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턱 / 김상영

 

 

 

시오리 재 너머 읍내에 성형외과가 생겼다. 종합병원 구석진 별관에 들어선 부서에 불과하지만 ‘야매’ 시술로 쉬쉬하던 시장통에 전문의가 왔으니 그 사연을 살펴볼 일이다.

쇠락한 시골 읍이라 해도 바야흐로 백세시대라, 노인천국이다. 오래 사는 그만큼 병치레가 잦아 병·의원이 쏠쏠할 것 같으나 경영난으로 위태로운 곳이 더러 있다. 모퉁이 돌아 한의원이요 길 건너면 병원이어서 환자를 나눠 받는 형국이니 채산이 맞을 리 없다. 더구나 코로나 환자가 다녀갔대서 문을 닫기도 했으니 여북 답답했으랴. 현관문에 압류 딱지가 나붙으면 보나 마나 부도났을 테고, 현수막이 드리울 땐 신장개업이다.

어느 봄날, 쇠사슬로 칭칭 감겨 폐쇄되었던 종합병원 문이 열렸다. 새로 온 병원장은 점심 한 끼씩 국수를 대접함으로써 못된 이미지를 씻고자 했다. 그러자 이웃한 요양원 노인네들과 버스를 기다리던 장꾼들까지 별미로 여겨 젓가락을 걸치게 되었다. 우리 동네 아주머니가 병원 허드렛일을 맡은 터라 아내와 나까지 재미 삼아 눈치 국수를 먹은 적이 있으니 알만하다. 한정된 하루 몫이 동이 나자 못 먹고 돌아선 사람이 더러 생겼다. 음식 끝에 맘 상한 이가 어찌 없으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살이 아니던가. 좋은 뜻으로 시작한 봉사가 무망한 일이 되고 말았다. 무료 국수가 이미지 개선은커녕 환자 유치에 보탬이 되지 않자 때려치우고 그 자리에 세든 게 성형외과였다.

“찬 바람 불면 당신도 해.”

사부작대며 읍내를 오가더라니, 아내는 진즉 얼굴을 소제한 모양이었다. 전에 없이 해맑아진 모습이 썩 괜찮아 보이긴 했다. 아내는 오염된 나를 때 빼고 광내서 데리고 살 욕심이었는지 읍내로 가보자 채근했다. 싫다 싫어, 언감생심 내 팔자에 검버섯까지나 싶었다. 멀끔해지고 싶은 욕망이 영 없는 건 아니었으나 사서 고생 같아 뭉그적대고 살았다. 차일피일하던 내가 못 이긴 척 따라나선 건 세월 탓이었다. 일금 149,000원을 들여가며 기어이 시술을 받게 될 줄이야.

추수 끝나 한가한 늦가을이었지 아마, 곡절 많은 그곳에 얼굴을 들이밀게 되었는데….

내 얼굴이 낯짝 수준이란 건 병원 손거울로 찬찬히 들여다보고서야 알았다. 세파에 찌든 내 낯짝은 크고 작은 점들로 지저분했다. 이를테면 삶의 흔적이자 얼룩이었다.

마취 크림을 찍어 발라주는 아가씨 손길이 보들보들하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할머니 얼굴도 밀가루를 덮어쓴 듯 온통 허옇다. 자칫 웃음보가 터질 것 같아서 표정 관리를 ‘단디’ 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내 얼굴도 가당찮을 것이다. 팔십 노인도 천생 여자란 걸 양해하건만 할머니와 나는 생경해서 멋쩍다. 통성명하든 안부를 묻든, 대기실에 들어설 때 이미 말문을 터야 했다. 침묵으로 불편한 시간이 얼른 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신음을 연발하며 작업당한 할머니가 붉힌 얼굴로 조용시리 빠져나갔다. 지루한 시간 오래 기다려 시술 침대에 뻗쳐 누웠다.

“조금 아야 할 겁니다.”

‘아야.’라니, 젊은 의사 선생 의외로 농 좋아하신다. 긴장 푸는 관록이 신뢰를 더 한다.

“앗! 따가라.”

마취되어 어지간히 무뎌졌어도 조준사격을 해대니 따끔따끔하다. 레이저 불이 파팍 거릴 때마다 조명등 빛줄기에 연기가 곰실거리고 노린내가 폴폴 난다. 쏜 곳을 닦아내고, 미흡하다 싶으면 또 쏜다. 나는 애꿎은 혁대를 손으로 뻗대 늘리다가 팬티를 쥐어뜯기도 한다. 발가락을 꼬물거리다가 혀도 잘근 깨물며 버티고 또 버틴다. 엎드려 머리라도 감싸면 모를까, 바로 누워 “날 잡아 잡수셔.“ 하는 꼴이니 도무지 방어되지 않는다.

턱밑에 붙은 심술보가 송두리째 파진다. 도톰한 점 한가운데 억센 털 하나 놀부처럼 자라고 있었지. 눈꺼풀 점은 따갑기도 해라, 눈물이 쏙 둘러빠진다. 콧잔등 옆 두어 점은 선글라스 끼고 내달렸기 때문인데, 오래 살고 싶어서 욕심보가 생긴 거야. 걸음마다 부대꼈으니 뿌리가 깊을밖에. 양 볼때기에 먹물처럼 눌어붙은 검버섯들이 통째로 지워진다. 소싯적 이발소에서 무딘 칼로 내려 긁힌 탓에 핀 저승꽃이다. 죽을 땐 한평생이 필름처럼 스친다더니, 점 하나마다 아롱진 내력이 생생하다.

화상 딱지가 제풀에 떨어질 때까지 찝찝하게 지냈다. 훑어낸 색소가 도질까 봐 집안에서만 맴돌다시피 했다. 단군신화 속 곰이 따로 없었다. 달포가 지난 후 미진한 부위를 마저 지졌다. 사포로 민 자국을 보드라운 지우개로 지운 격이다. 마무리까지 깔끔하니, 돈값을 하는구나 싶었다.

“앞으로 5년은 저 볼 생각 마세요.”

의사 선생 익살스러운 작별 인사가 고맙고 시원해서 두 손 모아 허리를 굽혔다.

진득한 고약을 닥지닥지 발라가며 또다시 시간을 죽였다. 술 먹자던 친구나, 고스톱 치러 오라던 꾼들이 연락을 끊을 때쯤 나는 사람이 되었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제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 사람 노릇 잘하며 살라는 뜻일 것이다. 환갑을 넘기고서야 얼굴을 손본 주제에 과욕이 아닌가 싶다. 이웃에게 그저 점 뺀 턱으로 고기 근이나 굽고, 허여멀끔 미소 띤 면상을 들이댈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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