 걱정스럽고 내일이 불안하다고 다같이 수군거린다. 타인은 두려운 이가 되었고 서로를 믿는 대신 외로움을 택하는 쪽이 늘어났다. 모두들 이건 병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우리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 그저 병 때문만일까. 병이 사라지면 우리는 우리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필요로 하면서도 배척하는 것은 오늘내일의 일이 아니다. 이것은 퍽 오래전부터 감지되어 온 아주 슬픈 일이다.
이런 상황의 이전과 이후에 대해서 더 생각하고 싶을 때, 이제니 시인의 시를 추천한다. 그는 담백한 듯 처연하고, 발랄한 듯 무너지는 감정을 탁월하게 다루는, 재능 있는 시인이다. 아니, 재능이 아니라 피를 갈아 먹으로 삼은 듯 시를 쓰는 시인이다. 세상이 온통 고아의 마음으로 가득할 때 나는 이제니의 시집을 읽는다. 너도 안됐고 나도 안됐지만 함께할 힘이 없을 때 나는 이 시인의 시를 떠올린다.
오늘의 시에서도 시인은 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와 점점 멀어졌고, 외로워졌고, 그것이 몹시 슬프다고 말이다. 이 상황에 대해서는 시인을 따라 조금 더 멀리 근심하고 슬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경계할 것은 병뿐만이 아니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