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상수 방민

걷는다배낭을 등에 매단 채발은 앞으로 향하고 눈은 주위를 살핀다코로 들이쉬는 공기에는 해초 냄새가 은근하다바닷가 모래밭이라 발이 쑥쑥 빠진다속도가 느릿하다해파랑 길을 걷는 중이다.

길을 안내하는 리본이 마을을 지나서 차도로 향한다차도와 나란히 이어진다가로등 기둥에도 리본이 달려 있다얼마쯤 걷다가 산길이나 마을길로 이어질 것이다찻길도 바닷길과 산길이 막힐 때 돌아간다차와 나란히 걷는 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차가 지나가는 소리도 불편하고 바로 옆을 스치는 차량도 불안하다다른 길이 없으니 잠시 따라 걷는다.

차가 앞에서 왔다 사라지고뒤에서 나타나 달아난다차창으로 누군가 힐끗 보는 것 같다배낭을 짊어지고 스틱을 휘저으며 걸어가는 우리를 보는 그는 무슨 생각할까 잠깐 궁금하다차를 타지 않고 왜 걸어갈까 의아해 할까차에서 내려 한 번쯤 걸어볼까 상상하며 부러워할까헛짓이라 흉을 볼까알 수 없는 채로 차를 맞이하고 보내며 걷는다저 앞 전신주에 리본이 펄럭이고 마을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걷는 시작점까진 차를 탔다버스도 탔고 열차도 이용했다택시도 타면서 걷는 곳까지 왔다목적지까지 다 걸어가면 역시 또 차를 이용해 집에 돌아갈 것이다먼 거리는 여전히 차를 타고 도로 위로 이동하며 짧은 거리는 걸어 다닌다지금은 걸으며 보고 들으며 냄새도 맡아가며 여행 중이다.

길로 다닐 때 사용하는 편리한 도구를 인간은 여럿 발명했다자전거와 자동차배와 열차를 넘어서 항공기와 우주선까지 만들었다이동에 편리하고 오가는 속도를 높이려고 거듭 발달해 왔고 지금도 멈추지 않는다이런 속도로 가면 얼마나 대단한 것이 또 나타날지 알 수 없다하늘로 혼자 날아다니는 것도 나올 것이고 공중을 나는 자동차는 실용화가 멀지 않아 보인다.

세상에 태어나서 인간은 기었다다음엔 걸음마를 거쳐 걷기를 익혔고 더 빨리 옮기는 달리기도 학습했다이동하는 형태는 다르지만 타고난 몸 일부를전신을 써가며 공간에서 이동했다땅에선 걷지만 물에서는 헤엄칠 줄도 알게 되었다새처럼 날지는 못하나 비행기를 만들어내 새보다 높이 멀리 빠르게 날기에 이르렀다걷는 것보다 이동하기에 좋은 탈것은 많아졌다.

그래도 여전히 인간의 기본 이동 수단은 걷기다원시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발로 옮겨 다녔다두 발을 사용하는 인간이 있고네 발을 쓰는 짐승도 있고날개를 파닥여 하늘을 나는 짐승지느러미로 물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제자리에 붙박힌 식물과 다르게 동물이라 불리는 생명체는 모두 이동하며 산다이동하지 못하면 죽은 것이다움직이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움직임 곧 이동이 생명과 다르지 않다.

나에겐 생존수단이었던 걷기가 지금은 생활 수단을 넘어 실존 수단으로 변했다걸으면서 여행하고여행하면서 실존의 생생함을 찾는다걸으며 몸으로 전해오는 움직임을 느끼고 살아서 꿈틀대는 충만감을 맛본다다른 어떤 행위를 하는 것보다 걸으며 세상을 대할 때 더욱 살아있다는 실감에 빠진다살아있기에 움직이고 발을 옮기면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온몸에 흐른다가장 강렬하게 삶을 만끽한다걷는 순간엔 인생 허무를 몰아낼 수 있다전신으로 피가 돌고 내뿜는 숨결에서 미련이 날아가고 걱정도 털어지며 두뇌도 맑아진다온전한 생의 환희에 빠져든다살고 있음 그 자체다.

문명 발달로 조금 더 편하고 빠르게 이동하는 수단이 있다그것을 이용하는 여행도 한다사람들 중에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도 하고다른 여러 교통수단으로 더 빨리 더 멀리 더 많이 여행한다분명 걷는 것보다 그런 도구를 이용하면 편리 하고 좋은 것을 알지만 걷는 것보다 선호하지 않는다걷기 이상의 좋은 여행이 없으니 말이다.

몇 해 전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걸었다자전거로 그 길을 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순례 길을 완보完步하고 받는 인증서 발행도 걷기와 자전거만 인정한다최소 도구를 이용한 여행이라 그런지가장 오래된 이동 수단이어 그런지인간이 스스로 힘을 써서 그런 것일 거다괴나리봇짐을 메고 다녔던 선조처럼 전통적 여행 수단을 높이 평가해 그런지도 알 수 없지만 그런 방식을 인정하는 것에 맘껏 동의 박수를 보낸다.

걸으며 공간을 이동하고 확대하는 경험은 차보다 느리지만 천천히 지나치며 남다른 사물과 더 깊이 교감하게 한다몸의 감각 기관을 둘러싼 외부 존재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한다사물과 인간양자 대면이 외면의 형식상 스침이 아니라 내용적 스며듦을 만난다다른 두 존재의 진실한 울림이 오간다그런 과정이 좋고 그런 순간이 기쁘다.

누가 뭐라 해도 상수上手는 걷기 여행이다자전거 여행도 준 상수로 생각한다자동차로 여기저기 지점으로 이동하여 주변을 둘러보는 여행은 하수下手많은 사람이 애용하는 이 방식은 여행 진수를 맛보기 어렵다흉내일 뿐 진실한 여행 참맛은 맛보기 어렵다걷기 여행은 내가 선택한 최고 방식이다그래서 오늘도 여기 해파랑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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