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일지 / 구두를 수선 받다




한국으로 오는 짐을 싸면서 정장에 맞는 구두를 하나 챙겼는데 짐을 풀며 보니 굽이 모두 닳았다. 잘 신지 않는 뾰죽 구두라 상태가 이런 줄 몰랐다. 난감했다. 이틀 뒤에 있을 행사에 신으려면 만사 제쳐 두고 구두 수선집부터 찾아야 한다.

친구를 만나러 나선 길에 구두를 가방에 넣고 나왔다. 어스름 달빛이 천천히 내려앉는 퇴근 시간, 버스 정류장 마다 입으로 손을 가린 사람들이 서서 낯익은 번호의 버스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다. 보도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볶은 땅콩, 쥐포채를 파는 할머니의 단단히 묶여진 목도리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온통 소란스런 네온사인 사이를 두리번거리는 내 눈에 구두 수선 가게 부츠가 들어왔다. 반가운 맘에 쫒아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구두 밑창을 뜯어내고 있다. 내 구두를 보더니 30분 뒤에 오란다.
"늦어지면 앞에 있는 약국에서 찾아가슈."

망치로 탕탕 가죽을 펴며 한마디 툭 던지듯 말한다. 돈도 미리 지불하라 했다.


친구랑 헤어지고 약국에 들렀다. 손님들이 바쁘게 들락거리는 틈새로 주인을 찾았다.
"저, 구두를......"

말도 끝맺기 전에 벌써 주인이 손가락으로 문 쪽을 가리킨다.

"저~어기."
쌓아놓은 약 박스 위에 내 구두가 엉덩이를 위로 치켜세우고 요염하게 앉아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눈길이 부끄러운지 얼굴을 아래로 파묻고 있다.  
"돈은요? "

구두 두 짝을 덜렁덜렁 들고 나오는 내 뒤통수에 대고 주인이 말을 툭 던진다.
나도 말을 툭 던졌다. "선불 했는데요."

툭 툭 던져지는 말들이 왜일까. 그냥... 정답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