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누이들의/정다운 얘기에/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오늘 밤처럼 눈이 내리고,
다만 이제 나 홀로/눈을 밟으며 간다.
오우버 자락에/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를 싸고,
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이 시를 쓴 김용호 시인은 1930년대 문단의 신인이었다. 모더니즘의 후예라고 주목받았고, 함경도에서 창간된 잡지 ‘맥’의 동인으로 활동하던, 꿈 많은 시인이었다. 그의 작품은 퍽 도시적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이렇게 따뜻한 시도 발견된다. 몇 세대 전의 서정이 오늘에도 낯설지 않고, 겨울밤의 따뜻함이 간절하여 소개드린다.
김용호의 이 시에서 ‘오우버’란 외투를 말한다. 외투를 입고 밤길을 걷는 저 사람은 다 자란 어른이다. 과연 어른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시 안에서 대답을 발견한다. 어른은 ‘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로 산다. 너 참 귀하다, 축복받았던 기억으로 산다. 그때는 이유 없이 사랑받고 까닭 없이 으쓱했다. 그래서 시인은 어른이 되고, 혼자가 되고, 기약 없이 외로워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조금 더 몰입해 보자. 시인이 걷는 눈길은 어두웠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눈이 초롱 같다’던 할머니의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좋은 말이란 이렇게 멋지다. 그것은 할머니의 수명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
할머니의 말뿐이랴. 이 시 역시 멋지다. 여기에는 겨울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다정한 오누이, 맛난 군밤, 빨간 불씨와 하얀 눈까지. 겨울의 정취로는 더할 나위 없다. 겨울이 아니라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모여 있는 듯하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