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로 본다 / 권현옥 

눈으로 볼 수 있는데도 남의 눈을 또 한번 빌려 사물을 보는 것이 미술인가. 내 눈만으로는 색과 느낌이 까마득하여 화가의 그림에 해설과 몇 가지 지식들을 보태 산만한 감상을 끝내고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미술관을 나오니 하늘이 가득하다. 부신 눈을 가늘게 뜨고 건너편 전시실로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둠 체험실이 있었다. 몇 겹의 시선으로도 물상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미숙함이 우리의 감각인데 어둠 속에서 시각을 감추고 무엇을 읽어내야 하는 일은 독특한 전시였다.

어릴 적 전기가 나가서 어둠을 체험해 보았다. 엄마의 말소리를 계속해서 훔쳐내어 공포를 내몰았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놀이였다. 잠시 비슷한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들뜨려 할 때 나는 조금 겸손해져야 했다. 일부러 불편함을 '체험'하는 것은 떳떳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둠이 실제의 삶이 아니라서 다행이었고 어둠을 체험하게 돼서 다행이었다. 이런 경험이 없다면 영영 오감의 순수함과 시각장애인의 불편함과 지팡이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 아닌가.

살아오면서 지팡이를 잡아본 일이 몇 번 있었을까.

일 년에 한 번 벌초를 위해 산에 오를 때 두려움에 대한 방어나 공격을 위하여 잡아보았다. 모세의 지팡이도, 목동이나 노인의 지팡이도 나에게는 해리포터의 지팡이를 보는 것처럼 먼 시선이었는데 오늘 절실한 지팡이를 잡아보게 되었다.

지팡이를 손에 쥐고 들어갔다. 완벽한 어둠이다. 손을 들어 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빛이 없는 것은 눈이 없는 것과 같고 눈이 없는 것은 빛이 없는 것과 같았다. 내 존재도 보이지 않는 이 어둠, 손으로 내 몸이 만져질 때 존재가 확인됐고 가만히 있을 때는 내 존재가 공기 중에 떠 있는 정신 같았다. 발바닥에서 오는 밀착의 힘이 몸의 존재를 일깨웠고 지팡이에 부딪치는 어떤 물체가 내 몸이 물질임을 알려주었다.

누군가는 심하게 바닥을 쿵쿵 찍어댔다. 그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으려는 행동처럼 보였다. 드디어 공포가 정확해졌다.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은 일차적 공포이고 더 큰 공포는 일행에서 나만 떨어져 남아있을 어둠이었다.

지팡이 끝에서 오는 진동이 뇌로 오는 동안 나는 눈을 뜨고 있었다. 무엇이든 보려는 습관이다. 눈을 떠도 보이지 않는 것은 눈을 감고 보지 않는 것에 비해 불편했다. 눈을 떠도 보지 못하는 것은 시력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눈을 감아서 보이지 않는 것은 물체라는 것이 애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존재로써 만져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을 감았다. 봐야 한다는 관념을 버리니 편했다.

'터걱', '타닥', '딱' 지팡이가 사물에 닿을 때 구체적인 불안이 왔다. 막힘에 대한 짧은 슬픔일까. 반가움과 동시에 비껴가야 한다는 불안이 함께 했다.

오감 중 80%가 시작이며 그 시각을 통해 뇌가 인식하는데 지팡이가 그 80%를 대신하고 있다. 지팡이는 귀를 움직이게 했고 촉감을 대신했다. 지팡이는 어둠 속에서 상상이고 예상이었고 무엇과 닿았을 때는 판단이고 실행이었다.

조금씩 지팡이가 손에서 따뜻해질 때 무엇이 닿으니 편해졌다. 지팡이 끝에서 소리가 나고 질감이 느껴져야 위안을 얻었다. 무엇이 닿지 않는 지팡이 끝에서는 아득함에 절망이 있었다. 떨어질 것 같은 절벽. 그 공허함이 불안을 젓게 했다.

나뭇잎이 팔뚝을 스칠 때, 자갈 위를 뒤뚱 걸어 더듬더듬 공원 벤치에 앉아 보았다. 순간 또 다른 어둠을 느꼈다. 걸어갈 때 어둠은 불편한 것이었는데 벤치에 앉아 있는 순간의 어둠은 무겁고 두꺼운 정적이었다. 이상하다. 갑자기 나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내가 모든 걸 감지 못하는 것처럼 모든 것들도 나의 존재를 감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외로움과 동시에 한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일행은 어깨를 부딪치며 서로를 확인했다. 테세우스의 실타래처럼 가이드의 말소리를 붙잡고 미로를 빠져나오며 벌써 지팡이가 나의 감각 중 하나로 익숙해졌나 했다. 그러나 횡단보도 앞에서 느낀 속력의 소리는 모든 감각을 두렵게 했다. 지팡이는 소리로 다가오는 속도 앞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속력이 우리의 감각을 얼마나 불안하게 훼손하는지 알았다. 시각의 판단도 맛의 본질을 훼손하는지 알았다. 카페에서의 음료는 별 맛이 없었다. 어쩌면 시각의 오류를 벗어난 진정한 맛 그대로를 느낀 것인지 모르겠다.

더듬더듬 온 길 위에서도 시간은 속력을 잃지 않았나 보다.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이 지나갔다. 잠시지만 정든 지팡이를 되돌려주었다.

감각 중의 하나를 남기고 온 듯했다. 가끔 나는 눈을 감고 오늘의 이 섬세한 지팡이를 저어볼 생각이다. 쓸데없이 보이는 일로 혼돈이 올 때 지팡이로 조용히 짚어볼 생각이다.

빛보다도 더 많은 빛을 보는 화가의 그림 전시회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중간의 공간에서 시각과 화해하고 시각에 겸손하고 시각에 맹신하지 않아야 함을 배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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