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로 떠나는 순례길에서 / 김이랑
문명이 더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멈춘다. 첩첩 화폭을 넘기고 겹겹 산을 벗기며 닿은 태백의 속살, 세로로 우뚝 솟은 바위에 검룡소라는 글씨가 검게 새겨졌다. 그 크기가 공룡만해서 아득한 원시로 들어가는 길을 지키는 선돌 같다.
이제부터 문명에서 등을 돌린다. 조금 걸어 들어가자 숲 냄새가 끼쳐온다. 속도가 뱉어내는 메케한 스모그, 한여름 에어컨 외기가 숨 막히게 불어대는 열기, 지하철이 뿜어대는 냉기, 문명이 주는 냄새에 찌들어 아우성치는 숨통이 이제야 시원해진다. 숨을 크게 들이켜고 길게 뱉으니,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달게 느껴진다.
새 지저귀는 소리, 나뭇잎 살랑대는 소리가 들린다. 쿵쾅쿵쾅 공사장 터 파는 소리, 아스팔트를 질주하는 타이어 마찰음, 원하지 않는데 일방으로 쏘아대는 방송 광고, 얼마나 많은 굉음에 시달렸던가. 쏴아아 물소리가 문명의 소음을 쓸어내자 비로소 자연의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길섶마다 한 뿌리에서 갈라진 종족이 군락을 이룬다. 참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떨어진 도토리 몇 톨 주워 만지작거린다. 도토리를 주워 키를 잰 어린 날의 기억을 넘어 거슬러 올라가면, 채집과 수렵으로 삶을 영위한 원시의 기억에 닿는다.
물길을 거슬러 닿은 검룡소, 근원이 어딘지 모를 깊디깊은 구멍에서 물이 솟아오른다. 한강의 근원이다. 여기에서 길 떠난 물은 골짜기를 타고 내려간다. 산자락을 휘감고 절벽을 굽이치고 들판을 가로지르며 내일로 내일로 흐른다. 그러다 하류에서 서울이라는 찬란하고 복잡한 문명을 유유히 바라본다.
문명이란 것은 얼마나 거추장스러운가. 격식에 맞춰 옷을 입고 예의에 맞게 음식을 먹고 먹물 깨나 먹은 척 으스댄다. 좋은 집에 살아야 폼이 나고 좋은 차를 타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문명의 욕망에 지칠 때,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발가벗은 원시의 숲 그 홀가분한 기억의 시원으로 도망가는 길은 없을까. 나는 검룡소 가는 길을 걸으며 늘 이러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사회니 군대니 교회니, 명문이니 권세니 하는 속박도 없다. 먹이를 따라 산, 들, 내로 옮겨 다니며 토끼를 잡고 열매를 따고 고기를 낚는다. 남의 것을 빼앗아 먹을 일이 없다. 땅과 집을 가지지 않으니 남의 욕망을 따라가다가 가랑이 째지는 일이 있으랴. 따먹고 캐먹고 주워먹고 잡아먹으면 그만이다.
사냥을 나가면 때로는 목숨을 건다. 뛰고 달리며 쏘고 찌르고, 그만큼 온몸을 써야 한다. 하지만 겨우 토끼 한 마리 들고 돌아올 때, 사내의 위용은 토끼만큼 작아진다. 사냥에 성공해 어깨에 우람한 멧돼지 메고 들어올 때, 이것이 바로 수컷이라며 걸음도 당당해진다. 저녁에 멧돼지 넓적다리를 불에 구워 마누라와 새끼들 배불리 먹이고, 잠든 새끼들 볼록한 배를 쓰다듬으면 그 포만감이란.
인류는 농경에 자유를 반납했다. 땅을 일구어 벼를 재배하면 인간의 시간은 사라지고 벼의 시간에 맞춰야 한다. 산비탈을 개간하고 물길을 내느라 손이 부르트고 등이 휜다. 타는 듯한 태양 아래 피를 뽑느라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가을이면 벼를 베고 지게로 지어 날라 알곡을 까부르기까지, 그리고 알곡을 지켜내기까지, 노동의 강도는 수렵과 채집의 시간보다 더 혹독했다.
문명은 실체가 없는 토템을 만들었다. 신앙을 만들고 돈을 만들고 법을 만들고 국가를 만들고, 만든 것을 추앙하고 만든 것을 추종하고 만든 것을 준수하고 만든 것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은 이 부자연스러운 허구에 종속되어 신에게 영혼을 의탁하고 전쟁에 나가고 피를 말렸다. 머지않아 실체도 없는 AI에게 조종당할지 모른다.
문명은 토템을 미신이라고 배척하지만, 나는 원시의 자연을 더 믿는다. 수억 년 솟아오른 산을 숭상하고 나보다 수백 년 아름드리 나무를 경배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저들은 내게 혹독한 노동을 요구하지도 돈을 바치라고 손 내밀지 않는다. 저들은 아낌없이 다 준다. 철 따라 향긋한 나물을 주고 아삭한 뿌리를 주고 쌉쌀한 약을 주고 달콤한 열매를 내준다. 차가운 아랫목을 데울 땔감을 주고 따가운 햇살을 피할 그늘을 드리워준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탯줄을 따라 아득히 올라가면 닿는 곳, 산이 깊어 골 깊고 골이 깊어 물도 맑은, 그 오염되지 않은 원시의 땅, 삶이 강물처럼 느릿해서 숨 가쁘지 않은, 어둠 깔리면 별을 볼 수 있어 눈부시지 않은, 문자조차 없어 앎이 병이 되지 않는 그 까막눈의 시간에 한동안 머물고 싶어진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치유를 주는 원시의 숲속, 그래서 나는 늘 산그늘 숲그늘 바위그늘을 찾아 원시로 떠나는 순례길에 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