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You / 성민희

 

 

  회원 중에 한인타운에서 유명한 공인회계사이신 K 선생님이 계신다. 같은 협회 회원이긴 하지만 함께 할 기회가 없어 좀 어려웠다. 회장직을 처음 맡은 얼마 후, 의논할 일이 있어 전화를 드리니 고맙게도 흔쾌히 허락하시고 성실히 참여도 해 주셨다. 그 뿐만 아니라 회의 때마다 다양한 아이디어로 모인 사람들을 감탄시키고, 논의 내용도 자세히 메모했다가 다음 모임에는 그것을 정리해 오신다. 주고받은 이메일까지 프린터 해서 첨부된 그 분의 파일을 보면 격조 있는 회의를 진행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다.

 

  그런데 오늘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모임 날짜를 전달하는 메일에 ‘저녁 모임에는 식권이 있습니다.’라는 답신을 주셨길래 “식권이 있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여쭈었다. 식사비를 본인이 지불하겠다는 뜻이었단다. “매번 선생님께서 그렇게 하셨는데 이번에는 제가 내어야죠.” 내 말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씀하셨다. “저는 아이들에게 항상 Be Generous를 가르칩니다. 방학 때마다 많은 용돈을 주면서 주위의 사람들을 위해서 쓰라고 하지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 주변에는 친구가 많습니다.” 청량한 바람이 스윽 지나갔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손해를 보든 비난을 받든 정직해야 한다는, 삶에서 최고의 선은 정직이라고만 강조했는데. 이렇게 중요한 삶의 지혜도 있구나 싶었다. 그것은 단순한 금전의 제공만이 아니었다.

 

  회의를 끝내고 청구서를 달라는 내 말에 주인은 벌써 계산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약속이 있다며 먼저 나가시더니 어느새 또 지불하셨다. 비자카드를 들고는 멍청히 서 있었다. 사람이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거구나. Be Generous를 실천하기 위해 그렇게 베풀고, 어떤 부탁도 사양이나 거절 없이 겸손하게 들어주셨구나. 사람은 자주 만나봐야 그 진가를 알게 된다는 말은 정말 진리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자주 만나는 우정의 단계, 같이 일하면서 형성되는 동역의 단계를 거쳐서 피를 나누는 것 같은 친척의 단계가 있다고 한다. 이 단계까지 가면 상대방의 허점이나 약점을 쉽게 용서하고 보완해 줄 수 있는, 나아가서는 희생까지 할 수 있는 돈독한 믿음이 생긴다. 나는 협회나 단체를 위해 봉사하며 받는 가장 큰 보너스가 바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얻게 되는 것이다. 사역을 함께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게 되고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귀한 마음을 보게 된다. 일을 의논하거나 진행하면서 주고받는 특별한 내면의 교감이나 함께 한 추억은 세월이 가도 사라지지 않는 내 인생의 귀한 보석이다.

영화 ‘아바타’의 나비부족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마음을 여는 관계가 되면 I see you. 했다. 제이크와 네이티리가 서로 눈을 들여다보며 “I See You.” 하던 장면이나 제이크를 원수로 알던 수테이가 죽어가면서 “I See You.” 하던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단순한 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는 당신의 겉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인격과 성품, 당신의 전부를 있는 그대로 봅니다. 라는 뜻이다. 인정하며 수용한다는 것이다. 이 단계까지 갈 수 있는 인간관계가 많다면 얼마나 성공한 인생일까.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전혀 예상치 않았던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I See You’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정말 행복하다. 세상을 살면서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 만남은 일을 함께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보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또 매일 하루라는 시간을 선물로 받는다. 이 시간을 사는 동안 서로 ‘I See You.’ 하는 관계가 많아지면 좋겠다. 내가 K 선생님을 보았듯이 말이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 <퓨전수필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