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미주통신] 그대 있음에
‘엄마’라는 말만큼 그리운 단어 ‘조국 ’ ‘내가 나서 자란 땅이 실재하고‘ 돌아 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2017.03.23
성민희
그대 있음에
예순세 살의 남성이 한국으로 추방되었다. 범죄인 인도 절차에 따른 조처였다. 부산 기장군에서 건축 골재 운송업을 했다는 그는 거래업체 사장들에게 돈을 갚지 못해 관광 비자로 도피해왔다. 전문 브로커를 통해 위조 신분증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매달 400불씩을 상납했지만 결국 공문서 위조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어 한국 경찰이 미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그를 포착하고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다. 인천공항에서 수갑을 찬 남자는 오히려 무거운 짐을 벗는 기분이었다. 타국에서의 13년은 너무 추웠다며 돌아갈 모국, 조국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칠십대 중반인 한인 남성은 영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한국으로의 추방을 요청했다. 소규모 회사를 운영하며 윤택하게 살던 그는 이웃 남성과 쓰레기통 배치 문제로 싸우다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손가락을 문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는 경찰의 조회 결과 음주운전, 가정폭력 등의 전과가 드러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노년의 몸으로 타인종 범죄자들과 함께 복역할 자신이 없어서 스스로 영주권을 반납하고 귀국을 결정한 것이다. 비록 미국에서의 편안한 삶은 모두 접었지만 어려움을 피해 돌아갈 조국이 있음에 안도했다.
오리건대학 폴 슬로빅(Paul Slovic) 심리학 박사는 ‘감정 휴리스틱(affect heuristic)’에 대해서 정의했다.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은 세상에 대한 믿음을 결정하게 하는 중요한 매체라는 이론을 펼치며 ‘엄마’를 그 실례로 들었다. ‘엄마’라는 말은 따뜻함과 보살핌의 느낌을 주는, 헤아리기 어려운 원초적인 의미를 머금고 있다. 폴 슬로빅의 이런 설명은 사실 ‘모국(Motherland)’이라는 말의 어원을 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그리움, 포근함, 용서 등의 의미를 ‘땅’에 붙여서 만든 합성어가 바로 ‘Motherland’다. 모국은 엄마라는 단어만큼이나 애절하며 감성을 촉촉이 적셔주는 절대 불변의 땅이다. 탯줄처럼 우리와 연결되어 있는 조국. 그 끈은 대대손손 이어지며 죽을 때까지 닳지도 녹슬지도 않은 채 우리 안에서 살고 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은 ‘조국 없이는 우리가 있을 수 없고 조국이 멸망하고 형체가 없어지면 우리는 정처 없이 떠도는 부평(浮萍)이다’라고 했다.
내 딸은 본국으로 추방되려는 인도네시아 여성의 미국 망명을 주선해서 성사시킨 적이 있다. 비영리 법률기관 '퍼블릭 카운슬(Public Council)'로부터 스물다섯 살의 인도네시아 여성이 이민국에 억류되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자진해서 변호를 맡은 것이었다. 이 여성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정폭력은 물론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종교 탄압까지 받았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 몰래 로스앤젤레스까지 왔다. 하지만 비자를 비롯한 모든 입국서류가 위조임이 드러나 공항에서 체포됐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하다는 딸의 변론으로 그녀는 법적인 체류 신분을 획득하게 되었다. 영주권을 신청한 것은 물론 인도네시아에 두고 온 세 살짜리 아들도 데려왔다. 그녀에게 있어서의 조국은 상처와 아픔이었다.
내 이웃에 베트남 가족이 살고 있다. 그들은 내가 한국에 간다고 할 때마다 부러워한다. 내가 나서 자란 땅이 엄연히 실재하고 언제든지 그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했다. 그들의 조국은 그저 가슴에 엉겨있는 그리움일 뿐이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동남아 일주 여행을 한다며 자기 키의 반이나 되는 배낭을 메고 유스 호스텔을 전전했다.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하룻밤을 보내며 친구를 만들어 함께 길을 나서기도 하는 그 곳에서 아들은 충격을 받았다. 서로를 소개하는 중에,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은 자신은 미국인이라고 강조를 해도 그들은 수용해주지 않았다. 그들의 마지막 질문은 “너의 조국은 어디니? What is your Motherland?”였다. 미국이 자기 나라인 줄로만 알고 자랐던 아들은 귀국 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며 부모의 나라 대한민국도 자기 나라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도 확신에 도움을 주었다. 이제는 야구나 골프대회에서 활약하는 한국선수에게도 열광한다. 미국에서 40년을 살아온 나도 가끔은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오렌지카운티라고 하면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묻는다. 아무리 미국시민이라고 설명해도 그건 의미가 없다. 나의 조국이 어디인지 참으로 궁금한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세계의 대도시마다 우뚝 솟아 있는 삼성과 LG 간판, 거리를 누비는 현대 자동차, 초음속 전투기 T-50을 수출하고 고급 백화점의 진열장을 Made in Korea로 채우는 멋진 나라, 자유와 평화와 인권이 함께하는 나라가 나의 조국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I am a Korean.”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환희하고 때로는 분개할 수 있는 우리의 조국이 있음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한국에 가면 교도소행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사하다는 남자와 미국에서의 윤택한 생활을 모두 포기해도 괜찮다고 하는 남자. 그들은 폴 슬로빅의 말처럼 조국이 주는 원초적인 의미에 믿음을 얹고 귀국 한다. 상처도 아니고 그리움도 아닌 자랑스러운 조국에서 다시 펼칠 두 남자의 삶이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안락하고 포근하기를 마음으로 축복한다.
<1500자 에세이> 중앙일보 [이 아침에] 안길 수 있는 엄마 같은 모국
성 민 희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7/03/23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7/03/22 19:56
육십 대 남성이 한국으로 추방되었다. 부산에서 건축재 운송업을 했다는 그는 거래업체의 돈을 갚지 못해 도피해 왔다. 위조 신분증으로 13년을 살았지만 결국 공문서위조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이어 한국 경찰이 복역 중인 남자를 포착하고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다. 인천공항에서 수갑을 찬 그는 오히려 무거운 짐을 벗는 기분이라고 했다. 타국에서의 도피생활은 너무 추웠다며, 돌아올 모국, 조국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