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럴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신문을 가지러 대문 밖에 나갔다. 가까운 친척이 한국 정치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터라 매일매일 급변하고 있는 정치 상황이 궁금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신문 배달이 늦다. 여섯 시가 되면 어김없이 떨어져 있던 하루 소식이 열 시가 되어도 보이지 않는다. 답답하여 동네 지국 배달부에 전화를 했다. 중요한 발표가 어제 밤에 있었기에 인쇄가 늦어졌단다.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열 두 시가 지나고 오후 한 시가 되어도 기척이 없다. 또 전화를 했다. 메시지를 남기라는 녹음 뿐, 아무도 받지 않는다. 이번에는 본사로 다이얼을 돌렸다. 본사에서는 지국에 확인해 보겠다고 한다. 현관문을 들락거리며 두 시를 넘기자 이상한 오기가 생긴다. 지국에다 또 전화를 했다. 배달은 멕시칸들이 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고 한다. 갑자기 화가 났다. 그냥 인터넷으로 볼까. 마음 밑바닥에서 떠오르는 생각과는 달리 입에서는 찬바람이 나온다. 배달을 누가 하는 것까지 제가 알 필요는 없죠. 나는 구독자니까 신문 배달 안 된 걸 말하는 것뿐인데요. 어떤 방법으로든 오늘 배달을 해 줘야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오늘같이 중요한 기사가 나가는 날에 배달 사고라니요. 말이 안 되죠. 죄송하다는 소리가 수화기 저쪽에서 조그맣게 들린다.
  전화기를 놓고 나니 괜히 마음이 찝찔하다. 도토리 껍질처럼 딱딱한 내 말이 그 여직원의 오후를 휘젓고 있지나 않을까. 속마음이 편치 않다. 컴퓨터만 켜면 온갖 신문사들의 기사를 다 훑어볼 수 있는데 굳이 사정이 있어 배달되지 못하는 신문을 보겠다고 어깃장을 놓은 이유가 뭔가. 빗물에 번진 아스팔트 기름때처럼 먼들거리는 마음자리를 놀란 눈으로 들여다본다. 내가 나를 조정할 수 없을 때도 있구나. 나이가 들수록 버거워지는 이 심사를 어찌하나 싶다 .

  이층으로 올라와 컴퓨터를 켰다. 보고 싶은 기사를 찾아 읽고, 변두리 가십까지 모두 섭렵한 즈음 딩동하며 현관벨이 울린다. 시계를 보니 오후 세 시. 낯 선 노인이 비닐 봉투에 든 신문을 내민다. 희끗희끗 흰머리가 정갈하다. 신문 배달과는 어울리지 않는 할아버지다. 배달부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다더니 그 여직원은 엔간히 열심히 사람을 찾았나 보다. 이 분은 나른한 오후에 어떤 일을 하다가 차출 되셨을까.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고맙다는 인사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고개를 모로 돌린 채 손만 내밀어 신문을 받았다. 그냥 참고 있을 걸. 휘적휘적 걸어 나가는 노인의 굽은 등에 노을을 지고 걸어가던 내 아버지의 뒷모습이 겹친다. 헐거워진 점퍼를 급히 챙겨 입고 손주들 픽업하러 차를 몰고 나가시던 아버지. 턱에 손을 괴고 심각한 바둑을 두시다가도 우리들의 부탁 전화 한 통에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시곤 했다. 저 분은 혹시 여직원의 아버지가 아닐까? 딸의 전화를 받고 행여 딸 직장에 지장이 생길까봐 마음이 바쁘셨을지도 모르겠다. 주소를 들고 찾아오는 길은 또 얼마나 멀었을까.

  노인의 차가 떠나간 대문 앞이 휑하다. 손에 든 신문의 활자들이 와글와글 손목을 타고 올라온다.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들고 신문, 오직 신문에 목숨을 건 내 어이없는 오기에 읽던 책을 타악 덮으며 힐끗 쳐다보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리던 아들의 눈빛도 마음에 걸린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