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錘, 멈추다 / 김순경
그렇게 엄숙한 얼굴을 할 줄 몰랐다. 환하게 웃던 모습은 사라지고 전신을 중력에 맡긴 채 꼿꼿한 자세로 서 있다. 다시는 어떤 외력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듯 미동도 없다. 수십 년 오가던 길마저 잊어버린 치매 환자처럼 멍하니 앞만 바라본다.
시계추는 평생 한눈팔지 않았다. 반세기 동안 같은 궤적을 그리며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다. 오직 정해진 규칙만을 준수하며 걸었다. 세상이 시끄럽고 비바람이 불어도 묵묵히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시류에 야합하고 세상과 타협하는 어느 재벌 총수나 뭇 정치인과는 달랐다.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눈치를 살피거나 궤도를 이탈하지도 않았다. 일생을 외길로 보내더니 마지막 가는 길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큰형님은 긴 상자 하나를 메고 큰방에 들어갔다. 뭔지도 모르고 따라 들어가 조심스럽게 지켜봤다. 단단하게 묶여 있는 긴 상자는 마치 작은 목관 같았다. 골판지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자 수의를 입은 시신 같은 물체가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희고 얇은 포장지를 마지막으로 벗겨내자 훤칠한 키에 윤기 있는 벽시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침과 분침이 걸쳐진 숫자판을 지나간 눈길은 보름달 같은 노란 추에 멈췄다.
벽면을 차지한 시계는 추가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냈다. 정적이 흐르는 방안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파동은 심장의 박동 소리 같았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가 때로는 북통을 두드리는 듯 크게 들릴 때도 있었지만 어머니와 할머니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폭발하는 날은 시계도 숨을 죽였다. 변함없는 소리도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렸다.
외갓집 하면 기둥 시계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바람과 햇볕이 가득한 집안에 들어서면 큰방에 걸린 시계추 소리만 들렸다. 똑딱거리는 소리뿐인 정적 속에 울려 퍼지는 괘종소리는 산사의 범종이 내는 울림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궁금해도 한 번도 물어본 적은 없었다. 외출이 잦은 두 노인만 사는 집이라 찾는 이도 별로 없었다.
외할머니는 유별났다. 잠든 외손자를 새벽부터 흔들어 깨웠다. 빗소리에도 잠이 깰 정도로 잠귀가 밝았지만 바로 눈을 뜨지 않았다. 뭘 물어볼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에도 어떻게 대답할지부터 생각했다.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였다. 성화에 못 이겨 어렴풋이 눈을 뜨면 외할머니는 장죽을 물고 있었다. 고부간 갈등이 심했던 어머니의 근황을 심드렁한 목소리로 에둘러 물었다. 잠결에도 수위조절을 해가며 짧게 대답했다. 그때는 똑딱거리는 시계가 얼마나 느리게 가던지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움직이지 않는 추도 있다. 지상에 건축물을 세울 때 사용하는 원추다. 가는 실 끝을 붙잡고 몇 번 몸부림치다 에너지가 고갈되면 정확히 지구의 중심을 향한다. 반야 용선에 매달린 악착동자처럼 허공에 있을 뿐 어떤 움직임도 소리도 없다. 아무리 노련한 장인이고 기술자라고 해도 집을 짓고 성을 쌓고 탑을 올릴 때는 물론 담장을 쌓을 때도 추를 달아 수직을 확인한다. 사람의 눈짐작으로 수직과 수평을 정확히 잡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급하면 쇠로 된 원추 대신 작은 돌이라도 매달아 중심을 잡는다.
법원에 가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와 공정의 여신 디케Themis가 저울을 들고 서 있다. 죄의 무게만큼 벌을 내리겠다며 한 손에는 법전이나 칼을 들고 있다. 법과 정의의 수호자인 법의 신이 들고 있는 저울같이 공평하게 판결하라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세상 모두가 만족하는 법도 판결도 없다는 뜻이다. 어디를 가도 디케를 들먹이며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자가 있고 아예 법 위에 군림하려는 무리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천칭의 추처럼 평형을 유지하는 판결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중심을 잡기는 정말 어렵다. 비록 작은 물체나 조직이라도 한쪽으로 치우치면 쓰러지고 무너진다. 선장이 거센 파도를 헤쳐나가지 못하고 가장이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면 배는 침몰하고 가정은 파산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외면하고 지나친 개혁을 추구하거나 민심을 잃으면 빠르게 멸망의 길로 들어선다. 역량도 없으면서 권력에 빌붙어 분수를 모르고 설쳐대는 자들과 허황한 꿈에 젖어 가족을 괴롭히고 나라를 파멸로 몰아넣는 사람은 어느 시대나 있었다. 수장이 중심을 잡아야 조직이나 나라는 물론이고 세상이 편안해진다.
자신을 낮춰야 바로 보인다. 날마다 자신을 뒤돌아보고 스스로 낮추라는 상선약수라는 말도 그런 뜻이다. 그래야 자연 그대로의 삶, 물 흐르듯 평탄한 무위자연의 삶을 누릴 수가 있다. 물은 거대한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침몰시키기도 한다. 먼 역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런 경우를 여러 번 경험하고 봐 왔다. 지금은 백가쟁명의 시대다. 모두가 목소리부터 높인다. 말 없는 다수가 어렵게 이루고 지켜온 세상이 요동친다. 어설픈 성찰과 자각으로 중심을 잡으려 하지만 약한 실바람에도 늘 흔들린다.
괘종시계가 멈춰 섰다. 이제 소리도 내지 않는다. 반세기 동안 오가던 길마저도 잊은 듯 우두커니 서 있다. 망상에서 벗어나 열반에 든 등신불처럼. 이제야 비로소 본래 모습이 보인다.
