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흔적

이건 놀랍다는 수준이 아니다. 충격이다. 그 분에게 이런 면이 있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야윈 몸집에 작은 키. 부드러운 눈빛. 어디를 봐도 카리스마라고는 없는 분이셨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다. *뷰잉을 위해 양복 차림으로 관 속에 누워있는 그 분은 세상 누구보다도 큰 거인이다. 사랑하는 아내에게는 온통 하늘이고 땅이다.


그는 교회 제직회의 때는 빠지지 않고 일어나서 장로님들을 꾸짖고, 교회 행정을 따지는 집사님이셨다. 호칭도 기분 따라 갖다 붙였다. 목사님을 아저씨라 부르기도 하고, 선생님이라 하기도 했다. 좌중을 둘러보며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해서 한바탕 웃게도 만들었다. 엉뚱하고 철없는 한편 귀여운 70대 노인이셨다.
                                                          
그 분이 일 년 전 부터 위암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교제하는 그룹이 전혀 다른 터라 먼 이야기인 듯 별 신경을 쓰지 못했다. 수술을 했다는 소식에도 문병을 못 갔다. 많이 심각하지 않으신 듯 여전히 밝은 웃음을 웃고 다녀서 이제는 완쾌 되셨나 보다 짐작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다. 자녀가 없는 가정이라 쓸쓸한 장례식일거라는 짐작에 모든 약속 팽개치고 남편과 함께 참석했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어둑어둑 어둠이 내리는 파킹장에는 길게 늘어선 차들의 끝이 안 보인다. 장례식장 안에는 앉을 자리는 물론 설 자리도 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유학 친구 등. 검은 양복 입은 노신사들로 장례식장 안은 꽉 찼다. 사방 벽은 모두 화환으로 덮여 그야말로 꽃세상이 되었다.
식순을 보니 조사를 네 명이나 한다. 이 사람아 하며 원망으로 시작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준비해 온 메모지를 펴놓고 눈물을 훔치며 서 있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조사는 할 생각도 않고 시신을 손으로 만지며 얼굴을 갖다 부비기도 한다. 많은 장례식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고인을 회상하는 모습은 처음이다. 그의 죽음에 사람들의 마음은 가뭄에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이 된 것 같다.  
모든 조문객들의 추억 속 사람은 내가 알고 있던 그 분이 아니었다. 그는 말을 타고 등교하는 부잣집 아들이었다고 했다. 가난한 친구들의 인심 좋은 후원자임은 물론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단다. 노래하고 춤추는 파티에서건 심각한 회의 자리에서건 그는 언제나 리더이자 장소와 분위기에 맞게 변신할 줄 아는 멋쟁이였다. 그 분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하는 것이 친구들의 슬픔이었다.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가면 예사롭지 않은 곳이 있다. 권정생 아동 문학가가 살다간 흔적이다. 그는 1930년대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평생을 결핵이라는 병과 싸우며 걸인 생활을 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겨우 안동에 정착하여 교회 종지기로 살면서 단편 동화 ‘강아지 똥’을 발표했다. 몇 권의 동화책을 낸 후 일흔 살이 되던 해 그는 세상을 떠났다. 동네 사람들은 가난하고 미천한 시골 노인의 죽음에 많은 문상객이 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좋은 책을 많이 쓴 사람인 것도, 불쌍한 아이들을 위한 유산을 많이 남긴 것도 그가 떠난 후 알게 되었다.

사람이 살다 간 자국은 그가 떠나고 난 뒷자리에서 나타나는가 보다. 결혼식은 부모의 사람들로, 장례식은 자녀의 사람들로 채워진다는 말이 있다. 훌륭한 부모를 만나 화려한 결혼식을 한다면 그건 고마운 일일뿐 온전한 내 것이 아니다. 잘 키운 자식 덕에 내 장례식에 문상객이 줄을 지어도 자식이 자랑스러울 뿐 그것도 내 것이 아니다. 거인 집사님이나 권정생 아동문학가처럼 세상에서 사라진 나를 잊지 못해 모여드는 사람들의 곤고한 마음 그것만이 온전한 내 것이다. 내가 몰랐던 내가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 그려질 때, 그것이 참 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는 이런 모습으로 저기에서는 저런 모양으로 비쳐지는 나. 어느 것이 참 나일까.
한 사람의 삶이 보이는 장소와 시선에 따라 이렇게 확연히 틀리다는 것도 놀라움이고 내 삶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사람들 앞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도 두려움이다. 살다간 흔적이야 모두 다르겠지만 이왕 남겨질 것이라면 나의 죽음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슬픔으로 툭하고 떨어졌다가 선한 다짐으로 다시 깨어나는 그런 흔적이라면 좋겠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