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론 / 여세주

 

 

시골 마을에 아담한 집 한 채를 새로 지었다. 깊은 산골은 아니지만 작은 냇물이 흐르는 골짜기 마을이다. 그래서 '대곡리'라 부른다. 옛날 이름은 '한골'이었단다. 처음 와 본 곳이지만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이리라. 마을 풍경도 그러려니와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새 주인을 찾고 있는 집터였다. 서쪽으로 나지막한 산을 끼고 있는 곳인데, 그 산에는 바위가 가파른 산기슭을 떠받치고 있고, 상수리 나무와 대나무가 빽빽이 하늘까지 솟아 있었다. 마당에서 산을 올려다보면 마치 깊은 산속에 들어온 느낌이어서 금세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새집은 이듬해 봄이 시작될 즈음에 완공되었다. 담도 없는 마당은 황량했다. 측백나무와 사철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공간의 공허함을 덜어주었다. 위쪽 마당에는 잔디를 깔고 몇 그루의 유실수 묘목도 심었다. 아래쪽 마당에는 주차 공간과 함께 스무 평 남짓한 텃밭도 만들었다. 남의 손 빌리지 않고 혼잣손으로 이것저것 하느라 꽃 한 포기 심지 못했다. 텃밭만 만들었지 뭔가를 심어서 기를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커다란 콘크리트 구조물만 덩그렇게 쓸쓸했다.

 ​야생화들이 그나마 위안이 되어 주었다. 시골의 마당에는 꽃을 심지 않아도 꽃들이 스스로 찾아왔다. 수돗가에서 봄까치꽃이 옅은 보랏빛 얼굴을 내밀며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했다. 화단에는 어느새 날아온 건지 제비꽃이 자줏빛 꽃부리를 쳐들고 앉았다. 개망초는 산비탈에 비켜서서 여름을 재촉했다. 가느다란 흰색 꽃잎이 촘촘히 돌려나고 가운데에는 노란색 꽃술이 빼곡히 박혀 기하학적 조형미를 갖추었음에도 청초하기 그지없다. 앙증맞은 꽃을 가냘픈 꽃대에 달고 산들대는 씀바귀는 고혹적이었다. 노란빛 꽃이 파릇파릇 생기를 띠기 시작한 잔디와 어울려 보란 듯이 환하게 웃었다. 하나의 꽃대에 두세 송이 피었다가 지고나면 새 몽우리가 다시 꽃으로 피었다. 잔디 사이에 숨어서 핀 괭이밥도 싫지 앟았다.

 한두 해가 지나면서 야생화들은 온 마당으로 번졌다. 홀씨가 여기저기 날아가 수많은 개체로 불어났다. 잔디밭이 온통 그들 차지가 되어버렸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없이 피어나는 야생화, 이들이 돌연히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토록 마음이 끌렸던 꽃들이었건만 잡초처럼 보였다. 생김새로 보아, 잡초라고 할 만한 이유는 없다. 그들대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그 꽃은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을 지니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그들이 잡초처럼 보이는 것은 순간적인 기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도 그 멋있는 자태를 보노라고 기르는 터에, 예쁜 꽃까지 피우는 야생초를 기분에 좌우되어 잡초로 간주해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정원사의 기분에 따라 잡초로 전락하여 뽑혀버리는 신세가 된다면, 그 야생화들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매일 잔디밭이나 텃밭의 잡초를 뽑는 일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하루 한 시간 정도나 이 일에 매달린다. 요즈음 나를 가장 성가시게 하는 것은 씀바귀다. 잔디밭 이곳저곳을 점령한 제비꽃이나 개망초 따위는 한번 뽑아내면 그나마 그해에는 돋아나지 않고, 팽이밥도 잔디 사이에 숨어 있어서 그렇게 눈에 그슬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씀바귀란 놈은 생육이 빨라서 눈에 띄는 대로 매일 뽑아도 남은 뿌리에서 어느새 다시 돋아난다. 뿌리가 땅속 깊이 뻗어 있어서 땅을 그만큼이나 파서 뒤집지 않고는 씀바귀를 뿌리째 제거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이놈을 잡겠다고 잔디밭을 온통 뒤집어 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 집 마당 여기저기에서 돋아나는 녀석은 벋음씀바귀다​. 그 연약한 것들이 얼마나 탐욕스러운지, 욕심이 많아도 너무 많다. 저에게 주어진 자리에 만족하면서 삶의 공간을 넓히더라도 조금씩 확장해 가면 될 것을, 한두 해 만에 온 마당을 차지하고는 너풀대며 유난을 떤다. 한 해를 살다가 자리를 비켜주는 것도 아니다. 종족 번식 본능까지 나무랄 수는 없다. 욕심이 없는 생명체가 어디 있느냐만, 남의 자리를 빼앗아 영원히 차지하려 드니 씀바귀의 탐욕은 너무 지나치다. 남의 것을 넘보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사는 것이 상생의 도리이거늘, 지나친 욕심을 부려 균형을 깨뜨리고 질서를 무너뜨린다.

 아무리 고운 자태를 가졌더라도 욕심이 지나치면 천해 보이는 법,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땅속에 잠복해 있다가 어느 틈에 돋아나 노란 꽃을 피운 그놈을, 오늘도 연민을 애써 감춘 채 사정없이 뜯어버린다. 욕망이 아주 없어도 무기력해지지만, 욕망이 너무 지나치면 파멸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잡초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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