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한 박스 쌀 한 포대

 

성민희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젊은 부부가 이번에 네 번째 아기를 출산했다고 한다. 혼자서 일곱 살, 네 살, 두 살짜리 꼬마와 함께 신생아까지 돌봐야할 딱한 처지라 교회 식구들이 음식을 해다 주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날 오후. 친구랑 둘이서 그 집을 방문했다. 친구는 간고등어랑 잡채, 꽃 리본을 예쁘게 장식한 롤케익까지 챙겼지만 천성이 무심한 나는 달랑 기저귀 한 박스만 샀다.

 

  낯 선 동네 아파트라 번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차는 못 들어와요. 걸어서 들어오세요. 길에서 가까워요.” 마치 음식 배달부에게 하는 말 같아 조금 머쓱했다. 친구는 무거운 음식 보따리를, 나는 눈앞을 가로막는 커다란 기저귀 박스를 안고 낑낑 대며 이 건물 저 건물 속을 헤매어 겨우 번지를 찾았다. 아파트 문을 열자 한 떼의 꼬마들이 오로록 식탁에 몰려 앉아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고 식탁 아래에는 밥풀이랑 떨어진 콩나물이 아이들의 발 사이로 보였다. 건너편 소파 위에는 담요에 꽁꽁 싸인 갓난쟁이가 누워있었다. 집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짐들을 보고 의아해 하는 우리에게 곧 타주로 이사를 갈 거란다. 축복 기도도 하고 고등어를 어떻게 구우면 맛있다는 친절한 안내까지 해 주었는데 고맙다는 인사는 끝내 못 듣고 나왔다. “기분이 이상해. 우리가 너무 오버한 것 아니야? 피곤해서 밑반찬을 더 많이 안 해 온 게 오히려 다행이네.” 친구는 6시에 저녁밥을 먹는다는 산모의 시간에 맞추려고 일부러 기다렸다가 잡채를 하고, 고등어 간을 절이는 등 무척 정성을 쏟았다. 아무런 수고도 없이 기저귀 한 박스만 덜렁 사들고 온 나도 억울한 기분이 드는데 친구는 어떨까 싶다. “내 마음도 그래. 본인은 고맙지도 않은데 우리끼리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더구나 이사도 간대잖아……. 그런데…….” 나는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우리가 미국에 첫발을 디딘 해였다. 11월에 도착하여 어리둥절 하는 중에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이웃집은 창문 너머로 반짝이는 트리와 그 밑에 수북이 쌓인 선물 상자가 따뜻해 보였지만 낡은 창문이 덜컹거리는 우리 아파트는 크리스마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선물을 들고 갈 곳도, 선물을 들고 올 친구도 없다는 것이 조금은 쓸쓸한 이브 날 저녁, 감기로 작은 가슴이 쉴 새 없이 기침을 토해내는 돌잡이 딸에게 약을 먹이고 있었다.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고 바깥은 온통 어두움인데 누군가가 창문을 톡톡 두드리며 “호호호” 했다. 놀라 문을 여는 남편의 파자마 바짓가랑이 사이로 빨간 산타 모자를 쓴 목사님이 보였다. 양 팔에 안긴 귤 박스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목사님은 방바닥에 앉아 손으로 카펫을 쓰윽 쓸며 말씀하셨다. “cozy room. 아주 귀엽고 앙증맞은 장소를 말할 때 코지 룸이라고 하지요. 이 집은 정말 코지 하군요.” 너무 작아 소파도 놓을 수 없는 방이 갑자기 사랑스런 동화 속의 방으로 둔갑했다. 목사님은 그렇게 고마운 산타로 우리를 찾아주셨다. 그러나 그때는 머리가 허연 노인의 빗속 운전이 얼마나 위험한 지도, 가난한 목사님에게 귤 한 박스가 얼마나 비싼지도 크리스마스이브에 식구들을 두고 혼자서 외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몰랐다.

 

  일 년이 지나고. 엘에이 직장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중년을 훨씬 넘긴 집사님 부부가 쌀을 한 포대 들고 찾아오셨다. 방이 참 밝아서 좋다는 덕담과 함께 기도도 해주셨다. 두 분이 가시고 난 후, 엉거주춤 깎아 낸 과일접시를 치우며 남편과 나는 갸우뚱했다. 왜 오셨을까? 집들이 선물이라면 비누나 화분이나 하다못해 과일을 사오셨을 텐데 웬 쌀이야? 지나가다 들렀나? 어디서 공짜로 생긴 건가? 우리는 의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극빈자 취급을 당한 것 같아 기분이 살짝 나쁘기도 했다. 그 쌀은 며칠이나 우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함께 어울리지 않는 젊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처럼 쉬는 토요일 오후 다우니에서 엘에이까지 30분 거리를 운전해서 온다는 것이 얼마큼 힘든 일인지를.

 

  친구와 주차장을 털레털레 빠져나왔다. “그 분들은 가난한 젊은 부부에게는 화분이나 비누보다 쌀이 더욱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셨을 거야. 지금 돌아보니 정말 고마운 분들이셨어. 감사한 줄도 모르고 감사하단 표시도 할 줄 몰랐던 게 죄송해. 저 사람도 다음에, 나이가 더 들어 우리 나이쯤 되면 그때에야 그 교회 참 좋은 교회였어. 그 분들 참 고마운 권사님들이셨어, 할거야. 나처럼 말이야.”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친구가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그래, 크리스마스 날에 참 좋은 일했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 <크리스챤 헤럴드 2016> <청색시대> 2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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