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발 선인장 /신금재


LA 시내 관광을 하면서 제일 부러운 것은 겨울에도 피어난 길가에 꽃이었다.

어디 꽃뿐이랴,

담장 너머 주렁주렁 매달린오렌지와 갖가지 색깔의 고추 등.

돌아오는 길에 가장 그리움을 남긴 것도 동서네 마당에 피어있던 자그마한 꽃이었다.


캘거리 공항에 내리자마자 불어오던 로키의 눈바람을 안고 집으로 들어서자 뜻밖에 나를 맞이한 것은 선인장 꽃이었다.

이웃집에서 성당 모임을 하다가 한 줄기 얻어온 게발선인장 한 뿌리.

다른 꽃들이 만발한 여름에는 조용히 여름 안거에 들어간 수도승처럼 침묵하더니 마당에 꽃들이 모두 잠든 겨울에 꽃봉오리를 열어 피어난 그가 참으로 대견스럽다.

게발선인장 꽃은 눈에 잘 보이는 앞쪽이 아니고 햇살이 잘 들어오는 창문 쪽으로 피어나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뒷 쪽이었는데 일주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의 눈에 처음으로 보인 것이었다.

꽃에 무심하던 남편도 눈을 크게 뜨고  '정말이네!' 하며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선인장 꽃을 들여다보는 그의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마치 선인장 바늘처럼 꽃 사이로 반사되어 더욱 

빛이 났다.


그의 말대로 '맨땅에 헤딩하였다.' 라고 표현하는 이민살이는 선인장을 닮아있다.

우리가 사는 캘거리는 로키 산자락이 이어진 드넓은 평원-이름 하여 프래리 지역- 앞으로 먼 미래에는 

준사막 지역으로 변한다고 한다.

로키로 달려가는 1번 하이웨이 양쪽으로 가도 가도 이어지는 가시나무 침엽수림.

드넓은 평원에 보이는 식물의 잎은 건조한 날씨에도 잘 견디는 선인장 줄기와 비슷하다.

식물의 잎이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양분을 만들고, 호흡작용을 하고, 몸속의 수분을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라는데.

살아남기 위하여 잎을 가시로 바꾼 선인장처럼 우리 이민자의 삶도 말라죽지 않기 위하여 가시를 만든 

선인장이 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 지 돌아다본다.

사막의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가시-새빨갛고 날카로워 위협적으로 보이는 긴 가시, 

한 번 찔리면 잘 빠지지않는 가시 등.

새로운 땅에서 살아남으려고 상대방에게 위협적으로 보이는 가시의 언어를 사용한 적이 많았다.

한 번 찔리면 잘 빠지지 않는 선인장 가시처럼 그 말들은 상처가 되어 회복되지 않았고 깊은 가슴으로 

들어가 응어리가 되기도 하였다.

선인장에는 발처럼 그늘을 만들어서 뜨겁고 강한 사막의 햇볕으로부터 줄기를 보호하는 것이 있다는데 

우리 이민살이는 적극 공격하기보다는 방어하는 모습에 더 가까울 것이다.

바깥 세상살이에서 부딪히며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곳은 그래도 우리 가정이라며 지친 줄기를 내려놓고 

대화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민 살이 하는 동안 선인장처럼 남편도 부드러운 이파리 성향에서 날카로운 가시성향으로 변하였지만, 

아직도 마음에는 물을 가득 저장한 선인장 줄기를 닮아있다.

지난여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딸아이는 우리와는 다른 사고가 있어 가끔 우리와 부딪히

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 물줄기를 열어 달아오른 심장을 식히는 요즈음의 그이다.


얼마 전 결혼하여 분가한 아들네가 왔을 때 이민 초창기에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힘들었던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문화충격이라고 하였다. 

서로 다르게 받아들인 문화충격에서 온 아버지에 대한 상처.

추운 겨울날, 휴대 전화기를 안 가져간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며 고생하였다고 

아버지를 원망하자 밖으로 아이들을 내쫓은 조선시대 가장의 폭력 등.

아이들은 이민 와서 받은 상처들을 가슴에 안고 한동안 우리에게 반항하였다.


아이들 어려서는 자상하기만 하던 그가 이민을 온 후 아이들 대하는 태도는 선인장을 닮아갔다.

적응을 비교적 빨리한다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별 문제 없이 잘 헤쳐나갔는데 오히려 집에서는 문제아가 

되었다.

핼러윈 데이에 아들아이가 머리카락에 호박색 물감을 들인 것이다.

아이들의 적응속도보다 한참 느렸던 우리는 문 앞에서 '으악' 하고 소리 지르며 뒤로 넘어갈 뻔하였다.

그런데 그다음이 더 문제였다.

아버지의 한 마디 '당장 밀어' 에 아들아이는 화장실로 들어가 스님처럼 머리를 밀고 나왔다.

나는 참으로 황당하였다.

한 마디의 응대나 변명도 없이 그냥 아이는 아버지의 명령대로 한 것이었다.

나는 그 아이의 마음에 응어리진 상처를 보았고 남편은 반항보다 더 무서운 아이들 침묵의 대답을 

보았을까.

아들아이는 그 후 하기 싫은 과학 공부를 사 년 넘게 하다가 우리에게 어느 날 갑자기 독립선언을 하고 

그만의 사막으로 단단한 선인장이 되어 떠나갔다.

회한과 후회의 나날들이 찾아와 대화가 사라진 일층 거실은 또 하나의 사막이 되었다.

빈 사막을 지키는 은수자처럼 밤하늘 아래서 그는 말 없는 고독의 별을 세었다.


가시로 변한 잎을 줄기가 대신하듯 나는 기꺼이 부드러운 줄기가 되어야 하였다.

아이들과 대화의 양분을 만들 수도, 고민의 긴 호흡을 할 수도 없는 아버지 가시를 대신하여 부드러운 

줄기를 닮은 천사표 엄마가 되기로 한 것이다.

무조건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같이 공감하고.

아이들은 막힌 숨통을 틔우듯 그렇게 졸졸졸 시냇물 소리를 내며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친정어머니를 보고 늘 천사표 엄마라고 불렀다.

유교 사상으로 일생을 사셨던 아버지는 엄부자모를 외치며 우리에게 엄격하셨고 무서운 아버지를 

피하여 도망가는 곳은 어머니의 등 뒤, 부드러운 선인장 줄기가 있던 화분 뒤였다.

장사나간 어머니가 어쩌다 늦기라도 하면 덜컥 겁이 났다. 아버지와 자주 다투던 어머니가 이대로 

영원히 안 돌아오시면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겁이 나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 마당에서 기다리다가 밤하늘에 별들이 더 많이 보이고 보름달이라도 떠오르는 날이면 멀리 

신작로까지 나가기도 하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빈 함지박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을 이마에 올려 밤하늘을 바라보시는 

어머니가 보이면 한달음에 달려갔다.

"어두운데 왜 나왔어." 하시면서도 온종일 땀에 젖어 끈끈한 손으로 어깨를 잡아주시면 밤하늘에 

빛나는 별도 달도 모두 내 것이었다.

얼른 커서 어머니를 도와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매일 하였다.


어머니의 늦은 귀가는 산 너머 갯벌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끝났다.

화학공장에서 공장신축을 하느라 동네 아주머니들을 일당 노동자로 모집하자 어머니도 이웃집 

아주머니들과 공사장으로 나가셨다.

아침에 등교할 때 버스정류장까지 어머니와 함께 나가는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면 정해진 시간에 돌아오셔서 함께 마당에서 수제비를 먹는 것도 작은 행복이었다.

어머니는 모든 결정을 우리가 선택하도록 하셨다.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진학문제까지도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네 마음에서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실 때면 어머니의 얼굴에 잔잔하게 퍼지던 미소는 마당 의자에 놓여져있던 게발선인장의 미소를 닮아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투영이라도 하듯 나는 아이들을 들판에 놔먹이기로 작정한 방임형 어머니가 

되어갔다.

사람들은 주말이면 가톨릭 합창단으로 가서 단원들과 지내고 돌아오게 하는 나를 보고 왜 교육을 

전공하였다는 사람이 자식을 그렇게 키우느냐고 하였다.

그런 소리에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내가 하는 말은 늘 돈 많이 버는 직업, 명성이 높은 직업 다 부질없다. 네가 평생을 해도 행복한 일을 너의 직업으로 삼아라.

나는 내가 한 그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을 더 넓은 벌판으로 내몰아갔다.


톰 로빈스라는 사람은 인류가 진보해 온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인류는 진보해왔다. 분별력 있고 책임감 있으며 신중했기 때문이 아니라 놀기 좋아하고 반항적이며 

미성숙했기 때문이라고.

선인장도 로키 산맥이 솟아오른 뒤 산맥의 반대편에 사막이 생기고 사막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진화한 것처럼 -잎이 없어지고 줄기는 기둥 모양으로 마침내 공 모양으로 발달해가듯이, 부족하고 미성숙한 나의 환경에서 아이들은 진보해갔다.


한동안 사막처럼 황량하던 우리 집에 손자가 태어나면서 다시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다.

화려하게 몸치장을 한 선인장꽃은 아니지만, 아기의 발그레한 웃음이 마치 선인장의 발아 점에서 

돋아난 작은 씨앗이 되어 찾아왔다.

줄기의 맨 끝 부분 생장점이 있어 선인장이 자라듯이.

이웃집에서 얻어온 게발선인장 줄기 하나, 제법 뿌리를 내리고 꽃도 피웠다.


이제 이민 살이 십 여년, 식구도 늘어나고 우리도 흰머리 희끗희끗 날리며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뾰족하게 가시 보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던 지난 세월.

이제는 좀 더 너그럽게 뒤로 물러서서 아름다운 한 송이 선인장 꽃을 피워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