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명왕성 유일 전파사- 김향숙

  • 기사입력 : 2019-01-01 22: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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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가전家電엔 명왕성冥王星 하나 두둥실 들어있다고 했다 목숨 다하면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제 몫을 못하는 것이 제명이라고, 별명이 백과사전인 그 사내는 모르는 게 없다 이 빛나는 지구도 저 없으면 돌지 않는다고 사십 년 기름때 묻은 공구함을 가리킨다 공구들의 명칭마다엔 알파벳 하나씩 휘어지고 벗겨진 곳곳에 일본식 표현이 살짝 묻어있다


    오일마다 망가진 것들이 몰려드는 난전亂廛, 배운 적 없는 어깨너머의 기술로 만지작거리면 고장 난 밥솥이 빨간 눈을 켜고, 커피포트 녹음기 선풍기와 마음 고장 심하게 난 이웃까지 불러 앉혀놓고 막걸리 한 잔 따라주면서 다독다독 고친다


    십자와 일자, 플러스와 마이너스만 있으면 퇴출당한 명왕성도 거뜬히 고친다고 큰소리치는 명왕성 유일 전파사 그 사내


    봄날이어서 수리 마친 가전들


    저러다 파란 이파리들 막 돋아날까 걱정스러운데


    고친 카세트 들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


    흥겨운 듯 절절한 트로트가 그 뒤를 따라간다


[당선소감] 시 쓰기는 '나의 색' 찾아가는 길


출발이라는 설렘의 빛깔은 기쁨과 두려움이 뒤섞인 색입니다.

시 쓰기는 나의 색을 찾아가는 방법이어서 무채색인 나에게 색을 입히는 일이기에 담쟁이가 벽을 타고 오르듯 그렇게 시를 만나며 지냈습니다.

희망이라는 말이 너무 낡아서 희망이라는 말을 주저할 때가 있었습니다. 사라지는 직업이 새로 생기는 직업의 배가 넘는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유한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숙련의 시간 또한 사라진다는 말이 되겠지요.

누가 뭐라고 해도 저의 직업은 희망을 희망하는 일입니다. 그 희망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 기쁨이 어디서 생겨났겠습니까. 아직 숙련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시 쓰는 일을 묵묵히 해 나가겠습니다. 시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말이죠.

지금쯤 곶감에 흰 분粉이 내리고 있을 고향 상주에서는 구순의 낡고 낡은 엄마가 사람들과 정겹게 둘러앉아 은하계에서 퇴출된 명왕성冥王星을 뚝딱뚝딱 고치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오기까지 격려해 주신 마경덕 선생님 이종섶 선생님 이승하 교수님 윤성택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저를 믿어준 남편과 신영이, 그리고 함께 공부한 문우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기회를 주신 경남신문과 심사위원님께 큰 절 올립니다.

첫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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