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시절 ― 이장희(1900∼1929) 

어느덧 가을은 깊어
들이든 뫼이든 숲이든 
모다 파리해 있다

언덕 우에 오뚝히 서서
개가 짖는다 
날카롭게 짖는다

빈 들에
마른 잎 태우는 연기 
가늘게 가늘게 떠오른다

그대여
우리들 머리 숙이고 
고요히 생각할 그때가 왔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상과 소설가 김유정은 1937년 같은 해에 요절했다. 그래서 당시 두 사람의 추모 행사며 추모 특집은 공동으로 이뤄지곤 했다. 두 사람이 함께 죽음을 도모한 것은 아니었고 각자의 병사였다. 그렇지만 죽음의 시기가 겹쳤던 인연 탓에 지금에도 이상과 김유정은 함께 추모되기도 한다. 꼭 같은 것은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인연이 시단에도 있다. 김소월(1902∼1934)과 이장희(1900∼1929)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주로 1920년대에 활동했다. 호도 비슷했다.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소월(素月) 김정식과 경상북도에서 태어난 고월(古月) 이장희. 이 둘을 함께 보고 있노라면 마치 국토의 북방과 남방을 지키는 두 개의 달이 연상된다. 그렇게 두 시인은 달처럼 밝게 빛나다 일찍 지고 말았다.

오늘의 시는 그중 고월 이장희의 것이다. 그는 생전에 많은 시를 쓰지 않았다. 1924년에 등단했으니 활동 시기도 짧았다. 생전에는 시집이 없었고 사후 한참 뒤인 1951년에서야 ‘상화와 고월’이라는 합동 시집에 작품이 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작 ‘봄은 고양이로다’라든가 다른 작품들을 보면 그의 관찰력이나 감각, 표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은 대구의 부호 집안에서 태어났으면서도 가난하게 살았다. 속세 권력에 마음을 두지 않았고, 친일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날카롭고, 정결하고, 섬세했던 한 인간의 표정이 이 시에서도 읽히는 듯하다. 가을의 미묘한 색, 소리, 냄새가 이 시에 들어 있다. 그리고 이 시에는 가을날의 정신도 들어 있다. 시인은 가을의 정신이 되어 묻는 듯하다. 여기는 어디고, 우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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