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얼룩 / 임이송

 

 

내 첫 얼룩은 붉은색이었고 그 다음은 검은색이었고 그 다음은 파란색이었다. 그 색깔이 품은 농도와 얼룩의 크기는 각각 달랐다. 대부분의 얼룩은 성가셨고,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아주 가끔은 아름다운 운율이나 무늬를 만드는 얼룩도 있었다.

일상생활 중에 다른 일들엔 무던히 참거나 무심히 넘어가는데, 신경증적으로 집착을 하는 부문이 있다. 남들은 그런 것에 무신경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는 부문인데, 나는 그렇지가 못하다. 바로 옷에 얼룩이 묻었을 때가 그렇다. 특히 흰색 옷에 음식물이 틔었거나 패딩에 기름이 묻었을 때, 모든 신경이 그리로 쏠린다. 빨리 얼룩을 지우고 싶어 다른 것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혹 얼룩이 번지고 지워지지 않을까봐 애가 탄다.

또 하나 못 견디는 것은 가스렌즈 위와 그 뒤 벽의 얼룩이다. 나는 음식을 할 때마다 즉시 닦으며 깨끗하게 유지한다. 음식이 끓어 넘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기름이 튀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어쩌다 남편이 계란 프라이나 라면을 끓여 먹고 나면 가스렌즈는 스프나 라면 부스러기나 소금이나 기름으로 엉망이 돼 있다. 벽엔 붉은 라면 국물까지 튀어 있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것에 깔끔하거나 정리정돈을 잘 하는 건 아니다. 이 두 가지에만 정색을 한다. 기이한 버릇이자 자기모순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오래 전에 읽은 소설이 생각난다. 책 제목과 구체적인 내용은 잊었지만 주인공의 행위는 여운처럼 남아 있다. 그 남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가장 먼 나라로 떠난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또 가장 작은 섬으로 찾아든다. 낯선 곳이 주는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그는 자신의 상처와 적나라하게 대면한다. 모든 상처는 얼룩을 남기기에 그는 자신의 얼룩을 한없이 들여다보며, 그것들을 혐오스러워한다. 그리고 오래도록 괴로워한다.

나 또한 수많은 얼룩을 가진 사람이다. 얼룩은 아름다운 형태를 지니기 쉽지 않다. 나는 의외로 큰 얼룩엔 담대한 편이다. 그런 것들은 내 주변의 사람들도 눈치 채고 염려하고 알아주어 견뎌내기가 오히려 수월하다. 반대로 내밀한 작은 얼룩은 오래도록 나를 괴롭힌다. 그것들을 최대한 객관화시켜놓고 지우려 해도 잘 지워지지가 않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2여 년 간 실어증에 걸린 적이 있었다. 모두에게 말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버지에게만 입을 닫았다. 나도 그 이유를 모르고 엄마도 명확한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조곤조곤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내가, 아버지에게 입을 닫았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아버지는 나를 야단을 친 적도 혼을 낸 적도 때린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장녀인 나를 기특해 하고 믿음직스러워했다. 그런데 왜 나는 아버지에게만 마음을 닫아버렸을까.

입을 닫은 순간 그 너머의 마음속은 새까맣거나 파랬을 것이다. 말은 하지 않아도 맏딸로서의 역할엔 최선을 다했다. 가마솥 뚜껑을 반질하게 닦고 부뚜막 위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마루도 매일 반질하게 닦고 마당도 하얗게 쓸었다. 집안에 보이는 얼룩이란 얼룩은 죄다 지웠다.

일곱 살 무렵, 아버지가 수건으로 내 목덜미를 세차게 내리치는 사건이 있었다. "왜 말을 안 해? 뭐 땜에 말을 안 해?" 나를 때린 아버지는 돌아서서 울먹였다. 나는 더욱 입을 다물어버렸다. 다른 가족에게도 점점 말수를 줄여갔고 심지어 그날 이후론 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성인이 되어 무언가의 얼룩을 지울 때마다 그때의 어린 내가 생각난다. 지금이라도 깨끗한 마당처럼 만들어주고 싶은데, 원인을 모르니 치유해줄 방법이 없다.

정혜윤의 에는 세탁 일을 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수많은 인간의 얼룩을 지워봤다고 했다. 그는 인간도 옷처럼 때때로 세탁소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 세탁소는 '바다'란다. 바다에 가서 그간에 쌓인 얼룩을 깨끗이 지워서 온단다.

나는 그와는 달리 참을 수 없는 얼룩무늬가 나를 뒤덮을 땐 시장에 간다. 그것도 재래시장에. 그곳에 가면 모두가 펄펄 살아 있는 것 같다. 활어처럼, 바다처럼.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높고 굵고 거친 목소리와 흥정을 하거나 사려는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들이, 나도 그들처럼 살아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나를 잠시 잊고 또 지나가게 한다. 시장의 목적은 분명하다.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거룩한 모습을 시선에 담아 돌아온다. 그러면 한동안은 내 상처에서 비켜나와 있을 수 있다.

어떤 상처는 유화 같다. 똑같은 자리에 여러 색감을 덕지덕지 입은. 또 어떤 것은 한 색깔을 더께더께 이고 있는 나무 껍데기 같고. 가끔 어여쁜 얼룩이 있기도 하다. 그것들은 징검다리처럼 봄꽃처럼 손님처럼 짧은 음악처럼 무지개처럼 다가와 몸속을 피처럼 돌아다니며 다른 얼룩에 숨통을 터 준다.

삶의 모든 비밀은 자기 안의 얼룩만은 알고 있다. 옷이나 가스렌즈, 즉 밖의 얼룩에 예민한 것은 안의 얼룩에도 그만큼 예민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20여 년간 글을 써오면서 수많은 상처를 꺼내 위무했다. 그러나 실어증에 대한 것은 오래된 수수께끼처럼 풀 수가 없다.

마치 오늘 낮에 받은 부고 같다. 초등학교 동창생이 죽었다며 난데없이 부고가 왔다. 이름은 낯설고 얼굴은 기억에도 없는데. 그럼에도 조문을 해야 하듯, 세상에는 지울 수 없는 불가사의한 얼룩도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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