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길고 외로웠던 그해 여름
LA중앙일보] 발행 2017/09/19 미주판 20면
성 민 희 / 수필가
바람이 서늘한 여름의 끝자락,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지는 흘러간 옛노래가 있다. 어른들이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며 부르던 그 노래가 어찌 이리도 생생한지 모르겠다. 칠이 벗겨진 탁자 위 찌그러진 양은그릇에서 출렁출렁 튀어 오르며 흥을 돋우던 뿌연 막걸리도 눈에 보인다.
반짝이는 별빛 아래 소근소근 소근대는 그 날밤
천년을 두고 변치말자고 번개불에 맹세하던 밤
사나이 목숨 걸고 바친 사랑 무지개도 밟아놓고
그대는 지금 어디 단꿈을 꾸고 있나. 야속한 님아, 무너진 사랑탑아
내가 기억하는 가사를 들여다보니 웃긴다. 그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으니 댕기를 어찌 알았으며 모질다는 단어를 어찌 알았으랴. ‘댕기풀어’를 번개불에, ‘모질게도’는 무지개로 불렀다. 내 나름대로 수준에 맞는 작사를 해서 부른 셈이다. 목숨 걸고 바친 사랑이 뭔지도 야속한 님이 뭔지도 모르면서 어쩐지 그 노래는 슬펐다.
1964년, 엄마의 두 남동생, 즉 큰 외삼촌과 작은 외삼촌이 그 해 가을에 서독 광부로 떠난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한 달을 친구들과 함께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보낸다며 삼촌은 민박집을 빌렸다. 그 덕분에 이모집과 우리집 아이들은 바글바글 그곳에 부려졌다. 우리는 부기를 메고 외삼촌을 따라 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해가 어둑어둑 질 무렵이면 얕은 물속에 들어가 조개도 잡았다. 한쪽 다리에 힘을 주고 서서 다른 쪽 발로 트위스트 춤을 추듯 마구 모래톱을 비비면 발가락에 딱딱한 것이 걸린다. 그것을 엄지와 검지 발가락으로 허리춤까지 집어 올리고는 잽싸게 낚아채면 모시조개가 손에 잡힌다. 그렇게 잡은 조개를 넣고 감자도 숭숭 썰어 넣어 된장국을 끓였다. 다른 음식은 하나도 생각 안 나는데 보리밥에 슥슥 비벼먹던 그때의 구수한 된장국 냄새는 그립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한 명 두 명 언니와 사촌들이 떠나고 어쩐 일이었는지 나만 남았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던 언니를 기다리며 혼자서 뒷마당 옥수수도 따고 까맣게 여문 나팔꽃 씨앗도 받아 모았다.
어느 날 오후, 바닥에 엎드려서 그림일기 숙제를 하고 있었다. 모래사장의 사람들을 그리고 있는 내게 외삼촌이 '인산인해'란 단어를 가르쳐 주었다. 사람이 모여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었으니 사람들이 엄청 많다는 뜻이다. 알겠제? 지금 우리나라가 안 그렇나. 그제? 인산인해(人山人海). 나는 어려운 한자를 큼지막한 네모 칸에 써넣고 보니 유식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단어는 두고두고 글짓기를 할 때마다 써 먹었다.
내가 그린 그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삼촌이 뒤적뒤적 바지 주머니를 뒤져 다 구겨진 담뱃갑를 꺼냈다. 고개를 숙이고 불을 붙이더니 먼 하늘을 보며 후우 연기를 날렸다. 하얀 입김이 허공에서 잠시 맴도는 듯 하더니 이내 먼 하늘로 사라져갔다. 삼촌은 자꾸자꾸 연기를 날려보냈다.
우리가 빌린 민박집 옆집은 테이블이 세 개뿐인 술집이었다. 미닫이문 먼지 낀 유리 너머로 시커먼 파도가 출렁이는 시간이면 햇볕에 그을은 남자들이 백열등 아래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허연 런닝셔츠 바람으로 막걸리잔을 돌리면서 목청껏 유행가를 불렀다. 바안짝이이는 별빛 아래 소근소근~ 소근대던 그어 나알 바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듣던 노래가 여름이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진다. 그때는 여름밤이 참으로 길고도 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