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그대, 용감한 청년으로 있어주오 


성민희/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7/02/24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7/02/23 19:18

 

 

갑자기 남편의 팔꿈치가 날아와 내 얼굴을 강타했다. 코가 부러졌나 얼굴을 감싸 쥐고 벌떡 일어났다. 한밤중에 이 무슨 날벼락인가. 버둥대는 팔다리 때문에 이불도 함께 풀썩거린다. 꿈속에서 누구랑 싸우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기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신음 소리가 절박하다. 흔들어 깨웠다. 웅웅 신음하던 사람이 헐떡이며 눈을 뜬다. "누구랑 싸웠수?" 얼굴을 들여다보니 식은땀까지 흘린다. 스토리가 엄청 궁금하지만 잠이 달아나 버릴까 봐 꾹 참고 돌려 눕혔다. 곧 순한 숨소리가 들렸다.

얼마를 더 잤는지 창밖이 희끄무레 동이 튼다. 그런데 옆자리가 다시 요란하다. 또 싸우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한밤중보다 동작이 더 크다. 하룻밤에 두 번씩이나 싸우다니. 보기에는 얌전한 이 남자가 원래 싸움꾼이었나? 이번에는 더 두들겨 맞기 전에 일찌감치 흔들어 깨웠다. 눈을 뜬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휴우 안도의 숨을 내쉰다. 또 물었다. "누구랑 싸웠수?" 이제 해가 떴으니 일어나도 될 시간이다. 1, 2편 두 스토리를 모두 들어야겠다. 도대체 싸운 이유가 무엇이며 이겼는지 졌는지.

어떤 노부부가 잠을 자는데 괴한들이 부부 사이의 방바닥을 가르고 그 속에 짐승을 넣어두고는 서로 가까이만 가면 올라오게 만들었다고 했다. 남편은 정의의 사도 인양 할매 할배를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올라오려는 짐승을 그렇게 두들겨 패고 발로 찼다고 한다. 나의 방해로 못 잡았다며 아쉬워한다. 속으로 픽 웃었다. 내가 구해준 줄이나 알지. 2편도 물었다. 신기하게도 남편은 스토리 두 개를 상세하게 기억해 낸다. "웬 나쁜 놈들이 길을 막고 서서 위협하는기라. 이단 옆차기로 고마 팍 팍!" 손바닥을 쫙 펴고 팔꿈치를 직각으로 꺾더니 진짜로 허공을 팍팍 가른다. 몇 명이던데? 몰라, 많더라. 그라모 도망을 가야지 싸우몬 우짜노? 그래도 사나이인데 도망은 안 가지. 그놈들 작살을 내 줄라 했는데. 아이고, 내가 안 깨웠으면 참말로 많이 터졌을 낀데.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우리는 마주 보고 킥킥 거렸다.

남편은 베개에 머리만 대면 그대로 잠 속으로 빠져드는, 생활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잠으로 푸는 사람이었다. 잠은 그의 비타민이자 보약이었다. 예술적인 음대나 미대 학생들은 천연색 화려한 꿈을 꾸고 딱딱한 공대 학생들은 흑백 꿈을 꾼다는 글을 읽었던 날이었다. 나는 물었다. 당신은 꿈이 총천연색이야, 흑백이야? 한참을 곰곰 생각하더니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나는 꿈 안 꾼다!" 그러던 남자가 요즘 부쩍 꿈을 꾼다. 조그만 소리에도 벌떡 벌떡 일어난다.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며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노인들은 꿈을 꿀 것이다.' 성경 말씀처럼 예언을 하던 어린 시절도, 환상을 보던 청년 시절도 모두 지나가고 이제 꿈을 꾸는 노인이 된 것인가. 비록 육신의 시절은 노인일지라도 마음만은 아직도 젊은가 보다. 정의의 사도 운운하며 싸우는 것을 보면.

매일 밤 맞고 일어나 잠을 설쳐도 좋으니 꿈에서라도 용감하게 싸우는 청년으로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창조문예> 2018년 12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