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한 약속 ― 이문구(1941∼2003)

방아깨비 잡아서 
어떻게 했지?
떡방아 찧고 나서 
가게 했어요
내년에 만나기로 
마음 약속하고
각시풀 있는 데로 
가게 했어요

베짱이는 잡아서 
어떻게 했지?
비단 옷감 짜고 나서 
보내 줬어요
내년에 다시 보자 
굳게 약속하고
분꽃 핀 꽃밭으로 
보내 줬어요

얼마 전 놀이터에서 작고 귀여운 거미 한 마리를 봤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직접 보는 것은 좋은 공부가 될 테니까, 곁에 선 아이들에게 소개했다. 여기, 아름답고 씩씩한 거미가 한 마리 있다고. 그랬더니 장난꾸러기 한 아이가 말릴 틈도 없이 발로 밟아버렸다. 괜히 거미의 생이 망가지는 데 일조를 하고 말았다. 나는 다 큰 어른인데도 울면서 집에 왔다. 이럴 때 시는 정말이지 좋은 약이 된다. 울음이 가득 찼을 때 시를 읽으면 그 울음은 몸 밖으로 빠져나온다. 울음을 그치고 싶을 때에도 시를 읽으면 곱게 달래진다. ‘여름에 한 약속’은 마음을 곱게 펴주는 후자에 해당한다.
시는 헛된 문자로 쌓은 탑 같지만 보기보다 든든하여 마음을 기댈 때가 있다. 저 아름다운 시를 쓴 이문구는 누구인가. 우리에게는 소설가 이문구로 더 알려진 분이다. 이문구의 소설은 탄탄한 휴머니즘이 바탕이 되고 구수한 입담이 갖춰졌다. 추구하는 세계는 인정스럽고 표현은 풍자적인 소설가다. 그런 그가 한두 편도 아니고 시집 몇 권이 될 정도로 동시를 잘, 많이 썼다는 것은 두루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의 동시를 찾아 읽으면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게다가 한 편의 시만 봐도 알겠다. 방아깨비와 베짱이마저 귀히 여기는 그 마음이 있어 이문구는 ‘관촌수필’을 썼고, ‘유자소전’과 ‘우리 동네’를 썼구나. 소설가의 세계를 만든 뿌리 깊은 마음을 확인해 본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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