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 집 딸일까 / 이운순
간간이 만나는 선후배 문우님들이 계시다. 이미 문체가 굳어졌을 세월이지만 더 격조 높은 글쓰기를 하고 싶어 시작 된 안국동 정독도서관 수필 심화과정 동기들인 셈이다. 대학원 강의를 방불케 하는 교수님의 깐깐한 강의방식은 언제나 인문학적 접근으로 난이도는 상중 상이다. 수필에 쉽게 다가서려던 누군가는 지레 겁을 먹었다고도 했다.
그 시간이 수년 흘렀다. 그 시간만큼 쌓인 文情에 茶情 飯情까지 더해 도서관 출입을 마감했어도 문우지정은 이어졌다. 그래봐야 소찬을 나누고 안부를 나누는 정도지만 서로서로 바쁜 틈을 내보는 것이다. 따뜻한 감성과 서정적인 문체가 비슷한 접점이 애초 만남의 시초였다. 서로의 거주지 중간지점이랄까 장소는 늘 청량리 롯데 7층이다. 좋은 곳을 물색해 밥도 먹고 차도 마시는 롯데 3인방의 아지트인 셈이다.
산수를 막 지나신 문우님은 함께 늙어가는 아내를 도와 설거지를 한다던가, 이즘 절필을 생각한다는 고민을 털어놓으신다. 사별 십 년 가까이 된 아픔을 어제인 양 품으신 또 한 문우님은 얼마 전 수필단체장을 명예롭게 마치고 고문으로 물러앉으셨다. 여전히 바쁜 일정 중에 나오신 문우님도 같은 고민을 하신단다. 지난 삼년여의 걸친 긴 감염증으로 쪼그라든 운신의 폭으로 자존감도 자신감도 문학의 대한 열정도 모두 식어지신 듯하다.
두 분 문우님보다는 한 참 어린 나를 끼워 삼인방으로 자처하는 것이 좀 민망하지만 짐짓 두 분과의 만남을 기다린다.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공유한 일화가 한 둘일까. 대 감염증이 몰고 온 강의실 존속 위기에도, 이따금 투병 생활을 했던 시간이 지나도록 함께한 사연을 더했으니 가족 같다고 할까. 주변에 다양한 개성과 인품을 보유한 많은 작가님들 사이에 남다른 인격을 갖춘 분들이시다. 그분들로 하여 나의 존재 이유와 존재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 고맙지 아니한가.
약속시간이 가까워 붉은 광역버스에서 내려 급하게 걸음을 옮길 때다. 맞은편 건널목 인파 중에 우윳빛 아이보리 원피스가 눈길을 잡아 끈다. 눈부신 하늘아래 한껏 얇아 보이는 옷차림은 6월 중순 한 낮의 기온을 말해준다. 신호가 바뀌고 서로 길을 건너느라 중간지점에서 스쳐 지나칠 때다. 마치 속옷인 양 하늘하늘한 실크 원단 같은 것에 놀라고, 바로 앞을 지나는데 등판이 훤히 보이는 맨살을 드러낸 것에 또 놀랐다. 유월 더위에 저리 다 드러낸다면 칠팔월 혹서기는 어쩌려고 저러나 싶기도 했다.
성인 여성이니 자기 옷차림은 오롯이 자신 책임하에 있으리라. 설혹 부모님과 함께 사는 가정이라도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옷차림을 선별해 나서는 자녀에게 어떻게 무어라고 관여할 수 있을까. 현관을 나서는 딸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과하다고 나무랐을까, 어여쁘다 했을까. 저 당당하고 자신감에 찬 딸이라면 말려도 소용없음을 어머니는 인지했으리라. 독특한 개성을 즐기는 MZ 세대이니 다른 이의 시선을 즐기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는 혹시 자신의 소극적인 성격을 바꿔보려 자신을 시험대에 놓았던 건 아닐까? 만일 대중의 시선을 견뎌보러 나왔다면 분명한 성공이다. 다른 한편 젊은 여성의 저 당당한 옷차림은 우리 치안의 안전을 방증한다. 한때, 아들만 둔 어미 마음으로 단정하고 품위 있는 옷차림은 보면 한 번씩 뒤돌아보게 했었다. 이제 자신감 넘치는 그녀 패션에 긍정의 시선을 담아본다. 과감한 도전도 용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