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지다 / 지영미

 

 

마을 어귀로 접어든다. 회색빛 달무리가 을씨년스러움을 더한다. 휘어진 길은 질척거리고 웃자란 풀들이 길을 막는다. 차의 전조등이 없다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길이다. 언덕배기에 불빛 하나가 희미하게 깜빡인다.

덩그러니 앉은 집에 한 점 등불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뿔싸, 어쩌다가 내가 이런 골짜기까지 흘러들어왔을까. 음기를 토해내는 어슴푸레한 기운이 앞을 가로막는다. 숨이 막힐 것 같다. 기다리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돌아가겠다고 하니 기가 막히는지, 가는 숨소리만 들렸다.

몇 해 전, 줄지어 서 있는 부동산 가게 중에서 아무거나 골라서 들어갔다. 촘촘한 거미줄 안에 갇힌 듯한 일상에 지칠 대로 지친 터라, 인적이 드문 곳에서 고즈넉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윗마을에 신축한 집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언덕배기 과원이 눈에 들었다. 초목이 마치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듯 팔랑거렸다.

 

“사장님 저 위에 땅 주인과 연결 좀 해주세요. 저 언덕에 집을 앉히면 좋을 것 같아요. 주위에 인가가 보이지 않아 마음에 드네요.”

 

상처 입은 동물이 스스로 굴을 파고 앉아 자신을 치유하듯, 나 역시도 들어앉은 집터에서 잠시라도 쉼하고 싶었다. 숲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을 보니 세상살이로 악다문 입과 꽉 쥔 손이 스르르 풀렸다. 파열음이 그득한 도시를 버리고, 아침마다 쏟아지는 푸르름을 가슴에 한껏 품어 보리라, 마음이 기우는 대로 호기롭게 발을 떼었다.

이사를 하고 두어 달 지났을까. 인적 없는 골짜기에 무섬증이 생겼다. 귀신에 씌어 홀린 듯이 땅을 사고 집까지 지었으니 쉽사리 돌이키기도 어려웠다. 종일 사람 구경할 일 없는 집은 너무나 적막했다. 빠르게 돌아가던 생체 시간을 갑자기 멈추어 버려서인지, 갱년기 우울증이 슬금슬금 몸을 옥죄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골짜기는 밀려오는 안개로 귀곡 산장이었다. 앞뒤에 묘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처음 들어보는 산짐승의 그악스런 울음소리에 섬뜩함이 몰려왔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서걱거리는 뒷산 나뭇잎의 소리가 귀신 울음처럼 들렸다. 우중에 무덤을 지키는 빨간 불빛은 도깨비불처럼 빗줄기를 따라 흩어졌다.

밤이면 시꺼먼 나무 둥치가 떼를 지어 어른거렸다. 나무 그림자는 온갖 형상으로 나타났다. 애써 뿌리쳐도 꿈속까지 따라와 달려들었다. 짓누르는 힘에 식은땀이 범벅되어 깨어나는 일이 잦았다. 내 자리를 내줄 수 없다고, 너 살던 자리로 돌아가라는 환청까지 들렸다. 숲의 정령들이 낯선 나를 밀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할머니 집 마당 한가운데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할머니는 굵은 뿌리가 마당까지 삐져나온 나무에 오래된 신령님이 산다고 여겼다. 아버지가 먼 길을 가거나, 엄마가 아기를 낳으려 할 때도, 우리가 새로운 학교에 들어갈 때마다 할머니는 나무 아래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았다. 빌고 나면 신기하게도 아픈 엄마도 웃음을 되찾고 핏기 없는 동생도 생기가 돌았다. 느티나무는 우리 가족의 수호신이었다.

알 수 없는 시달림이 서서히 사라졌다. 봄바람에 깨어나는 물상들을 보면서 말라가던 몸 안에 물기가 다시 돌았다. 봄의 전령은 연하고 보드라운 잎들을 이내 초록으로 퍼뜨렸다. 도톰한 꽃무리가 발산하는 향기와 온 산에 출렁이는 초록 내음이 살그머니 몸과 마음에 스며들었다. 건조한 눈과 입이 촉촉해지고 손과 발에도 힘이 생겼다.

숲 진 골짜기에는 숱한 생명이 산다. 계절을 따라 그들만의 순환 고리를 돌린다. 겨울 볕이 높아지면 봄이 기지개를 켠다. 봄볕은 세상 모든 것들에 자애로운 손길을 드리운다. 봄의 정령이 나뭇가지에 살포시 앉아 속살을 톡톡 치면 새순이 돋아난다. 눈이 시리도록 파릇한 연초록 잎이 숲길을 환하게 한다. 아지랑이의 기운에 과실나무 꽃들이 몽우리를 터뜨린다. 이내 흐드러진 꽃들이 바람을 타고 분분히 흩날린다.

여름의 정령은 풀마다 나무마다 깃들어 여물게 한다. 풀벌레가 껍질을 벗고 밤낮으로 울어대며 숲의 정령을 깨운다. 퍼 올리고 뿜어내고, 햇빛의 기운으로 초록을 만든다. 촘촘한 관속으로 흐르는 혈맥의 움직임은 땅과 물과 햇빛이 만들어 내는 마법의 세상이다. 한줄기 소나기가 지나간 감나무는 비릿한 살 내음을 풍긴다. 늘어진 가지마다 옹골진 열매들이 영글어간다. 쏟아지는 초록의 물결과 짙어지는 풀냄새로 숲은 점점 무르익는다.

산기슭에 소슬바람이 불면 초록이 꺾인다. 어스름해진 볕에 숲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나무는 고개를 수그린다. 한잎 두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내려앉는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수북한 길에서 고라니를 마주친다. 선한 눈매와 앙증맞은 귀를 가진 천진한 모습이다. 오소리와 가냘픈 새끼 고양이가 사람의 기척에 쏜살같이 풀숲으로 숨어든다. 들짐승과 이름 모를 숨탄것들을 마주할 때면 같은 목숨 붙이의 마음이 읽힌다. 삶이란 원초적으로 고난의 길이 아닌가 싶은 애잔함이 밀려든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 헐벗고 차가운 바람만이 숲에 머무른다. 산새와 바람과 나무와 풀꽃을 모두 품었던 숲은 고개를 숙인 성자처럼 결연하다. 우우하며 눈발을 털어내던 우듬지도 소리를 아래로 부린다. 까만 밤, 겹겹이 에워싼 먹빛 어둠 속을 휘젓는 바람 앞에 서면 눈빛은 더욱 맑아진다. 앙상한 가지에 허연 눈발을 뒤집어쓴 겨울나무는 성성한 품새로 한 점 흐트러짐이 없다. 홀가분한 몸뚱이는 뿌리에 모든 것을 쟁인다. 움을 파고 들어앉은 짐승처럼, 나도 사람과의 인연을 잠시 잊으며 시간을 곰삭인다.

달빛이 드리우는 숲은 젖 향기를 뿜는다. 엄마의 품처럼 너그러워진 숲은 밤새 새 생명을 키워내기 위해 비운다. 어둠 속에서 숲 식구들은 다시 하루치 빛을 키운다. 펼친 잎들을 가지런히 모으면 팽팽하게 끌어올린 물줄기도 잦아든다. 적요해진 숲을 따라 가쁜 숨과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다.

으스름 새벽에 숲으로 이어진 길을 걷는다. 뿌연 입자의 촉촉함이 홑이불처럼 살포시 감겨든다. 송글송글한 이슬에 목을 적시던 개구리 한 마리가 풀썩 뛰어내린다. 손으로 이슬을 가만히 훑는다. 쌉싸래한 물 내음에 침이 고인다. 피어오른 안개 속에서 너붓한 소나무 숲이 드러난다. 은근하고 당당한 나무를 끌어안는다. 솔 향의 아득한 깊이를 들이마신다. 흙 내음 속에 피워 올린 초록 알갱이들이 몸으로 스민다. 수직으로 올리기만 했던 촉수가 어느새 나긋해진다.

숲 진 숲에 몸을 기댄다. 초록을 길어 올리는 숲이 몸을 열어젖힌다. 은근한 기운에 에너지를 얻는다. 움직이는 것에는 활기를 고요한 것에는 깊은 울림을 주는 숲의 정령이 나를 감싼다. 어느새 나도 숲의 식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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