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함께 / 정만영 

 

밤중에 잠을 깼다. 다시 잠을 청해도 눈은 말똥거린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아내가 곤히 자고 있다. 불을 켜서는 안 된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뜰로 나서니, 달은 중천에 밝고 동편 하늘엔 몇 개의 별이 반짝거린다. 장독대에는 국화 송이들이 무서리를 맞으며 소곤대고 있다.

햇빛에서는 제각기 색깔과 모양이 또렷또렷한데, 달빛 아래서는 서로 어스무레 닮아서 정답다. 근처에 것들은 더 그렇게 느껴진다.

나는 국화분을 자주 옮긴다. 첫가을엔 햇볕이 덜 들고 서늘한 곳에서부터 먼저 꽃봉오리가 피기 시작한다. 날씨가 싸늘해지면서 햇살을 많이 받는 것이 잘 핀다.

그래서 많이 핀 놈은 처마 밑 섬돌로 옮기고 얼마를 지나서는 장독대에 있는 놈과 자리를 바꿔 놓는다. 너무 빨리 피어 버려도 안 되고 더디 피어도 애가 탄다. 또 추워지면 마루로 들인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돋보이게 요리조리 골라 놓는다.

봄부터 애써 가꾼 우리 분이라 우리 내외만 보기에는 너무 아깝다. 작년 가을에는 직장 젊은이들을 불러 바둑 대회 비슷한 행사를 치렀다. 국화분들이 스물도 넘게 갖가지로 피었었기에, 은근히 자랑도 하고 싶었다. 그들은 대문을 들어서면서 탄성을 올렸다. 색깔들이 다양하다느니, 모양새들이 특이하다느니, 재배 기술이 예사가 아니라느니……, 인사치레인 줄도 알지만 어깨는 절로 으쓱거려졌다. 또 몇 친 게는 한두 분盆 나누어 주기도 하고 직장 사무실에도 대형 화분을 실어다가 초겨울까지 완상하게도 했었다.

그러나 금년에는 아내의 건강이 부실하여 집으로 사람들을 부르는 일을 삼가야겠다. 또 작년보다 화분도 훨씬 줄고 작황도 신통찮다. 아내가 앓으면 나도 시들고 국화들도 성하지 못하는가 보다.

국화의 색깔은 백색과 황색이 주종이나 자주색과 보라도 있다. 봉오리들이 봉곳봉곳 벌기 시작할 때는 분홍이었던 것이, 혹은 엷은 노랑이던 것이 흰 송이로 피는 놈도 있고, 자주로 벌던 봉오리가 노란 송이로 변하는 것도 있다. 처음부터 희거나 노란 것은 맑고 변하면서 피는 놈은 짙은 느낌이다.

나는 국화의 종류나 이름을 잘 모른다. 대충 대국과 종국, 혹은 개량종 재래종 정도로 구별할 뿐이다. 나는 그것들의 종류에는 마음 쓰지 않는다. 가을꽃으로는 국화면 그만이라 여긴다.

또 나는 코가 시원찮다. 대국보다 종국에 벌어 나비가 많이 모이는 것으로 자잘한 재래종의 향기가 낫다고 느낀다. 그러나 성화盛花때는 대문을 들어서면 '화-악'하고 풍기는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또 화분들을 모아둔 마루문을 여는 순간 확 코를 자극함을 느끼게도 된다.

그럴 때마다 둔한 나도 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 동안 코를 벌름거리며 취해도 본다.

국화도 늦게 핀 것은 잘 돌보면 양력설을 넘어서기까지 마루에 두고 즐길 수 있다. 시든 대를 잘라 내고 마루에서 겨울을 낸다. 뿌리가 마르지 않도록 가끔 물을 준다. 영산홍이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봄, 햇살 바른 섬돌에 내어 놓고 그간 자란 싹은 잘라 버린다. 정성을 들여 보살피면 목련이 피고 질 무렵부터 새 움이 돋기 시작한다. 꺾꽂이하기에 알맞은 5월 중순께까지 예닐곱 마디 정도로 순을 키워야 한다.

튼튼히 자란 순을 두어 마디씩 잘라 모래판에 꽂는다. 반그늘에 두고 수분을 알맞게 조절하면 일주일여에 뿌리가 내리기 시작한다. 일주일을 더 길러서 분에 올린다. 전문가들은 가식을 하지만 나는 그 과정을 생략한다.

네댓 마디가 자라면 서너 마디를 남기고 자른다. 얼마를 지나면 마디 마디에서 순이 다시 돋는다. 영양 상태가 좋은 것은 그 순들에서 다시 두세 개의 순을 각각 돋게 할 수 있다. 그래서 한 뿌리에 셋에서 열 개 전후의 가지를 뻗게 할 수 있다.

긴 여름을 거쳐 가을까지 물 주기에 마음 쓰고 진딧물이 끼지 않도록 돌본다. 곁가지는 뜯어 주고 받침대를 세워 준다. 추분 무렵 들깨 알만한 망울이 맺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때부터 가꾸는 이의 마음은 설레고 흥분하기 시작한다.

망울이 자라서 커지고, 또 곁 망울이 여러 개 붙어 나온다. 종국은 그대로 두어서 꽃송이를 많이 봐야 한다. 대국은 그것들을 이내 따내야 크게 피어난다. 잘못 건드리다간 온 망울을 상하게 한다. 그럴 때의 안타까운 마음, 손끝의 둔함이 짜증스럽다. 또 철사로 꽃받침을 할 때 실수하면 연한 꽃 목어 부러지기 쉽다. 그 불찰은 더욱 가슴이 쓰리다. 몽오리가 맺기 시작하여 꽃송이를 보는 데까지 한 달포는 애를 태워야 한다.

나는 꽃대의 키를 고르게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작고 크고 제멋대로의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맛도 있다. 큰 화분에 두 뿌리 혹은 세 뿌리를 같이 심기도 한다. 모양과 색깔이 서로 다른 송이들을 함께 보는 것도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

꽃이 맺기 시작하는 날부터 더 자주 나는 고것들을 들여다보며 미당未堂의 '국화 옆에서'를 웅얼거린다. 꽃송이가 피면서는 밤중에도 국화 옆으로 다가가곤 한다. 잘 손질된 것들을 꽃집에서 사다 놓고도 이것들을 대하듯 내 마음이 그러할까.

올해도 그런대로 국화들이 피었으니, 이 가을이 쓸쓸하지 않고 또 겨울도 춥지 않을 것이다. 바라건대 국화 송이가 시들기 전에, 아내가 건강을 회복하여 사람들을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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