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일까?


이번 주 들어 장례식을 두 군데나 다녀왔다. 예순 네 살 간암 환자와 아흔 두 살의 노인이었다. 간암으로 가신 분은 아직 이른 나이라 장례식장이 많이 무거울 줄 알았는데,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켜 손주들의 재롱을 보고 가셨다는 것으로 문상객들이 위로를 받았고, 노인 분 또한 자손들이 많아 쓸쓸하지 않았다.

투병 중인 간암 환자의 문병을 다녀온 사흘 뒤 편안히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감은 눈자위 아래로 눈물조차도 흘리기 힘겨운지 피부가 축축해지던 그 분의 얼굴과 예순살도 되기 전에 홀로 남겨진 아내의 젖은 뺨이 한꺼번에 내 가슴을 밀고 들어와 장례식장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나는 손수건을 적셨다. 식장은 화환들로 화려했다. 치렁치렁 늘어진 휘장에는 큰 금박의 글자들이 소란스러웠다. ㅇㅇ대 동창회, ㅇㅇ고교 동창회, ㅇㅇ여대 동창회 등, 화환들이 마구 우쭐대고 있었다. 고인의 약력 난에는 학교가 주인이 되어 앉았고, 설교하시는 분이나, 조사를 읽는 분이나 한결같이 화려한 학벌을 들먹였다. 사람들은 다투어 자기가 그 학교의 동창임을 선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분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을 위해 애썼는지는 모두 사람들이 내세우는 일류학교 이름 아래 묻혀 있었다. 그 분의 일생에서 더 소중한 무엇이 있을 텐데. 장례식 순서가 모두 끝날 때까지도 그것을 보지 못한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아흔 두 살의 노인은 1년가량 양로 병원 신세를 지다가 떠나셨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의식만 있는 상태라 자손들이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방문할 때마다 배에 뚫린 구멍으로 죽이 주입되는 모습을 봐야 했고, 애처로운 눈동자에서 옛날의 쩌렁쩌렁 울리던 목소리가 떠올라 맘이 아팠다고도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해방’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고 하니 그 굴레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짐작이 갔다.

장례식장은 많은 자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촐했다. 고인의 약력 난에는 지난 삶이 얼마나 신앙적이었는지를 말해주느라 애쓰는 글이 눈길을 붙잡았다. 일제에 어떻게 항거했으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떤 힘든 시간을 견뎠는지, 해방 후에도 기독교 역사에 찍은 발자국이 얼마나 큰지. 조사도 설교도 기도도 하나같이 신앙이란 단어를 열심히 풀어 보였다. 그 분의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삶 앞에서 숙연해지며, 참 신앙의 길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다.

     한 주에 두 장례식을 보며. 언제가 될지 모를 나의 장례식장을 그려본다. ‘지금 당신의 인생은 이미 오래 전에 당신이 선택한 인생’이라는, 스펜서 존슨의 글이 떠오른다. 오늘의 ‘나’를 만든 많은 선택들. 그들이 깐동하게 서서 나를 바라본다. 잘 했다는 칭찬의 눈빛도 있고 게으름과 안일을 질타하는 눈빛도 있다. 사람을 사랑하는 선택을 하였는지, 허물을 덮어주는 선택을 하였는지, 내가 가진 것 세어보기 바빠 나누기에 인색하였는지, 현실과 맞장구치느라 혹 누굴 슬프게 하지나 않았는지. 순간순간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따라 선택의 모양도 달라졌을 터이니, 지나간 인생 여정에 붙잡아 앉히던 수많은 결정이 우수수 내 앞에 일어난다. 후회 같은 것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장례식장에 앉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자손들은, 친구들은, 이웃들은 다 소진한 내 삶 속에서 무엇을 끄집어내어 깃발로 흔들까? 학벌일까? 재산일까? 신앙일까? 사랑일까? 아니면 내가 전혀 상상도 못한 그 어떤 단어일까?  

<사람이 고향이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