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켠다. 프로야구 경기가 한창이다. 경쾌하고 빠른 비트의 음악이 운동장에 가득히 울려 퍼진다. 경쾌함을 넘어 요란하기조차 하다.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어대는 날씬하고 예쁜 아가씨들의 율동이 멋지다. 아가씨들의 율동에 맞추어 짝, 짝 박수 소리가 우렁차다. 운동경기를 보러 온 관객들은 전부 응원단이 된다. 운동장에는 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열심히 뛰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응원을 유도하는 아가씨들을 치어걸이라 한다.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보다 짧은 치마를 입고 리듬에 맞추어 발랄하게 춤을 추는 치어걸들에게 더 시선이 간다. 그녀들을 보고 있자니 꽤 오래전의 어떤 경험이 생각난다.
회사는 봄, 가을로 체력단련 행사를 했다. 야외 단련을 할 때는 부서별로 등산하러 가기도 하고, 어디 모여 족구 시합 같은 것을 하기도 했다. 사내에서 체육행사를 할 때는 회사가 주관하여 부서 대항으로 축구, 배구 등을 했다.
사내 체육행사가 열리기 전날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칠판에 내 이름 석 자와 응원단장이라는 단어가 인사명령처럼 적혀 있었다. 나는 그때 입사 2년 차의 평범한 새내기 직원이었다. 그러니 누가 나를 놀린다고 생각하며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도 체육행사 하루 전날에 당사자도 모르는 무슨 생뚱맞은 장난인가 말이다. 며칠 전부터 시합에 나갈 선수들을 뽑아 연습하고는 있었지만, 응원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누가 응원도 하면 좋지 않겠냐는 개인적인 생각을 장난삼아 써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전에 응원단장을 해본 적은 물론 없고, 그렇다고 숫기가 좋아 남 앞에 서슴없이 나서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칠판의 낙서는 사실이었다. 나보고 응원단장을 하란다. 누가 어떻게 결정했느냐는 물음에 그건 모른다고 했다. 체육대회 하루 전날에 결정된 사건, 게다가 천거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그냥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란다. 그렇다면 그것은 별로 중량감 없는 비중 약한 결정임이 분명했다.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하라는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다른 뜻이 아니겠나. 부담 없이 해도 된다는 시그널이다. 그러니 굳이 못 하겠다고 강력히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조금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곧 그까짓 것 한번 해보자고 마음 다잡았다. 그런데 막상 한다고 마음먹고 보니 고민이 되기는 했다. 하루밖에 시간이 없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한단 말인가. 경험도 없는 나에게 하루 전에 응원단장을 하라는 건 벼락치기 창작을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여간 누군지 모르지만 내 능력을 높이 평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고맙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중학교 때 우리 학교는 야구 명문이었다. 시합이 있을 때마다 억지로 끌려가서 박수를 쳐주었다. 거기에는 응원단장이 있었다. 교복이 아닌 하얀 응원 복장을 갖추고 응원단의 박수를 끌어내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우리는 앞에서 시키는 대로 기차 박수를 치며 고함을 질렀고, 삼삼칠 박수를 치며 응원을 했다. 어떤 때는 책가방을 두들기고 또 나무토막으로 딱따기를 만들어 손바닥 대신 치기도 했다. 내가 해본 건 이게 다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렸다. 그렇다고 근무복을 입고 앞에 나서는 건 너무 성의 없는 행동이 아닌가. 이왕 할 거면 최소한의 노력의 흔적은 보이자고 마음먹었다. 소품 거리를 찾고자 작업장을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빈 깡통이 하나 눈에 띄었다. 그것은 내 어린 시절 거지들이 들고 밥을 얻으러 다니던 그런 깡통이었다. 그것을 소품으로 하기로 했다. 헌 바지 한쪽 갈래를 잘라 입고 걸레 자루에 깡통을 달아 둘러메고 집시 흉내를 내기로 했다. 그것은 돈 안 들이고 현장에서 얻은 성공적인 아이디어였다. 나는 이미 혼자가 아니었다. 내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저마다 코디가 되었다. 어떤 이는 내 바지를 더 찢어 완전히 거지꼴로 만들었고, 어떤 이는 어디서 입술연지를 얻어 와서는 얼굴에 이리저리 칠하여 광대처럼 만들어 놓았다.
시간이 되자 직원들은 운동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일정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내 꼬락서니를 본 담당 계장이 씩 웃으며 슬그머니 나가더니 어디서 소주를 한 병 가지고 왔다. 맨정신에 어떻게 그 꼴로 여러 사람 앞에 나서겠느냐는 거다. 그렇다. 사실 나는 긴장하여 몹시 떨고 있었다. 소주를 한 모금 마시니 기분이 조금 들뜨는 게 약간의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드디어 내 시간이 되었다. 나오라는 신호가 왔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나는 동작도 조금 삐뚤게 하며 빈 깡통을 메고 직원들 앞으로 나섰다. 와~, 하는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거기에 있는 절반은 여직원들이었고 나는 총각 때였다. 모임의 중앙에는 드럼이 있었고, 나를 환영하듯 신명 나게 드럼을 쳐대고 있었다. 나는 음악에 맞추어 신나게 몸을 흔들어댔다. 체육대회 행사보다 나의 단독 콘서트장이 된듯했다. 본부석에서 시작한다고 조용히 하라는 마이크 음성이 나왔다. 그러나 나는 못 들은 척 몸을 흔들어댔고 드럼은 계속 신명을 냈다. 응원석에선 함성과 함께 박수 소리가 요란했다. 그것은 흥을 돋우어 나의 쑥스러움을 감추어 보려는 나의 속셈이기도 했다. 몇 분을 초과한 후에 나는 동작을 멈추었고 체육대회는 정식으로 개회되었다.
그때는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사장도 군 장성 출신이었으며 회사는 원리원칙의 군사문화에 젖어있었다. 그런 곳에 느닷없이 거지꼴 차림으로 나타났으니 그것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현실 파괴였으며 경이로움이었다. 그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었고 나는 그 중심에 있었다. 그다음 체육행사에는 처음부터 여직원이 포함된 응원단이 구성되었다. 여직원은 치어걸이 되어 함께 율동하며 흥을 돋우었다. 프로 축구, 프로 야구가 탄생하기 훨씬 전의 이야기다.
그때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왔는지를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준 큰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