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어느 날. 과외수업을 마치고 보도에 깔린 어둠을 밟으며 버스를 탔다. 버스 안은 조용했고 사람들은 듬성듬성 앉아 저마다 지친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맨 뒤 빈자리에 앉았다. 발간 전등불빛 아래에서 졸고 있는 사람, 멍하니 바깥을 내다보는 사람의 뒷모습이 참 정답게 보였다. 작은 공간에서 운전기사의 핸들에 따라 오른쪽 왼쪽으로 함께 흔들리는 게 마치 마음도 함께하는 동지가 된 기분이었다. 찬바람 부는 겨울날 따뜻한 난롯가에 옹기종기 모여 호호 손을 비비던, 좁은 방안에서 가족과 함께 백열등 불빛 아래 마주하고 앉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집까지 가려면 아직도 20분은 더 가야하는데. 한 남자가 버스 옆구리를 탕탕 때리며 막 떠나려는 버스를 세웠다. 술에 취해 눈이 반쯤 감긴 그가 휘청휘청 올라오더니 앞자리 의자에 엎어졌다. 그 의자에는 어린 여학생이 앉아있었다. 갑자기 무거운 아저씨에게 깔린 여학생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주위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 남자를 밀치고 여학생을 꺼내어주었다. 히죽히죽 웃는 그로 하여 버스 안의 평온은 깨어졌다. 사람들의 모든 촉각이 긴장한 채 그에게로 향했다. 집까지 가는 20분이 너무 길었다.


우리의 인생 버스에도 이런 불청객이 탈 때가 있다. 멀쩡한 얼굴로 올라와서는 마음의 평화를 무참히 깨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한 사람으로 인하여 버스 안 공기는 탁해지고 혼란과 분노가 술렁이며 일어선다. 이런 일은 내 인생 뿐 아니라 공동체에도 커뮤니티에도 국가에서도 일어난다.


이제 4년의 회장 임기를 마치며 재미수필문학가협회라는 버스를 들여다 본다. 회장으로서 운전을 하면서 많은 새 회원들을 태웠다. 다행히 그들은 온유하고 겸손하게 우리들의 공간에 흡수되어 주었다. 작은 이익을 위하여 배신을 밥 먹듯 하고 결국에는 돌에도 나무에도 기댈 데 없이 외로울 사람, 소신도 없고 도덕성도 없어 기본적인 인간의 신뢰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 허명에 매달려 남을 밟고 일어서려는 사람, 그런 사람은 없다. 앞으로도 우리 협회는 발간 불빛 아래에서 함께 흔들리던 버스 안 풍경처럼 날카로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 없이 계속 화목하고 따뜻한 버스로 달려갈 것이다.


희망컨대. 우리 협회는 술 취한 사람이 휘적휘적 엄한 사람 위에 엎어지면 힘을 모아 그를 끄집어내어 구겨진 옷을 펴주고 다독여주는 동지애로 똘똘 뭉치기를 바란다. 옳은 일에는 마음을 함께하고 정의가 아닌 것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는 용기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진리와 진실보다 더 큰 힘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진실 편에 선 사람은 어떤 두려운 상황이 와도 맞서서 싸울 수 있다. 영화 ’Sully’를 보며 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비행기에서 155명의 승객들은 한 사람의 부상자도 없이 모두 구조되었지만 언론과 담당 조사관팀은 기장의 오판으로 발생한 사고라며 무참히 기장을 매도했다. 나약한 사람이었다면 자살을 선택했을 법한 격랑의 시간을 그는 잘 견뎌내었다. 끝까지 당당했다. 진실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모든 정황이 밝혀지고 무죄가 입증되며 US Airway 항공의 기장 체슬리 설렌버그는 영웅이 되었다.


얼마만한 시간을 견뎌야할 지는 모르지만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 우리 회원들은 어떠한 일도 그것이 진실 위에 서 있다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한마음으로 협조하며 나가기를 바란다. 새 회장을 중심으로 외부이든 내부이든 협회에 해가 되는 일이나 사람에게는 절대로 동요하지 말고, 불의한 일은 과감히 잘라내어 순수하고 청정한 지금의 재미수필문학가협회를 변함없이 유지해 나가기를 바란다.

 

<퓨전수필> 2016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