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스키드 로우’ 노숙자 인생역전을 꿈꾸다
“정부·자원봉사자 등 힘 합쳐
아낌없는 관심과 사랑 준다면어엿한 사람으로 설 수 있을 것”
감동적인 영상을 보았다. 노숙자를 대하는 사람의 심리를 분석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몰래 카메라가 거리에 설치되었다. 촬영 팀은 건장한 백인청년 노숙자 옆자리에 열 살 정도의 남자아이를 거지차림으로 연출하여 앉혔다. 그러자 청년의 깡통으로 던져지던 동전이 모두 아이의 빈 깡통으로 가버렸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의 깡통은 동전으로 채워지고 청년의 것은 텅텅 비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동정을 받던 청년은 아이에 대비되어 오히려 비난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뒤통수를 때리며 젊은 놈이 뭐 하는 짓이냐며 야단까지 쳤다. 영상을 보는 마음이 안타까웠다. 저 마음이 어떨까. 왜 하필 아이가 자기 옆에 앉아서 이렇게 수난을 받게 하는지 짜증이 나겠다고 생각했다.
해가 중천을 훨씬 지난 오후, 시무룩하게 앉아있던 청년은 자리를 떠나더니 햄버거를 사와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이는 엉거주춤 햄버거를 받아들었다. 그러자 촬영팀이 우르르 뛰쳐나와 몰래 카메라라는 고백을 했다. 왜 아이에게 햄버거를 사다주었느냐는 질문에 청년은 대답했다. “아이도 배가 고플 것 같아서. 나는 비록 이렇게 거지가 되었지만 저 아이는 절대로 나처럼 되지 말라는 말도 하고 싶었다. ” 청년은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았다. 멀쩡한 청년이 어쩌다가 노숙자가 되었는지. 그의 건강하고 따뜻한 마음에 감동이 왔다.
몇 년 전에 노숙자를 위한 행사에 참여한 기억이 난다.전도를 목적으로 점심 대접도 하고 머리도 깎아주는 일이었다. 흑인이 대부분인 노숙자들 속에 깨끗한 백인 할아버지가 끼여 앉아 빵을 뜯고 있었다. 하이, 인사하는 나를 쳐다보는 눈이 참으로 깊었다. 그는 노숙자 생활을 한 지 삼 년이 되어가는 전직 교수였다. 자신도 어떻게 하다가 노숙자가 되었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은퇴를 하고 이혼을 하고. 집을 빼앗기고. 어느 날 노숙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강단에 서서 학생을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LA 다운타운에 가면 스키드 로우(Skid Row)라고 불리는 노숙자의 거리가 있다. 2000년도의 인구센서스 조사에 1만7천740명이었다고 하니 지금은 그 수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상상이 된다. LA 노숙자관리국(LAHSA)의 ‘2017 노숙자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LA 카운티의 노숙자 수는 지난 1월 기준 5만7천794명, LA 시는 3만4천189명으로 1년 전에 비해 각각 23.3%, 20%가 증가했다. LA 카운티의 경우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계 노숙자도 1년 사이 31%나 증가했다. 특히 한인이 밀집한 코리아타운 지역의 노숙자는 지난해보다 무려 36%가 늘어나 1천508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인종별 노숙자 현황은 흑인이 40%로 가장 많고, 히스패닉 35%, 백인 20%, 아시안 1%다.
성별로는 남성이 68%, 여성 31%이고, 정신질환을 앓는 노숙자는 전체의 30%, 약물중독에 빠진 노숙자는 23%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마다 겨울이면 추위를 피하여 따뜻한 곳으로 몰려오는 노숙자까지 합세하여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거대한 우범지대가 도심 한가운데에 자꾸 형성되고 있다.
이에 LA 시는 노숙자 문제 해결을 위해 13억7천600만 달러를 예산으로 책정했다. 그리고 샌디에이고 시는 8천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하고, 관광객이 붐비는 도시 샌프란시스코는 언론인들이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노숙자 정보와 콘텐츠를 공유해서 노숙자 문제 대책 관련 시리즈를 신문에 게재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할 예정이며 그것의 해결 방안과 관련된 사설을 잇달아 싣는다고 한다. 또한 시 당국에는 정신건강센터를 확장하여 정신병을 앓고 있는 노숙자를 수용, 치료해 줄 계획이다.
더럽고 냄새 나는 외모와 천박한 인격을 가진 잉여인간으로 취급받아온 노숙자들. 그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들도 한때는 가족이 있었고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터. 어쩌다가 삐끗 궤도를 벗어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가엾은 사람이다. 정부는 물론 종교단체나 비영리단체, 자원 봉사자 등 모두가 합세하여 영혼의 치유를 위한 정신 상담과 육체를 위한 주거지를 제공하여 그들도 어엿한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기대해 본다.
길거리에 방치된 피아노를 쳐서 인생 역전을 이룬 노널드 굴드, 마약과 술에 찌든 채 20년 간이나 노숙자로 살았지만 성우에의 꿈을 잃지 않고 마침내 성우가 된 테드 윌리암스, 아들과 함께 노숙자로 전전하다가 기어이 주식 중개인으로 성공한, ‘행복을 찾아서’의 영화 주인공 크리스 가드너의 이야기는 결코 기적이 아니다. 아낌없는 사랑과 따뜻한 배려로 그들을 부축하여 함께 간다면 제2, 제3의 노널드 굴드와 테드 윌리암스, 크리스 가드너가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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