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 미움이란 / 김남조
 
 
 
미움은 까닭 있는 감정이다. 사랑은 차라리 이유 없이 솟아 나지만 미움은 왜 미워지게 되었는지는가 비교적 분명하다. 처음부터 미워진 일은 찾기 어렵고 시초엔 다른 것이었다가 몇 고비의 과정 끝에 미움으로 돌아 앉는다. 그러면서 아직도 회의와 기대가 열탕처럼 끓고 있다. 한 주름의 난류(暖流)가 적셔 오면 맥없이 미움은 누그러지고 혼란이 마음을 섧게 하여 그녀는 발을 뻗고 울어 버린다.
미움 속의 한(恨) 과 그 반작용에의 충동, 너무나도 취약한 스스로의 미움이 여자에게 얼마나의 고뇌이며 자학의 오랏줄인가를 남자들은 알지 못하리라.
 
남성들은 아내를 범한 사내를 죽이기까지 하지만 여자는 남편의 불륜이나 남편을 훔친 그 여자에게 원시목처럼 건강한 미움으로 내어 건다. 칼을 빼어 들고 결전장에 나가는 대신 감정의 무서운 집중으로 대결, 피범벅이의 절상(折傷)을 내는 감정의 승부로써 가름한다. 삭일 수 없는 분노를 오랜 반추로써 복습하며 다져 간다. 이 때의 미움은 다시 없는 방파제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미움을 철회하고 싶고 체념에 가라앉으려 한다. 이 때에도 마음 속엔 그리움이 출렁인다. 버림받은 모자(母子)가 초라한 모습으로 남편의 퇴근길을 지켜 서 있기도 한다.
한 작가의 아내는 손수 남편의 한복을 지어 두고 여러 해 동안 치받는 통분을 누르며 기다렸다. 종내는 눈물도 잦아 들고 고요한 단념에까지 이르렀다. 마침내 남편이 돌아 왔을 때 공손히 그 옷을 내어 주고는 아무 말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참아 온 자의 판정승, 그러나 잃어 버린 보옥들을 어디에서 되찾을 것인가.
 
잊기 위해서 미워하는 경우도 있다. 미움을 만들며 열심히 망각을 염원한다. 자고 깨며 오직 미움을 다진다. 잠시라도 미움이 흩어지면 생명을 박살 내는 무서운 그리움이 기다리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겁 나는 건 미칠 듯한 그리움이 껴안으려 드는 일이다. 그리움에 안겨서는 안 된다. 이 공포에 뒤쫓기며 천 길 낭떠러지를 헤맨다. 오직 미움만이 샘솟으라고 빈다. 미움만이 내가 부서질 일을 막아 준다고 믿고 있다. 이런 건 사실상 뒤집어 놓은 사랑 그것이다.
사랑에선 잊음에도 직행이 잘 안 된다. 사랑, 미움, 망각, 이러한 순서를 밟아야만이 오뇌의 불더미에서 건져진다고 믿는 조급한 지혜, 하건만 그녀는 잊음에도 가지 못하고 후딱 사랑에 되돌아 오기를 잘 한다. 온몸의 피를 씻고 저 편 사람을 다시 본다.
한없이 사랑스러운 그.
아아 여자의 미움이란 얼마나 측은한가. 이러한 부전패(不戰敗)의 연유한 감정을 남편과 자식에게 몇 번, 몇 십 번이라도 쏟아 준다. 그녀를 푸대접한 온갖 소망에게도. 도저히 못 참을 울화에 치받쳐 ‘밉다. 분하다, 밉다, 밉다.’라는 글귀를 노트 몇 장에 메워 썼더니 우습기도 하고 기도 차서 슬며시 용서할 마음이 생기더라고 했다.
사랑을 모르는 여자는 미움도 모를 것 같다. 구하지 않는 이는 거절에 당면하지 않을 것이고 때문에 애정의 갈망에 울지 않고서는 서러운 굶주림도 알지 못할 듯싶다. 사랑과 미움은 긴밀한 상관 관계에 있다. 그 건강도와 심각성도 정비례한다. 미움에겐 미움 나름의 진실과 열정이 있음을 아니 살필 수 없다.
그러나 애증(愛憎)의 계명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의 감정은 소중하고 다양하므로 미움의 탁류에 전부를 실어 보내기엔 이성(理性)이 용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적이어야 하고 가능한 한도까지 아름다워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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