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풀, 퉁퉁마디 / 김경희
폐염전을 걷는다. 너른 벌판이 황량하기 그지없다. 햇볕 좋은 계절 오후 네 시 무렵이면 사락사락 물소금이 일던 밭. 웃통을 벗어젖힌 염부들이 고무장화 찰박거리며 고무래로 밀어올리면 소금꽃이 피던 곳이었다. 염전 배미마다 경계가 됐던 둑은 허물어지고 군데군데 마른 풀들이 스억스억 소리를 낸다. 시간은 많은 것들을 퇴색시키고 거두어 간다. 수로였지 싶은 봇도랑을 지나 방죽에 올라서니 갯개미취, 비쑥이 스치기만 해도 향기를 내뿜으며 달려든다.
개펄로 내려가니 숨탄것들이 와글거린다. 농게, 능쟁이, 방게, 칠게들이 투레질하듯 거품을 낸다. 개펄은 멀리서는 사늑한 펀더기로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잗다란 주름과 고랑들이 굽이져 있다. 우리네 삶의 흉터와 굴곡을 보는 듯하다. 갯고랑으로 밀물이 차니 제 몸을 건사할 수 있는 것들은 어딘가로 재바르게 숨어들고 염생식물들만 어쩌지 못하고 젖는다.
늦가을 서해 개펄 가장자리는 붉은 카펫을 깔아놓은 듯하다. 칠면초, 나문재, 해홍나물, 퉁퉁마디가 황홀하게 단풍 든다. 홍시 빛깔인 데다가 모양이 고만고만하여 이름을 불러주려면 헷갈리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저마다 잎이 다르다. 칠면초의 잎은 어긋나게 달려 통통한 바늘 모양이고 끝이 동그스름하다. 나문재는 솔잎 비슷하고 도톰한 잎이 줄기에 촘촘히 붙어 있다. 해홍나물은 바늘 모양으로 잎이 통통하지만 나문재보다 짧고 칠면초보다 길다. 잎 한 장 없이 줄기 마디뿐인 게 퉁퉁마디다. 나문재나 해홍나물은 염전 언저리 메마른 곳에, 칠면초는 갯물이 닿는 곳에, 퉁퉁마디는 질퍽한 개펄에 자란다.
내 고향에는 퉁퉁마디가 군락을 이룬다. 원기둥 모양의 줄기에 울퉁불퉁한 마디가 생겨 붙여진 이름‘함초鹹草’라고도 불리는 소금풀이다. 짠물 흥건한 곳에서 나앉았을 뿐이지 염기를 견디는 근성은 칠면초에 뒤지지 않는다. 나는 이 풀을 보면 공연히 애잔하여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부루퉁한 마디를 건드렸더니 향이 쾌쾌하다. 소스라치는 향이 왠지 뭍사람을 낯가리는 듯하다. 마디 고갱이를 끊어 맛봤다가 질끈 눈을 감는다. 짭조름한 맛이 영락없이 눈물의 염도다. 철벅이는 파도를 삼킨 뒤끝의 맛인가. 격렬한 쓰라림에 뒤척여 본 몸짓만이 낼 수 있는 맛인가. 되진 갯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낸 간기가 이런 건가.
여름날, 할머니는 마당가에 올라온 풀을 뽑다가 힘에 부치면 왕소금을 한 줌 꺼내와 휙휙 뿌리셨다. 바랭이, 비름, 질경이 같은 것들이 며칠 시들시들하다가 죽어버렸다. 생명력 검질긴 잡초도 소금에는 맥을 못 춘다는 걸 나는 어릴 때 보았다. 하물며 퉁퉁마디는 맨살이나 다름없는 마디를 개펄에 부려놨으니 얼마나 쓰라릴까. 칼바람에 긁히고 작달비에 뭇매를 맞고 불볕이 찔러댈 때 안간힘을 주며 바동댔으리라. 태풍에 너울 파도를 뒤집어쓴 날은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며 연신 숨비소리를 냈을지도 모른다. 생명을 가진 것들이 살아낸다는 일은 고단하고 애처롭다.
퉁퉁마디즙이 건강에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해풍에 수백 번 실그러지고 억센 간기를 견뎌낸 소금풀 염주머니에 미네랄이 방울방울 갈무리되었겠지. 초주검 되도록 배어들고 절여지는 끝에 투명한 대궁은 더 결연했을 테니 그 마디를 으깬 즙이 사람 몸에 좋지 않을 리가 없다.
퉁퉁마디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눈물이 글썽한 모양새다. 누굴 마음에 둔 내력일까. 서러운 물을 그득하게 머금은 마디를 건드리면 투명한 물이 왈칵 쏟아질 듯 몸피가 부풀어 있다. 막다른 슬픔이 멍울진 것 같다. 파도는 하루에 칠십만 번 뭍을 향해 달려오고 굴은 껍데기를 짓기 위해 자기 몸의 오십만 배나 되는 바닷물을 들이켰다가 생살을 통과시켜 내보낸다고 하니 퉁퉁마디도 지극히 섧고 호되게 치러 냈으리라. 바윗장 하나 없는 막막한 개펄에 뿌리박은 이 연약한 몸짓이 버텨내느라 흘렸을 눈물. 그 눈물의 소금이 바다로 흘러들어 간기를 유지해 주는 건 아닐까.
뭍의 부드러운 흙 마다하고 퉁퉁마디는 왜 하필 진펄에 목숨을 꽂아 놓은 걸까. 거칠고 오만한 인두겁의 발길에 차여 이 변방까지 밀려난 걸까. 더 갈 데 없는 진창의 바닥이 여기일까. 초원을 버리고 사막으로 간 낙타처럼 축축하고 비릿한 개흙에서 응어리를 발효시키기로 작정한 건가. 그러고 보니 이 풀이 새순일 때는 얄푸른 외마디였다. 떠박일수록 결기를 다지며 마디를 힘껏 붙잡아 맸을 수도 있다. 간기가 긋고 갈 때마다 생의 경혈에 새겨졌을 마디들…. 마디 안에 또록또록한 꼬마별을 들여앉히고 애절히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둔한 내가 알아듣지 못한다 생각하니 갑갑하다.
소금풀, 퉁퉁마디는 볼수록 빛깔이 애달프다. 깊고 짙은 붉기에 가슴이 뻐근하다. 더운 눈물을 다 쏟아내지 못해 퉁퉁 불어버린 듯한 통증 빛깔이랄까. 벼린 의지를 색깔로 말하려는 듯 색상표에 없는 색이 사물거린다. 이 붉기는 염분을 몸속에 삭이느라 흐느낀 울혈이 웅숭깊게 익은 게 아닐까. 서해 노을이 유난히 새붉은 건 퉁퉁마디가 뜨겁게 살아낸 목울음이 하늘까지 번져서일지도 모른다.
그새 저물녘이다. 해를 품은 바다는 거먕빛으로 번질거린다. 서해 일몰은 퉁퉁마디와 한몸 빛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