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수필] 속담을 주제로 한 수필
까르페 디엠 (Carpe diem)
-집에 불이 나거든 그 불로 몸을 녹여라-
성민희
딸네 가사도우미가 타주로 이사를 가버렸다. 할 수 없이 구인 광고를 내고 인터뷰를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오늘도 여섯 명을 만났다. 모두 어려운 살림을 하는지 버스를 타고 왔다고도 하고 걸어서 왔다고도 한다. 그들의 사연을 듣다가 주제넘은 말을 하고 말았다. 힘이 들더라도 현재를 사랑하며 즐기라고.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고 지금 이 환경은 자신의 운명에서 최선이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도 한 살도 안 된 아기를 남에게 맡기고 직장을 다닐 때가 있었다.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눈물범벅이 되어 울던 딸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게 눈에 보인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귀퉁이에 겨우 뿌리를 내린 그때는 어느 날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질 거라는 꿈으로 살았다. 그랬기에 그 시간은 오직 미래를 위한 디딤돌일 뿐 깊은 의미가 없었다. 그냥 흘려보내는 짧은 순간으로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부려놓고 살아갈 시공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여겼기에 충만하게 현실을 즐기지 못했다.
어느 날 김한길 씨의 고백 글을 읽었다. 그는 소설가 이어령 씨의 딸 이민아 씨와 결혼을 하여 미국으로 왔다. 그들은 공부와 사업을 위해 모든 것을 보류한 채 오직 성공을 위해 매진했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난 후 그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고 이민아 씨는 변호사가 되었다. 단칸 셋방을 떠나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대저택으로 이사를 했다. 드디어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시간과 물질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 유보되었던 그 모든 것은 그들을 기다려준 것이 아니라 소멸되고 있었다. 소소한 기쁨과 작은 환희, 이해와 배려, 소통과 나눔이 없는 가정생활은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주지 못했다. 김한길 씨는 말했다. ‘마침내 우리는 이혼에 성공했다.’ 그들은 사회적인 성공과 더불어 이혼에도 성공했다는 슬픈 글이었다. 그 글은 내게 깊은 공감을 주었다. *올라갈 때도 꽃을 보며 즐길 줄 아는 여유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스페인의 속담에 ‘집에 불이 나거든 그 불로 몸을 녹여라’라는 말이 있다. 내 재산이 모두 재가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것으로 몸을 녹이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는 뜻이다. 어떠한 불행의 순간이 오더라도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현재를 잡으라.(Seize the Day)는, 현재의 삶에 온전히 젖어들어 흡족하게 누리라는 것이다. 이 현실은 바로 나의 운명이고 내가 걸치고 살아야 할 나의 맞춤옷이다. 내가 딛고 가야 할 길이기에 혹여 돌부리가 있으면 비키거나 밟으며 지나가고 잡초가 우거져 있으면 헤집어가면서 가야한다. 바람이 불면 옷을 여미고 비가 오면 큰 나무 밑에 피해서 그치기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한다. 힘들다고 비켜갈 수도 주저앉아 있을 수만도 없는 나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비효과’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주인공 에반은 유년기의 자기 일기를 읽으면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는 능력이 생긴다. 과거의 시간 속에서 일어났던 후회되는 시점으로 돌아가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하여 다른 결과가 나오게 만들 수도 있게 되었다. 친구들과 장난으로 저질렀던 과거의 일을 그때와는 다른 상황으로 돌려놓는다. 이웃집의 젊은 엄마와 아기를 죽인 사건은 죽이지 않는 것으로, 그 당시에는 안타깝게 헤어졌던 여자 친구와의 사랑을 다시 회복시키는 상황으로 바꾼다. 그러나 모든 사건을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바꾸었지만 결과는 또 다른 고통과 파장을 몰고 온다. 그것은 마치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 한 번이 뉴욕의 태풍을 일으키는 것처럼. 내가 겪고 지내가야 할 현실을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며 바꾼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변화였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혼란과 충격적인 사건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비록 과거가 불만스럽더라도 그것을 인정하며 내 과거가 만들어 낸 현재를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였다.
과거의 어떤 일은 그때 그 시간에 그렇게 발생했어야했고 그때에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이 바로 내 운명이었다는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그 어떤 것을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삶인가. 과거가 만들어 낸 현재를 거부하지 말고 소중히 여기고 충족히 살아주는 것이야말로 내 존재에 대한 경외심이다.
조엘 오스틴 목사는 <긍정의 힘> 서문에서 ‘꿈을 이루고, 성공하고, 행복을 쟁취하는 비결은 ‘오늘’을 온전히 사는 것이다.’ 라고 했다. 소설책 한 권처럼, 하루가 한 페이지처럼 넘어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한번 넘기고 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오늘 하루는 단 한 자루뿐인 내 생명의 불꽃이 타내려가고 있는 순간이다.
까르페 디엠 (Carpe Diem).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을 철저히 사랑하고 누리고 아껴가며 살자.
★ 고은의 시 ‘그 꽃’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