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얼굴
그토록 전의(戰意) 충만하여 싸워 준
리지웨이 장군을 아시나요
운명(運命)인 듯 천명(天命)인 듯 맥아더 후임으로
얼굴도 말도 다른 한국군의 지휘자로 와
굴하지 않는 투지로 6.25를 이끈 위대한 전쟁영웅을.
“위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다”
1950년 11월 25일 시작된 중국군의 제2차 공세. 중국군의 인해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밀려 38 도선으로 철수한 유엔군에는 패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패배의식이 만연해있던 최악의 상황에서 1950년 12월 미 제8군사령관으로 매튜 리지웨이가 부임했는데요.
▲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는 UN군과 국군 (출처 : 국가기록원)
그러나 리지웨이의 부임에도 불구하고 유엔군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이듬해 1월 24일까지 지속한 중국군의 제3차 공세로 평택에서 삼척을 잇는 선까지 또다시 물러서게 됩니다.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인 유엔군, 이런 위기상황에서 곧 한반도를 포기하고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실제로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은 대한민국을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오히려 리지웨이 美 육군 대장은 포기하지 않고 전의를 불태웠고, 이내 전세를 역전시키게 되는데요.
전세 역전의 시발점은 리지웨이가 전개한 선더볼트 작전이었는데, 그 내용은 1951년 1월 25일부터 작전개념을 수색정찰에서 지역 확보로 바꾸고 여러 병종이 거대한 팀워크를 이루며 조직적으로 반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전투현장을 지휘하며 솔선수범했던 선더볼트 작전. 이를 통해 유엔군은 중국군 인해전술의 한계점을 파악하였고, 땅에 떨어졌던 사기와 자신감을 회복하는 등 패배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기세를 몰아 유엔군은 38 도선으로 다시 진격, 한강 남안을 확보하였습니다.
이후 맥아더의 뒤를 이어 유엔군 사령관에 임명되어 6·25전쟁을 명예롭게 끝내기 위한 정전협상을 이끌었던 매튜 리지웨이는 1993년 98세의 나이로 미국 피츠버그 자택에서 영면했으며, 그의 유해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국땅에서 일어난 전쟁에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이 땅의 자유 수호를 위해 노력한 매튜 리지웨이 美 육군대장. 그와 같은 6‧25전쟁 호국영웅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들의 희생을 꼭 가슴 깊이 새겨주세요! <국가 보훈처.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