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조혜은 - 2020년 한경 신춘문예 당선작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새를 보고 새를 볼 수 없을 땐 새를 상상해 왔다여덟 살 때부터 치기 시작한 피아노마저 건초염으로 오년 전 그만둬버리고 내게 취미라고는 새를 보고 새를 상상하는 것이 유일하다.

  눈앞에 있지 않은 새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사무실 내 옆자리의 후배는 신기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와 유독 새빨간 입술이 백문조를 쏙 빼닮았다뭐 때문인지 매사에 부루퉁한 얼굴로 혼잣말이 잦은 세탁소 주인아저씨는 새카만 까마귀를아파트 근처 편의점의 스물 남짓한 야간 알바생은 검푸른 눈매가 도드라진 동고비를 닮았다세상에는 새를 닮은 사람이 아주 많다개나 고양이를 닮는 것처럼 사람들은 새를 닮기도 하며 특별하거나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 하필 새를 보는가 하면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누군가는 책을 읽고 캠핑을 가고 맛집 탐방을 다닌다면 나는 새를 본다하필 새가 아니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번식기나 월동기가 되면 주말을 이용해 순천만 습지나 남해 강진만창원 주남저수지강화도낙동강 하류 을숙도충남 태안 천수만 등 전국을 돌아다닌다아무리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직 새를 볼 수 있다면 거리는 상관없다새를 보러 가는 길은 실제로 새를 보는 것만큼이나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새를 볼 때는 그냥 본다무슨 대단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고 잠시 생각을 멈추고 오롯이 새 자체에 집중한다새를 보기 전에 애써 걱정이나 고민을 내려놓을 필요는 없다뭘 하려거나 억지로 누군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그저 눈앞의 새를 보면 된다숨죽인 채 새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다보면 어느새 나는 비워져있다새를 보는 동안 나는 서서히 가벼워진다비어 있을 때 나 자신은 아주 가볍고 가벼운 것은 늘 옳다나는 끓어 넘치는 것을 혐오한다넘치는 것은 모자란 만 못하고 하등 무용하다화가 나거나 슬플 때 나는 새를 본다긴장했을 때도 새를 보고 황당하거나 창피할 때도 새를 본다새를 볼 수 없을 땐 새를 상상한다상상까지 새를 보는 일의 포함인 것이다.

 

  사람들은 새를 보는 일을 일면 생소해하면서도 마뜩찮게 여기는 구석이 있다일부러 시간을 내어 새를 보는 일을 굉장히 수고롭게 생각한다일례로내가 주말에 새를 보러 간다고 하자 사수는 비꼬듯 말했다‘뭐새를 보러 간다고뭐 하러새를 보면 떡이라도 나와?’ 새를 보는 것을 하찮게 여기니 새를 보는 나도 하찮아 보였던 걸까떡이 나오냐니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나는 뭘 바라고 새를 보는 것이 아니다새를 봐도 내가 얻는 건 없다새를 보는 일은 지극히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새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문외한은 아니다새라고 다 같은 새가 아니라는 것을 새를 보고 구분할 정도는 된다그렇다고 또 자랑할 만한 수준도 아닌 것은 지구에는 팔천육백여 종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그 중 칠백여 종이 한반도에 서식하고 있는 걸 고려하면 그저 협소한 나의 생활 반경 내에서 꼭 필요한 만큼 보일 뿐이다.

  봄이 되면 한반도에 날아와 번식하는 여름 철새겨울철에 머무는 겨울 철새봄이나 가을에 잠시 들렀다 가는 나그네새늘상 볼 수 있는 텃새가 있다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꾀꼬리뻐꾸기찌르래기제비소쩍새 등은 여름철새다겨울 철새로는 기러기고니두루미양진이말똥가리 등이 있고 노랑딱새흰눈썹지빠귀촉새긴발톱할미새 등의 나그네새와 박새딱새까마귀까치참새황조롱이 등은 텃새다가끔 나는 지구에 서식한다는 팔천육백여 종의 새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싶은데 이내 그것들을 다 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좀 억울하고 허무해진다.

  가만히 새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다새가 있고 새를 보는 내가 있다단출하고 홀가분하다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새를 보고 있으면 지구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나는 오로지 새를 기다리고 새가 있으면 보고 또 기다리고 다시 본다저물녘녹아내리는 듯한 하늘을 무리 지어 비행하는 풍경 앞에서 자연스레 겸허해진다어떤 순간은 감히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고 담으려는 찰나 지나가 버린다마치 인생의 가장 눈부셨던 순간을 잡아둘 수 없는 것처럼그래서 나는 사진 촬영을 하지 않는다탐조용 스코프나 망원렌즈 같은 전문적인 장비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 새를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나에게 있어서 새를 본다는 건 저장이 아니라 비움이다비우고 또 비우는 과정이다.    내가 새를 보러 전국을 누비고 다니는 걸 아는 지인은 내게 새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약속도 취소할 만큼사람보다 더나는 거의 평생 새를 봐왔으며 새와 견줄 비교대상은 없다때때로 사람들은 너무나 무심코 타인에게 가혹하게 군다새는 내가 가장 부서지기 쉬웠을 때 내게 왔다나의 최초의 새에 관한 기억은 열 살 때로 외할머니의 집 마당에 자그마한 새가 날아든 일이다눈 위를 디디며 자그마한 발자국을 남기던 녀석은 몸의 윗부분이 붉은 갈색이었다동작이 재빠르고 움직일 때마다 꽁지를 좌우로 쓸어댔다그것은 몹시 부드러울 것 같았으나 손에 쥐기엔 너무 작고 연약해 보였다.

 

  그해 겨울나는 인천의 외할머니 집에 맡겨졌다아버지의 수술과 장기 입원 생활로 엄마가 나를 보살필 여력이 안됐기 때문이다나는 겨울의 눈 덮인 한적한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새를 쫓아다녔다지치는 줄도 모르고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푸르스름한 바닥위로 짙게 기울기 시작하면 슬금슬금 집으로 돌아갔다그때는 얌전히 앉아 공기놀이나 하고 있을 수 없었다숨이 다 넘어갈 정도로 달리고 몸을 움직여 혼을 빼 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가만히 있으면 외롭고 슬프고 우울한 생각들이 마음을 어지럽혔다생각을 멈추기 위해서 나는 그 추운 겨울을 헤집으며 새를 쫓았다그러는 동안은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모든 두려운 상상과 망상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었다바짝 언 몸으로 돌아가면 외할머니가 상기된 내 얼굴을 몇 번이고 어루만지고 차가운 몸을 품에 보듬고 가만가만 어르고 달래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한 달 남짓 머물렀지만 때때로 나의 시간은 여전히 그때에 멈춰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그해 겨울을 생각하면 하얗게 눈밭을 이룬 마당을 찾아들었던 그 작은 새와 함께 했던 풍경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겨울은 새에게 치명적인 계절이다헐빈한 겨울의 한 가운데에서 새들을 위한 안식처는 찾아볼 수 없다마땅히 몸을 숨길 수 없기 때문에 창공을 휘저으며 먹이를 찾는 포식자의 표적이 되기 쉽다천적들의 위협과 추위허기로부터 몸을 숨기려 날아든 녀석을 외할머니는 정성스레 거둬주었다아마도 나의 시간이 여전히 그해 겨울에 멈춰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어쩌면 평온했던 그 순간에 영원히 머물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그날 차갑게 얼어붙었던 내 마음 위를 디디고 간 작은 발자국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 추락하는 새를 본 적 있다새를 볼 때는 그저 새를 볼 뿐이므로 새가 추락하는 동안 그저 지켜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날개를 뒤집은 채 빠르게 추락하던 새는 능선 너머로 사라졌다그 이후로 나는 이따금 그 추락하는 새를 떠올리고 무기력함에 젖는다내가 어쩌지 못한 일들부정하고 불합리한 일에 대해 침묵을 강요당함으로써 부당함을 감내해야 했던 지난날세상은 참으로 불가해한 현상들로 끓어 넘친다그럴 때마다 나는 새를 본다새를 생각한다가벼워져라가벼워져라주문을 외운다날아가라날아가라훨훨​​

 

 

[수상소감]

‘비로소 마주봄의 순간.’​새를 보는 것은 지극히 수동적인 행위다소통이 불가능하고 일방적이기 때문이다이로인해 때때로 나는 새를 볼 때 혼잣말을 하기도 하는 습관이 생겼다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주변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들이다나도 안다새를 보는 것은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자극점도 없고 구미를 당길 만한 거리도 없다하지만 덮어두고 지루하고 따분하게 여기기엔 너무나 살아있지 않나살아 흘러넘친다명백히 살아있다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스토리가 있다그리고 나는 살아있는 그것들을 볼 때 살아있다고 느낀다.​얼마 전 새를 보러 갔다자꾸만 흘러넘치는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였다쉬이 비워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꾹꾹 눌러 담으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힘이 들었다새를 보는 일이 힘에 부쳤다글을 쓰는 것과 새를 보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안다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차오른 것들이 깃든 자국을 남길 때 마음의 생채기가 하나둘 늘어났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썼다묵묵히그러다 보면 어떤 순간에 도달하기도 한다기적이라고 믿는 순간지금 기분이 꼭 그렇다늘 수동적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새와 눈이 마주친 기분글을 써 온 이래로 비로소 우리가 마주본 듯하다심사위원과 가족들그리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심사평]

수필 부문에는 총 391편의 작품이 응모했다이렇게 많은 사람이 글쓰기의 욕망을 가지고 있고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한다는 사실이 한편으로 놀랍고한편으로 반가웠다.이런 욕망이 좋은 수필을 쓰는 데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물론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은 소중하기 그지없고그 인생을 반추하고 회고하고 정리하면서 얻는 기쁨과 깨달음은 글쓰기의 가장 큰 보람이기도 하다그러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만으로 수필은 완성되지 않는다대부분의 응모작이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만 하려고 한다는 점이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타인을 새겨 넣지 못한다는 점이 심사 과정에서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세 명의 심사위원이 응모작을 나눠 읽고그중 본심에서 논할 만한 작품을 추렸다최종적으로 논의된 응모자는 김영옥고안나조혜은이었다김영옥의 ‘인간 모루깜씨’는 ‘깜씨’라는 인물의 형상화가 돋보였다그러나 ‘깜씨’라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인물이 화자의 자기중심적 서술 때문에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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